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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학준 Dec 10. 2022

게임을 돈으로 하냐?

22.12.09. 이경혁, 현질의 탄생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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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다시 <현질의 탄생>을 읽었다. 2부 2장 '납금플레이' 부분이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전통적인 게임플레이의 구조에 대한 기존의 이론을 간단히 정리하고, 전통적인 플레이에 익숙한 게이머들에게 불쾌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현질'의 이론적인 위상을 고찰한다. 


모든 게이머는 텍스트가 제공하는 난이도에 맞서 플레이를 펼친다. 플레이가 거듭될수록 숙련도가 올라가고, 그에 맞춰 모든 게임 텍스트는 진행 정도에 맞춰 난이도가 오른다. 난이도-플레이의 상호작용은 어느 차원에서 일어날까? 게임에 대한 고전적인 연구들은 그것이 게임 '내부'에서 일어난다고 보았다. 현실과 분리된 가상의 시공간, 소위 매직서클Magic Circle은 공정한 규칙으로 만들어진 가상 세계고, 게이머는 이 안에서 자신의 능력을 통해 그 규칙을 재해석하며 플레이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의 게임은 게임의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기준이 모호하다. 어떤 사람들은 돈을 지불해 쉽게 게임을 깬다. 조금 더 전으로 올라가도 직접 게임 플레이를 하는 건 아니지만 게임을 공략하는 데 도움을 주는 다양한 공략집을 구매하거나, 게임 코드를 직접 수정하는 등 플레이에 영향을 주는 현실의 행위들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그렇다면 게임플레이를 조금 다양한 차원에 걸쳐 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하는 건 아닐까?


책모임 가장 초창기에 읽었던 책인데, 덕분에 다시 기억을 떠올렸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제국의 게임>을 언급한다. 이 책은 "유희로서 시작된 비디오게임이 점차 그 대중성을 주목한 자본에 의해 대규모 유희 상품으로 산업 체계 안에 포함되는 일련의 과정에 주목"한다. 현실 상품으로서 디지털 게임은 항상 상품이었기 때문에, 게임 상품 주변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행위들 역시 상품으로 포섭될 가능성이 항시 상존했다. 매직 서클 바깥에서 일어나는 행위들이 최초에는 개인 게이머들의 순수한 창의성의 발로였을지라도, 그것의 대중성에 사업가들은 군침을 흘렸을 것이다. 책에서도 언급하는 액션 리플레이와 같은 상용 치트 프로그램이 그 대표적 사례다. 그리고 게임 제작사는 생각할 것이다. 게임 외부에서 벌어지는 행위들이 상품화 가능하다면, 왜 그것을 제작사가 스스로 팔아 이윤을 얻지 않을까?


이거 집에 아직도 있다. 꽤나 쏠쏠했지...


이렇게 "현금 또는 등가의 현존하는 결제수단을 활용해 게임 콘텐츠가 제시하는 게임 규칙 안에 존재하는 아이템이나 경험치 등을 포함한 게임 내 수치와 상태에 변화를 줄 수 있는 대상을 구매함으로써 게임플레이를 만드는 난이도-숙련도 길항관계에 영향을 행사하는 행위"를 저자는 "납금플레이"(181)라고 부른다. 이것은 특수한 형태의 부분유료결제, 즉 '현질'의 중립적이고 이론적인 용어다. 납금플레이와 고전적 플레이, 그리고 메타 게이밍이라는 세 가지 차원의 상호작용의 위상이 이렇게 정리된다.


