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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학준 Dec 06. 2022

게이브 형이 다 가져갔어

22.12.06. 현질의 탄생 4 / 나란 무엇인가 3

#1

이틀 정도 책을 못 봤다. 경기도 봐야 하고 편성도 바꿔야 하고 이래저래 정신이 없는 날들이었다. 마침 병원을 갈 일이 있어 휴가를 낸 터라 짬이 살짝 나서 <현질의 탄생> 5장을 마저 읽었다.


이 책을 읽다보면 내가 모르는 부분들을 하나씩 알게 된다. 나름 게임에 미쳐 있었던 시기가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훨씬 유구한 전통과 마주하면서 경이로움을 느끼기도 한다. 가령 1983년 가정용 게임기 <아타리 2600>에도 '게임라인'이라고 해서 온라인으로 게임을 다운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이미 있었다는 사실이나, 그 '게임라인'을 운용하던 업체가 나중에 AOL이 되었다는 사실 같은 것을 뒤늦게 이 책을 보고 알게 되었는데, 대체 이런 건 언제 다 조사해서 알게 되었나 싶고 그런 것이다...


게이브 뉴웰 : 네 돈 다 내거다요


여하간에 책 이야기로 돌아가면, 2000년대 밸브 코퍼레이션의 온라인 게임 관리 시스템인 스팀(Steam)이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당신도 쓰고 나도 쓰는 그 스팀은 최초에는 밸브 코퍼레이션에서 개발하거나 유통하는 게임의 업데이트, 패치 등을 온라인으로 통합하여 관리하는 플랫폼이었다. 그런데 자사 게임을 관리할 수 있다면, 타사 게임이라고 관리를 못할까? 스토어 기능이 붙으면서 2005년 최초의 타사 게임이 플랫폼에 등록되었고, 2010년대에 이르면 1천 개가 넘는 타이틀이 그곳에 등록되었다. 스팀이 성공하니 다른 경쟁사도 비슷한 ESD 플랫폼을 통해 생태계를 구축하려 시도했다. 에픽게임즈의 에픽 스토어나, EA의 오리진처럼. 게다가 라이선스 관리도 한결 쉬워지니, 정품 구매 유도도 어느 정도 이끌어낼 수 있었고.


그러나 이 ESD는 결국 통신 판매 모형을 온라인으로 가져온 것에 가까운 것이고, 이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혁명적인 결제 방식이 도입되려면 다른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스팀에서 사는 게임들은 여전히 스탠드 얼론, 그러니까 게임을 한 번 사면 끝이지만 - 물론 DLC는 여러분을 기다린다 -, 그렇게 되면 계속해서 제작사가 수익을 창출하기란 난감하다. 그럼 비용 부과 방식을 다르게 가는 수밖에 없다. 바로 시간이다.


온라인 게임은 어쨌든 다른 사람과 게임을 하려면 서버에 접속해야만 한다. 서버에는 접속 기록이 남고, 접속한 시간 또한 남는다. 그렇다면 클라이언트 프로그램은 공짜로 줘서 접속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게 하더라도, 접속하는 시간에 따라 과금을 한다면 계속해서 수익을 낼 수 있지 않을까? 멀티플레이를 위한 온라인 게임이 최초에 분당 이용료를 도입하고, 나중에 월정액제를 도입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에 가까웠다. "게임의 플레이 타임을 측정하고 사용량 대비 요금을 부과하는 방식은 프랜차이즈라는 경영 기술의 발전과 네트워크라는 정보 기술의 발전에 의해 소프트웨어 산업의 일환인 게임산업에 새로운 방식의 유통 및 결제양식을 만들어냈다."(107) 


게이머의 입장에서는 소유가 아닌 대여로 점차 게임 이용의 방식이 변경되는 과정에서 자신이 부담하는 비용이 증가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런 느낌도 불법복제의 정글을 지나온 사람이니까 겪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긍정적인 영향이 있다면 이 과금 방식 덕에 불법복제가 급격하게 감소했다는 것이려나? 이제 제작자 입장에서 1회 판매로 수익이 종료되는 형태의 게임보다는, 끊임없이 발생하는 운영비를 충당할 수 있는 주기적 수익을 제공하는 온라인 게임에 집중하게 된다. 결제 형식의 변화가 게임 콘텐츠 생산에도 이렇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이거 사려고 생쇼를 했는데 사실 정작 많이 안 하고 먼지 먹이고 있다


다만 마지막 부분에 가면, 물리적 실체가 핵심이 아닌 게임이 이제 저장 매체라는 물리적 한계를 벗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소유 여부를 따지는 것이 유의미한 질문은 아닐 수도 있잖냐는 판단에 대해서는 약간 다른 생각이 있다. 애초에 게임의 가치는 '소장품'으로서의 가치도 포함되는 것이지 않으려나. 그렇기 때문에 이런 저런 굿즈의 형태로 재생산되는 것이기도 하고. PS1이나 세가, 패미콤 미니 버전이 왜 만들어질까? 그 물건을 소유함으로써 소환 가능한 추억도 있고 기쁨도 있으니 사는 것 아닐까. 아무래도 다운로드로만 이루어지는 게임 유통 방식이 허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지 않나 싶고 그렇다. 


