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학준 Dec 08. 2022

다 피곤할 땐 하스스톤

22.12.07. 이경혁, 현질의 탄생 5

#

요 근래 책을 꾸준히 읽으니까, 집중하는 힘이 다시 길러져서 그런지 책 읽는 속도도 꽤 늘었다. 어제는 하루 만에 이시이 고타의 <가족의 무게>를 완독하고, 오늘은 <현질의 탄생> 2부를 끝까지 읽었다. <가족의 무게>는 조만간 읽은 내용을 정리하기로 하고, 오늘 메모는 <현질의 탄생> 2부 중에서 앞 부분에 대한 것들만 남겨 둔다. (1부 6장을 건너 뛴 것은 사실 이건 최근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면 다 아는 부분유료화의 탄생과 발달에 대한 이야기라서 그렇기도 하고, 뒷 부분에도 계속해서 언급되는 부분이라 그렇다. 좀 더 궁금하다면 책을 사서 읽는 게 훨씬 좋다.)


2부는 ‘현질’이라는 특수한 결제 방식이 비하적인 의미의 단어로 불리는 이유를 여러 가지 측면에서 바라보려 한다. 물론 이 책을 쓴 저자는 1세대 게이머로서 ‘현질’보다는 ‘오락실’에 조금 더 심정적으로 가까운 사람이기에, 1세대 게이머들이 이 결제 방식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는 이유들을 자세히 풀어내는 데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디지털게임의 역사와 결제는 불가분의 관계로 엮여 있다. 처음 발명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겠지만, 대부분의 디지털 게임은 상품이었고 상품을 구매하고 소장하든, 아니면 빌리든 결제는 필수적이었다. 게임에 돈을 지불하는 행위를 낭비라고 여긴 사람들은 있었지만 그들도 게임이라는 상품을 구매/대여하는 비용에 대해서만큼은 정당한 거래라는 점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니 최근 게임을 하는 사람이 자신이 돈을 지불하는 행위를 ‘XX질’로 낮춰 부르는 데에는 일종의 자조, 그리고 부당함 혹은 혐오감이 어느 정도 깔려 있고, 그것이 게임에 있어서 중요한 어떤 부분이 변했음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은 쉽게 유추가 가능하다. 이제 뭐가 변했냐는 것이 중요하다. 어 그런데, 그 전에 당신은 당신이 게임에 현금을 투입하는 행위를 ‘현질’이라고 부르는가? 분명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현금 투입을 ‘현질’이라 비하하지 않는다. 혹은 비하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정당한 게임 플레이의 일부분이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다. ‘~도 있다’고 하기에는 그 수가 많다. 매출과 이용자가 다른 게임들을 압도하고 있음을 보자. 대중적 인기가 있다는 것은, 비하가 모든 게이머들의 태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게다가 그 게임들 덕분에 게임 산업 자체는 규모가 커지고 있다. 


저자가 보기에 모바일 게임이 디지털 게임을 대중화시키면서 새로운 게이머들을 이 산업으로 대거 유입시켰지만, 그 특유의 결제방식이 기존의 게임 이용자들에게 강한 반감을 일으키면서 비난과 인기라는 얼핏 모순적인 현상을 만들어냈다고 지적한다. 대체 무엇이 기존 게임 이용자들에게 반감을 일으키는 결제 방식일까? 저자가 보기에 특정한 결제 방식을 ‘현질’이라 부르는 것은 1) 이 결제가 실제 게임 플레이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 2) 그러한 결제가 사실상 강제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의 방향과 연결되어 있다. 결제를 통해 게임 플레이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데, 그것을 피할 방법도 없을 때 사람들은 현금 투입을 ‘현질’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이 정도 '운빨XX겜'이면 '현질'이라고 불리지도 않는다


여기에도 다시 또 조건이 붙는다. 일단 이게 멀티플레이어야 한다. 싱글플레이는 나와 컴퓨터 혹은 주어진 레벨과의 대결이고 엔딩이 있다. 그러니 난이도와 숙련도의 상호 작용은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 (게임 데이터 자체를 수정해서 하드 모드를 만든다거나 하는 식이 아니면, 언젠가 게이머들은 게임을 공략해 낸다.) 하지만 멀티플레이의 난이도는 상대적이다. 엔딩도 없고 시간도 무한대이므로 오로지 나와 상대의 레벨 격차가 중요하다. 멀티 공략은 끝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서버가 종료될 때까지 달리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달리는 속도가 중요하다. 


현질은 이 속도를 건드린다. 남보다 조금 더 빨리 레벨을 올릴 수 있게 만드는 것, 혹은 남들이 자는 동안에 레벨을 올릴 수 있게 만드는 것을 가능케 한다. 게임의 싱글플레이는 애초에 큰 재미가 없거나 아예 지루한 수준이다. 반복적인 노가다에 가깝다. 그것을 하는 이유는 오로지 이를 통해 얻은 재화로 레벨을 올려 상대와 경쟁하기 위해서다. 그 시간을 아껴준다면? 꽤 매력적인 제안이 된다. 기존 온라인 게임의 주력 결제 방식인 정액제의 한계를 넘어서, 온라인 게임의 수익 저하 경향을 타개하는 방법이 바로 이 부분 유료 결제였다.


부분 유료 결제는 이제 다 익숙하긴 한데, 최초의 부분 유료 결제는 사실 게임 플레이 자체를 건드리는 게 아니라 소위 ‘룩덕’(이라고 순화하여 서술하고 있지만 사실은 좀 더 적나라한 용어다)질을 위한 스킨 등을 사는 데 한정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게임 규칙 자체에 개입하는 아이템을 사는 데 적용될 수 있다면 더 많은 수익이 보장될 것임을 게임회사가 알아채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부분유료 아이템, 확률형 아이템, VIP 시스템의 도입 등 세분화 가능하지만 핵심은 게임의 승패(멀티플레이의 경우 상대방 ‘보다 더 빨리’ 렙업하기)에 영향을 미치는 결제방식이다.