1) 고전적 플레이 : 가상 공간으로서 게임의 경계 안에서 난이도와 숙련도의 동적인 길항작용

    - 게임 내에서 수행하는 다양한 행위들 일체

2) 납금플레이 : 현실 행위이지만 게임의 난이도와 숙련도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행위

    - 아이템 또는 부스터 구매와 같은 '현질'

3) 메타 게이밍 : 게임 플레이 밖에서 난이도/숙련도의 길항작용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행위

    - 게임 공략집 구매, 메타 데이터 수정, 개인 패치, 혹은 소위 그 '메타'


새롭게 등장한 '납금플레이'의 차원은 어째서 고전적 플레이에 익숙한 게이머들에게 불쾌함을 유발하게 되었을까? 동전으로 이어가는 오락실 게임기의 컨티뉴 플레이와 같이 납금플레이가 완전히 새롭게 등장한 것은 아닐진대, 이전의 납금플레이에 비해 오늘날의 납금플레이는 '현질'이라는 비하적인 용어로 불리게 되는 것일까? 다음 장에서 저자는 이 '현질' 비하의 밑바닥에 게임플레이에서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한 게이머들의 좌절감이 깔려 있음을 설명한다.


내일 김장을 해야 하기에 여기까지 읽는다.




PS. 게임 데이터 수정 부분을 읽다보니, EA의 피파2001 게임 패치를 만들던 때가 떠오른다. 피파 시리즈 최초로 한글화가 되어서 기대가 많았는데, 이영표를 '이용표'라고 오타를 내놔서 꽤나 분노했었다.(당시 나는 안양LG의 팬이자 이영표의 팬이었다) 심지어 게임 안에서는 영어 입력만 가능해서 이를 정상적인 방법으로 수정할 방법이 없었다.


출처 : https://m.blog.naver.com/saromeo10/220638478427


어떡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당시에 피파 게임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커뮤니티인 피파코리아라는 곳이 있었다. 그곳에 있는 유저들도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각자 나름의 방법으로 이를 해결하려 시도하고 있었고, 나는 그 시도들을 여러 개 조합해보며 문제의 중심에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얻은 결론은 믹싱된 게임 데이터를 하나씩 해체해서, 선수 이름 데이터의 헥스코드를 수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조금 무식한 방법으로 해당하는 한글 데이터의 헥스 코드를 일일히 넣어본 후 바꿔봤는데, 정작 게임 상에서 적용이 안 되었다. 해당하는 폰트도 찾아서 변경을 해줘야 하는데, 그건 또 어디에 있는지 찾느라 한참을 헤맸다. 


전문가가 아니다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고, 그 사이에 다양한 인게임 패치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누군가가 먼저 데이터를 수정하는 데 성공했고, 나중엔 폰트를 바꿔치기 해서 아예 게임 내에서 한글이 입력되도록 적용한 패치까지 나왔다. 피파 2000에서 2002까지 거의 3년 넘는 시간 동안 이런저런 패치들을 만들며 더미데이터를 찾고 수정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한계를 깨닫고 여기서 패치 만들기를 끝냈다. 물론 그 이후에 위닝을 하면서 콜네임/이름 수정 패치를 만들어서 올려본다든지 하는 일은 종종 취미삼아 해봤지만 그때처럼 열심히 하진 않았다. 그때부터 그렇게 게임 데이터를 바꾸고 헤집고 다니던 일을 지금까지 했다면 어땠으려나.


결과적으로 소득은 없었지만 이것도 내게는 일종의 게임과 관련된 플레이로서 기쁨을 가져다주는 행위였다. 내가 변경한 대로 게임이 바뀌는 부분들에 즐거워서 게임 하는 시간보다 데이터 수정하는 데 시간을 더 보냈으니까. 심지어 예전 피파의 경우 공의 이동 궤적을 결정하는 변수들을 수정하려면 메모장만 열어서 텍스트 파일 하나 수정하면 되었다. 쉽지만 수치 하나만 바꿔도 게임이 조금 더 실제처럼 변했다(고 생각했다). 최적의 수치를 찾아서 게시판에 공유하고,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아 다시 수정하는 과정 자체가 나에겐 현실 게임인 셈이었다. 그게 내겐 일종의 메타 게임이었던 것 같다. 


이 당시엔 패스미스라는 개념도 없고, 공 궤적도 이상했지만 나에겐 세계 최고의 게임이었다...
그러고보니 2002에도 이운재가 '이원재'였던 걸로 기억한다... 이건 나중에 바꿨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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