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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학준 Dec 08. 2022

간만에 극화

22.12.08. 다쓰미 요시히로, 동경 표류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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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복잡해 평소에 읽던 책들 잠깐 내려놓고 만화를 봤다. 얼마 전 국제도서전에서 별 생각 없이 사온 다쓰미 요시히로의 <동경 표류일기>다. 예전에는 행사에서 책을 여러 권 사왔는데, 가면 갈 수록 안 읽고 쌓아둘 것 같아 많아야 두어 권 정도를 사온다. 심지어 그렇게 사온 책 마저도 결국 서가 깊숙히 박혀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경우가 많은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 책은 책상에 널브러져 있던 죄(!)로 살아남았다. 간만에 그의 강렬한 그림에 홀린듯이 책을 봤다.



다쓰미 요시히로는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한 학년 선배에게 추천받아 알게 된 만화가다. (그 선배는 술주정꾼이었는데, 그가 술 주정을 부리는 것과 이 작가를 좋아하는 것 사이에 모종의 관련이 있다는 생각을 얼핏 했었다.) 그때는 '극화'라는 것도 잘 몰랐고 뭐 이렇게 우울한 작가가 있나 싶어서 몇번 보고 말았지만, 이상하게도 그때부터 이사를 다니면서 책을 여러 권 팔아야 할 때에도 그의 책을 버리질 못했다. 진지한 그림에 맞서서 끝까지 대결해보고 싶어서 그랬을까. 그렇지만 어제가 될 때까지 만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호흡으로 읽은 경우는 드물었다. 


그의 단편이 실려 있던 <새만화책> 몇 권도 내 서가에 꽂혀 있는데, 그 중 1권에 실린 <도쿄 고려장>을 보면서 몇 번이고 책을 덮었던 기억이 있다. 섬뜩하기도 하고, 그림이 마치 살아 숨쉬는 것 같아서 지금 눈 앞에서 그 사건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이 작품이 <동경표류일기>에도 수록되어 있는데, 다행히 그 때에 비해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이번에는 어떻게든 한 번에 끝을 볼 수 있었다. 좋은 건가? 무감각해진 것이 좋은 것인 경우도 있으니까. 그 사이에 너무 세상의 잔혹함에 익숙해진 것인지도 모른다. 제작PD로 일하면서 꽤 비일비재하게, 지옥을 통근하는 사람들을 만난 탓인지도 모르겠네.



만화를 보다보니 지금은 영업이 종료된 아트선재에서 그의 생애와 작품 세계를 극으로 각색한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본 기억도 떠올랐다. 그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함께 담겨 있는 <동경표류일기>였다. 애니메이션이 독특하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사실 별 생각이 없었다. 물론 별 생각이 없이 어떤 사람의 작품을 보러 간다는 행위가 사실은 꽤 애정을 요하는 것임을 그때는 잘 몰랐다. 아트 선재의 영업 종료와 함께 기억 속에 가라앉아 있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또 기억이 살아 돌아오는 걸 보면 어쨌든 그의 만화가 계속 내 삶의 주변에서 아른거렸단 사실을 나만 잘 몰랐던 것 같다.



수록된 만화의 분위기는 한결같이 음울하고, 음침하다. 전후 일본의 어수선한 분위기가 아직 완전히 사그라들지는 않았던 1970-72년 사이에 대부분 그려진 것들인데,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 마음에 남아 있는 어두운 그림자나 허장성세에 가려진 초라한 낯빛, 그리고 이 진실된 모습들이 드러나는 것이 초조한 사람들에게서 풍기는 불안함이 가득 담겨 있다. 초조하고 머쓱한 표정들을 짓고 있는 주인공들은 마치 가면을 쓰고 있는 것처럼 어색하다. 


그림뿐만 아니라 문장들도 꽤 훌륭하다. 수록작 [내 사랑 몽키]는 이렇게 시작한다. "익숙해진다는 건 무서운 일이다. 24시간 내내 소음에 둘러싸여 일을 하고 있으면 소음이 없는 세계가 오히려 으스스해진다. 말소리도 안 들리니 남과 대화할 필요가 없어지고... 기계 소리가 모든 것을 지배하며 사람은 갈수록 고독해진다. 많이 모이면 모일수록 서로의 연대감이 희미해져 사람은 점점 고독해진다. 다다미 넉장 반짜리 나의 성... 여기서 혼자가 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고독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얼핏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떠올리게 만드는 이런 문장들을 우리는 최근 만화에서 얼마나 마주할 수 있었는지.


1980년대 찾아올 버블 경제가 사람들을 들뜨게 하면서 사회의 그림자에 기댄 그의 만화는 많은 이들에게 달갑게 여겨지지 않았을 것이다. 전후의 다양한 문제들, 이념 갈등을 담고 있던 극화보다 조금 더 가볍게 소비할 수 있는 오락으로서 만화가 사람들의 인기를 끄는 것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는 다시 한 바퀴를 돌았다. 그 그림자들을 성공적으로 지워낸 것이 아니라 그저 일본 사회가 숨기고 있었던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 그의 작품은 또 한 번 그 가치를 드러낸다. 


반 세기 전의 작품이 지금도 사람을 불안하게 한다면, 작품이 날카로운 것일까 세상이 변하지 않은 것일까.  번역된 문장들이 읽는 사람의 폐를 찌른다면 그것은 그의 세상과 나의 세상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닐까. [지옥]을 읽으며 나는 세상을 향해 좋은 일을 한다는 사명감이 사태 판단을 그르치게 만들고, 그것이 그를 지옥으로 몰고가는 모습을 보며 사명감에 물들어 가는 사람들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본다. 가까이, 혹은 멀리에 있는 그들의 얼굴을 보며 나는 문득 불안해진다. 당신도 불안했다면, 한 번 읽어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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