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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학준 Dec 13. 2022

본 책 또 보고

22.12.13. 히라노 게이치로, 나란 무엇인가 4 (끝)

다 읽었으니 이제 서가로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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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책을 동시다발적으로 읽어나가다보니, 어떤 책들부터 정리를 해야 하는지 좀 난감해질 때가 있다. 예전에 학부 수업을 들을 때 이준웅 교수가 자기는 책을 하이퍼텍스트 스타일로 읽는다고 했는데, 나도 그렇게 책과 책 사이를 건너뛴다는 점에서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게 있다면 그는 교수가 될만큼 똑똑하고 나는 딜레탕트가 될만큼 낄낄댔다는 점이다.


낄낄이지만 어쨌든 매일 글을 쓰기로 했으니까 정리를 좀 해본다. <나란 무엇인가> 4장부터 끝부분까지 읽어봤다. '분인' 개념과 '연애'를 한데 묶어 설명하는 장이다. 그는 연/애를 둘로 나눈다. 불타는 감정으로서의 연과, 관계의 계속성을 의미하는 애로. "인간의 연애 감정은 시소처럼 한쪽이 높아지면 한쪽이 낮아지는 주기를 반복적으로 되풀이할 것이다."(162) 덧붙여 미시마 유키오는 '연'을,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애'를 중시하는 작가라는 게 저자의 의견이다. 금각사 정도를 읽었을 뿐인 내가 이 구분에 대해 가타부타 말할 수 있는 건 없으니, 일단 그렇다고 하자.   


그는 연(불타는 감정)은 어렵지 않지만 애(지속적 관계)는 복잡하다 말한다. 분인주의적 관점에서 애란, "그 사람과 있을 때의 내 분인이 좋은 상태"(171)다.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즐겁고,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땐 별 감정이 없다면 당신은 그 사람과 함께할 때의 분인 상태에 만족하는 것이다. 타자를 경유한 자기애다. 분인주의는 이러한 자기애가 동시에/여럿 존재할 수 있다고 본다. 사실로서 그러하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이 뭐가 나쁘냐는 가치판단으로서도 그렇다.


여기에 대해선 사람마다 판단이 달라질 것이다. 분인 개념을 받아들이냐의 여부로도 갈리지만, 받아들인 후에도 연애에 있어서만큼은 동시에/여럿과 연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의 여부로도 갈린다. 관점을 끝까지 밀어붙인다면, 불가능할 것도 없고 불가능해서도 안된다. 모든 분인은 진정한 나이기 때문이다. 동시에/여럿을 연애한다 하여도, 누구 하나 거짓된 것이 없을 수도 있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입장을 보류하지만, 설명이 더 필요하다고 느낀다. 전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다양한 분인들도 결국 주종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분인이 '진정한 나'로서 연/애도 주관해야 하는 것은 아니냐는 질문에 답해야 한다고 본다.


어쨌든 분인주의의 장점은 분명히 있다. 고인과 관계맺은 분인이 내 전부가 아니기에 '애도'할 수 있다. 또한 누군가를 살해하는 행위는 그와 관계맺은 무한한 분인의 연결을 파괴하는 행위라는 깨달음도 준다. "한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그 사람의 주변, 나아가 그 주변으로 무한히 뻗어가는 분인끼리의 연결을 파괴하는 짓이다."(194) 신형철 평론가가 눈여겨 본 부분이 여기인데, 이 부분은 책 전체의 가치에 대한 판단을 떠나 한 사람의 죽음을 가벼이 여기지 않아야 하는 이유로서 받아들이고 되새겨야 할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물리적 구분을 바탕으로 나뉘어질 수 있는 '개인'이 아니라, 낱개의 인간으로 분리되지 않고 오히려 인간 내의 다양한 부분들의 상호 연결로서 바라보는 '분인' 개념은 서로 다양한 문화의 공존을 추구하기 위해 적절하게 채용해볼만한 생각이라고 본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문화를 존중하자는 다문화주의는 분명 다양한 차별을 철폐하는 데 긍정적 역할을 했지만, 동시에 서로에 대한 절대적인 침투 불가능성을 인정한 까닭에 융합이나 이해를 건너뛰는 단점도 있었다. 그 점에서 '융합'을 이야기하는 분인주의의 가능성을 엿볼 필요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있다.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순수하고 진정한 나, 라는 헛된 목표 때문에 자신을 혐오하고 저주하는 사람들에게 저자의 주장이 해방감을 가져다 준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특히 진정한 나라는 독립된 실체 대신, 끊임없는 관계들 속에서 다양한 분인들 간의 비율 변화로 나타나는 나라는 분인 개념을 받아들이면 자기 부정, 자기 혐오, 타인에 대한 몰이해를 피할 수 있는 가능성도 생겨난다. 나와 당신이 어떻게 더불어 살아갈 것인가를 물을 때 서로가 변하지 않은 채 갈등하기보다, 분리 불가능한 관계로서 나와 당신이 함께 변해갈 수 있다는 믿음도 싹틔울 수 있다.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의문이 좀 남아 있지만, 꽤 많은 사람들은 위로와 희망을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나를, 타인을, 세계를 향해 꺾이지 않는 마음이랄까... 너무 쉽게 미워하지도 말고, 너무 쉽게 판단하지도 말며, 너무 쉽게 무시하지도 말라. 당신과 타인, 그리고 세계는 부분이자 전체로서 불가분의 관계라는 점을 항상 기억하라. 다 알고 있지만 새삼 묵직하게 느껴지는 대답은 아닐지. 이 책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 책으로 휘리릭 넘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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