이제 부분유료화와 현질에 대한 설명만이 남았다. 이 설명까지 하고나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현질의 의미'에 대해서 좀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요 앞부분까지의 내용은 현질이라는 독특한 결제 양식의 '전사(前史)'라서, 그 양식이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요하지만 그 양식이 만들어 낸 독특한 풍경들까지 이해하려면 뒷 부분을 읽어야만 할 것 같다. 하루에 한 챕터 정도만 읽어 나가는 것도 버거운 것을 보니 확실히 머리가 굳긴 굳은 모양이다.


#2

이어서 <나란 무엇인가> 3장 읽기. 얼마 전에 문희와 이 책으로 간단히 책모임을 했는데, 그 때 계속 좀 마음 속에 남아있던 고민들 때문에 다시 3장을 읽었다. 덕분에 좀 더 문제의식이 명료해지는 것 같은데.


분인 개념은 내가 홀로 사회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상호작용하고 있고, 또 상호작용의 결과물임을 항상 인지하도록 만든다. 그러니 내가 어떤 분인을 맘에 안 들어 한다면, 그것은 내가 문제인 탓도 있지만 그 상호작용의 대상인 타인의 탓도 절반은 된다. 언제나 나와 남이 이렇게 휘감겨 있다면, 꼭 나의 부정적인 모습들을 자기혐오의 원인으로 만들 이유는 없다. 저자는 끊임없이, 자기혐오와 거리를 둘 수 있는 수단으로서 분인을 강조한다. 이것은 무엇 때문일까? 자신의 경험 때문일까, 아니면 사회적 분위기에 대한 비판일까?


내 반이 남이라면, 남의 반은 나다. 그러니 나의 분인으로 나를 싫어할 필요가 없는 만큼, 남의 분인으로 남을 싫어할 필요도 없다. 남이 나를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듯이, 나 역시 남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어느 정도 우리는 서로에게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엮여 있다. 이것을 '개인'이라는 깔끔하게 구분되고 독립된 개념으로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이렇게 이해하고 나면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 이상으로 뭔가를 요구하는 것이 월권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어쩌면 개인주의보다 더 강하게, 상대의 변화를 요구할 권리가 없을 수도 있다. 개인주의는 자기 존재의 본질을 침해하는 타인의 존재에 대해서 어필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분인주의 안에서는 자기 존재의 본질을 침해당하는 것이 이론상 불가능하지 않은가? 그런 본질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미묘한 보수주의의 향기를 느낀다. "좋아하는 분인이 하나씩 늘어간다면, 우리는 그만큼 스스로에게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다."(157)과 같은 주장은 그래서 서늘하다.


"지워버리고 싶고 그만 살고 싶은 것은 여러 개의 분인 중에 불행한 분인 하나"(138)라는 것을 강조하고, 개인 자체를 지우지 말고 분인을 지우라는 요청은 간곡하고 또 실리적이지만 동시에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라는 숙명을 은근하게 강요하는 주장처럼 들린다. 저자의 의도가 무엇이든, 분인이 세계에 대해 요구할 수 있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해야만 이 혐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런 주장 자체, 그러니까 사회로부터 독립된 개인이 사회의 변화를 요구한다는 태도 자체가 독선적이거나 불가능한 전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이렇게 자기혐오로부터 지켜내는 '나'는 어떤 존재인가? 그것은 '진정한 나'인 걸까? 살아남은 '분인'이 '진정한 나'가 아니라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진정한 것도 아닌 나를 위해서 다른 나를 죽여야 할 이유가 있을까? 4장을 앞두고 여러 의미에서 혼란스럽다. 이제 슬슬 마지막 장으로 향해가는데, 나는 이 책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 지 아직 잘 모르겠다. 


#3

근 몇년 만에 퍼퓸Perfume의 신곡을 들었다. 알고리즘 덕을 보긴 했는데, 그만큼 요새 안 들었다. 한 4년 가까이? 저번 앨범인 <퓨처 팝Future Pop>도 사실 안 들었으니까 요새도 아니지. 여하간 오랜만에 나온 새 앨범 <플라즈마Plasma>를 들었는데, 그 중에서도 '스피닝 월드Spinning World'에 꽂혔다. 10여 년 전에 퍼퓸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의 충격과 비슷한데, 이거 뭐야 완전 내 취향이잖아?


장르에 대해 무지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악기와 구성을 감각적으로는 안다. 여러 장르가 뒤섞여 있어서 하나로 딱 말할 수는 없겠지만... 뉴 잭 스윙의 향도 살짝 나는 것 같고, 심지어 춤은 힙합 장르에서 차용한 부분들이 많아 보이고, 이런 혼종을 봤나... 이제 30대 중반을 향해 가고 있는 멤버들이 어째 더 젊어지는 거 같고,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매너리즘을 극복하고 어쨌든 또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고 있는 모습에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고 그런 것이다. 오랜만에 한 곡을 여러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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