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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문희 Dec 13. 2022

페스트의 슬픔과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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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를 중간까지 봤다. 세번째 읽는 듯한데, 이건 2020년에 구입한 문학동네 번역본이다. 처음 읽은 번역본은 당연히 불문학자 김화영의 작품. 민음사판 '알베르 카뮈 전집'의 일부로, 고향 부모님 집에 있다. <이방인>, <시지프 신화>, <정의의 사람들·계엄령>, <단두대에 대한 성찰·독일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도 함께다.

  문학동네 판본은 2020년에 샀다.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전염병을 다룬 온갖 책을 봤는데, 서울 집에는 <페스트>가 없었다. '그래서 샀다'는 결론은 너무 낭비왕 같나. 제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얼마 전 정말 오랜만에 카뮈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다음날 바로 책장에서 책을 꺼냈다. 심보선의 시집 이야기를 하다가 카뮈로 이어진 대화였다. 그 사람은 <페스트>가 심보선의 두번째 시집 <눈앞에 없는 사람> 같다고 했다. <이방인>은 <슬픔이 없는 십오초> 같고. 후자는 부조리에 대한 인식과 부정의 태도가 두드러지는 반면, 전자는 부조리를 수용하고 인정하며 슬며시 희망이라는 것의 존재를 엿보게 한다는 이유였다(들은 말을 내 식대로 정리해서 하는 얘기다). 좋은 독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방인>은 어떤 사건을 마주한 개인의 실존을 다룬 작품인 반면, <페스트>는 집단적 사건의 충격파를 그렸다는 점에서도 다르다고 실은 말하고 싶었다. 모두가 같은-운명이라고 해도 좋을 법한- 사건을 겪는 가운데 등장인물이 저마다 어떤 선택을 하는지, 그 동기는 무엇인지, 어떤 갈등으로 이어지는지, 그럼에도 어떻게 '연대'(합일이 아니다)하는지를 보여주는 데서 페스트는 다른 결의 소설이라고. 하지만 그 말을 하지는 못했는데, 상대방이 책의 마지막 장면인 불꽃놀이와 지켜보는 사람들의 심리 묘사가 탁월했다고 이야기해서였다. 그 대목이 잘 기억이 안났다. 책을 꺼내보니 아뿔싸, 마지막 챕터 5부로 넘어가는 페이지에 띠지가 꽂혀 있었다. 2년 전에 4부까지만 보고 말았구먼….

  예전엔 문장 하나하나가 인상깊어서 멈칫거리며 읽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느낌이 꽤 다르다. 전개가 엄청나게 빠른 소설이다. 인물이 교차하고, 상황이 마구 들이닥친다. '진격'하는 서사다. 자연 묘사에 공을 들이고 독백 등 심리 설명에 치중할 때가 있지만 문장도 간결하다. 이따금 건조하다는 느낌도 들 만큼. 기자 출신이란 걸 알면서도 예전엔 왜 못 느꼈을까. 한때 안다고 생각한 데서 모르는 것을 발견하고, 생경했던 것은 도리어 익숙해진다. 나이를 먹어가며 같은 책을 또 읽는 즐거움이 있다더니. 그럼 나는 늙은 것인가. 슬픈데 기쁘다. 서러운데 재미있다.


P.S. 카뮈 얘기를 하다가 집에 와서 이불을 뻥뻥 찼는데, <이방인> 얘기를 하다가 주인공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서였다. 캐릭터가 강하고 선명한 것으로는 손가락에 꼽아야 할 정도라고 말하던 차였다. 그런 말을 내가 했다. 그래놓고는 이렇게... "주인공 이름이... 안나왔었나요?" "앗, 아뇨. 뫼르소요." 뻥, 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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