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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학준 Nov 28. 2022

'분인'이 대체 뭐요?

22.11.28. 히라노 게이치로, 나란 무엇인가


#1

히라노 게이치로, <나란 무엇인가>(2015) : <대한민국 : 가나> 경기를 앞두고 약간 뜨는 시간에 짬을 내어 책을 읽는다.


책의 첫 문장부터 강렬하다. "이 책의 목적은 인간의 기본 단위를 다시 생각해보는 데 있다." 나누어지지 않는다는 의미의 개인(Individual)의 개념에 문제를 제기하기가 쉽지는 않은데, 상당히 도발적이다. 개인보다 작은 단위는 가능하고, 유의미한가? 조금 더 그의 의견을 따라가 본다. 하나의 진정한 인격이 있고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한 가면을 쓰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우리에겐 여러 개의 가면들 이외에는 없다면? 태어나면서부터 인간들 속에서 살아가게 되어 있으니, 만나는 사람에 따라 가면을 바꿔낄 뿐이라면? 상대의 입장에선 자신을 향한 얼굴이 유일하게 마주하는 얼굴이니 그것이 가면인지 진정한 표정인지 알 게 뭔가?


히라노 게이치로는 이런 질문을 바탕으로 분인(Dividual)을 이렇게 정의한다. "대인 관계마다 드러나는 다양한 자기"이자 "상대와의 반복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자기의 내부에 형성되어가는 패턴으로서의 인격"이다. 그리고 이러한 분인의 네트워크가 한 명의 인간이다. 그가 이런 개념을 떠올리게 된 이유는 학창 시절의 경험 때문인데, 학교에서 잘 어울리지 못했던 그가 학교의 자신과 본래의 자신을 거짓된/진정한 나로 구분하면서 다양한 문제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만약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보여준 나의 모습이 거짓된 나라면, 그들과 웃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던 나는 누군가? 그리고 그런 '거짓된 나'와 오랫동안 우정을 쌓고 지금껏 만나온 친구들은 어떻게 이를 받아들이고 나는 어떻게 그들을 이해해야 하나? 내가 거짓된 만큼, 상대방도 거짓된 채로 관계를 오래도록 이어왔다고 해야 하는 것일까? 심리적으로도 불편한 '거짓'을 그렇게 유연하게 그리고 오래도록 지속할 수 있을까? '진정한 나'가 있기는 한 것일까?


진정한 나 - 거짓된 나 사이에 있는 위계 서열이나, '가짜'를 떠올리게 하는 가면/캐릭터와 같은 언어로는 다양한 상황에서 다양하게 변화하는 나를 적절하게 설명할 수 없다는 곤경이 그로 하여금 '분인' 개념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위닝 일레븐 20주년 광고 - https://www.youtube.com/watch?v=X6dzS99ggmg 를 잠깐 떠올렸다. 어린 시절 게임기 앞에 있던 나로 돌아가는 장면에서, 나의 겉모습이 어떻든 예전 학창시절의 나로 대해주는 친구들 앞에서, 학창시절의 나로 온전히 돌아가는 경험을 하는 구성인데, 여기서 주인공은 나이든 나 / 어린 시절의 나를 모두 가지고 있다. 둘 다 진심이다. 연기하지 않는 두 개의 자아가 동시에 보인다.)


여기까지 읽으니 경기 모니터링을 해야 할 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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