자동전투도 여기서 파생되었다. 렙업은 해야 하지만 몬스터 사냥은 지루하다. 상대는 계속 강력해지는데 그렇다고 쉴 수도 없다. 예전엔 게임 바깥에서 오토 프로그램을 사서 그 시간을 대체했다면 최근엔 게임사들이 직접 그 지루한 과정을 대신 수행해 주겠다며 비용을 요구한다. 이걸 안 쓰면, 이걸 쓰는 상대방이 당신을 압도할텐데 괜찮겠니? 무한경쟁의 시대에 이렇게 제자리걸음해서야 되겠니? 라는 압력이 게이머들에게 결제를 강요한다고 느끼게 만든다. 게다가 확률형 아이템을 판매하면서 이를 사실상 결제 없이 달성하는 게 불가능한 수준으로 게임 디자인을 짜 놓는 상황이 맞물리면서, 게이머들은 자신이 이 게임에서 어떤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지 의심하게 된다. 그것은 꽤나 불쾌한 일이다.


EA 벽돌 하나 정도는 내가 해 준 거 같다


사실 나도 꽤 큰 비용을 게임 내에서 아이템을 사는 데 치른 적이 있다. 내가 제일 좋아했던 게임은 EA의 <피파>였는데 (물론 그 중 몇 년은 코나미의 <위닝 일레븐>에 조금 더 마음이 쏠려 있었단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얼티밋 팀’ 때문이었다. 멀티플레이인데,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들로 드림팀을 만들어 온라인으로 상대방과 대결하고 보상을 얻어 더 좋은 선수들을 얻어 팀을 꾸릴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처음에 이 시스템은 무료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가면서 다양한 형태의 확률형 아이템들이 등장했다.


물론 기본적으로 이 게임은 누가 대신 해주는 게 아니기 때문에 게이머의 신체적 조건이 가장 중요하다. 조작에 익숙하지 않으면 아무리 돈을 발라 선수를 사 모아도 맥없이 기본 카드를 소지한 고수에게 털리기 일쑤다. 하지만 어느 정도 비슷한 수준의 게이머들 사이에서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선수 카드의 수준이다. 선수 카드는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해 아주 다양한 수준으로 세분화되어 있다. 특정한 조건을 만족하면 선수의 스탯이 상승한다거나, 한정된 기간에 일정한 조건의 퍼즐(잘 쓰지 않는 선수를 갈아 넣는)을 풀면 얻을 수 있는 높은 능력의 선수라거나, 포지션이 바뀌어서 선호하는 ‘메타’ 포지션에 어울리는 선수 등등 다양하다.


스쿼드를 보면 대충 넣은 시간/현금의 양을 알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진정한 폐인


이 선수 카드를 구하기 위해서는 1) 경기를 진행하여 코인을 얻어 그 코인으로 경매장에서 카드를 구입한다 2) 멀티플레이 승패 마진에 따라 얻는 카드 팩을 개봉해 선수 카드를 얻는다 3) 현금을 지불해 높은 확률로 좋은 선수가 등장하는 카드 팩을 구매한다 와 같은 방법이 있다. 문제는 경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코인의 양은 매우 적고, 시간이 갈수록 현금으로 선수 팩을 구입해 좋은 선수들로 스쿼드를 꾸린 사람들에게 이기기가 쉽지 않아 좋은 카드팩을 경기 결과를 통해 얻기가 어려워진다는 데 있다. 선수단이 좋아지는 속도가 게임을 열심히 하는 사람보다 많은 돈을 넣는 사람이 더 빠르다. 결제 없이 버티려면 체력과 시간이 넉넉하거나, 반사신경이 좋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냥 앉은 자리에서 계속해서 뒤쳐지고 게임을 통해 얻는 쾌락 – 승리의 쾌락은 사실상 획득하기 불가능해진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돈을 많이 투자한다고 해서 꼭 좋은 선수가 반드시 나오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데 있다. 선수팩의 확률을 공개하기 시작한 것도 최근인데다가, 그마저도 특정한 레이팅(레이팅이 높을수록 좋은 선수인 경우가 많다) 이상이 나올 확률만 적혀 있을 뿐이다. 운이 나쁘면 원하는 선수는 얻지도 못하고 30분 안에 100만원 이상도 날릴 수 있다. 소위 ‘천장’ 개념도 없어서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보다 못할 수도 있다. 게임을 하는 데에서도 즐거움을 얻지 못하고, 낮은 확률의 도박에 돈을 탕진하면서도 괴롭다. 이것을 ‘게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자신이 결제한 돈에 어떤 가치를 느낄 수 있을까? 이 정도까지 오면 ‘현질’이라는 말이 오히려 신사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말을 조금 더 중립적인 그리고 이론적인 용어로 풀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저자는 그것을 ‘납금플레이’라고 부른다. 여기서부터는 살짝 머리가 아프다. 라프 코스터나 브라이언 업튼, 그리고 닉 다이어-위데포드의 이론까지 동원하면서 디지털게임을 둘러싼 현상들을 하나의 도표로 정리하고, ‘납금플레이’의 위치를 확인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숨을 골라야 한다. 그러므로 내일 마저 정리한다. 사실 다 읽긴 했는데 말이 되는 문장으로 정리하려니 졸라 피곤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설을 잘 모르지만 읽고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