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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학준 Dec 12. 2022

<18초>의 추억

22.12.12. 칼럼 A/S

애증의 로고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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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미국에 연수 가 있는 선배에게서 카톡이 왔다. 잘 먹고 잘 사냐? 잘 먹고 잘 살고 있습니다. 근황을 간단히 주고 받다가 7년 전 일이 떠올라 카톡을 보냈다. "참, 선배님... 최근에 제가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이란 책을 읽었는데, 다 읽고 나니 2015년 <18초>가 떠오르고 마 그렇습니다..."


7년 전, 그러니까 2015년 한여름, MBC의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 맹위를 떨치던 그 때 홀연히 나타났다가 장렬히 사라진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름하야 <18초>라고, 지금은 익숙하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낯선 '숏폼' 콘텐츠로 승부를 보려던 파일럿 프로그램이다. 부제가 무려 조회수 배틀 월드 리그, 18초짜리 짧은 숏폼 컨텐츠를 10개 정도 만들어 올리고 하루 동안 조회수를 재서 우승자를 뽑는 프로그램이었다. 


출연한 셀러브리티 중 몇몇은 아직도 활발히 유튜브 활동을 한다. 당시 우리에게 큰 도움을 줬던 트위터 코리아의 이사님은 더 높은 곳으로 가셨다. 그 사이 나는 제작에서 잠시 손을 뗐고, 선배는 연수를 갔다. (병렬해 놓고 보니까 꼭 문제가 있었던 거 같지만, 그냥 먼 미래의 결과가 그렇다는 것 뿐이다) 당시 입사 3년차, 아직 아무 것도 모를 때 조연출로 들어갔던 내게 즐거움과 상처를 함께 가져다 줬다. 종종 선배는 방영일에 맞추어 단체 문자를 보낸다. 


18초라는 짧은 길이의 영상으로는 내러티브를 만들어내는 게 불가능하다는 시선이 파다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방송국은 내러티브로 승부를 보는 곳이니까. 제작진 내부에서도 비슷한 불신이 완벽히 사그라든 건 아니었다. 처음 선배가 내게 보여준 기획안에 있었던 강한 확신 - 그러니까 이제 곧 숏폼의 시대가 옵니다 - 은 수많은 결재 과정을 거치며 차츰 움츠러들었다. 덕분에, 잊혀졌다.


왜 망했을까 고민했지만 그때는 잘 몰랐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숏폼의 시대가 도래했을 때 - 틱톡은 식민지 점령군처럼 파고들었다 -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 같다. 숏폼이 유행한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그것이 왜 유행하는 지는 그땐 잘 몰랐다. 조금 더 정확히 알았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뚝심 있게 밀어붙이지 않았을까? 설득이 좀 더 쉽지 않았을까? 우연히 서점에서 이 책을 집어들고서야 나는 뒤늦게 이해했다. 우리가 어떤 시대의 전조에 서 있었는지를.


잠깐 예전 클립들을 다시 봤다. 어설픈 시도들이 눈에 밟힌다. 그럼에도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얼마 전에 PD저널에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에 대한 간단한 글을 써서 보냈는데, 근 한 3년간 글을 쓰면서 제일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 왜 그랬을까, 왜 이렇게 맘에 안 들까 한참 고민했는데 오늘 오랜만에 연락이 온 선배와 카톡을 주고 받다가 깨달았다. 내가 그 때 이야기를 하질 않았군. 숏폼의 시대로 넘어가기 직전에, 무엇을 보고 무엇을 깨달았는지를 썼다면 좀 덜 답답했을 것 같다. 기억을 잊기 전에 문장을 정리하여 둔다. 언젠가 기회가 온다면, 그 땐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 싶다.


쓰다보니 기억이 돌아오는데, 그때 페리스코프라는 앱을 막 트위터에서 인수했었다. 스냅챗과 틱톡처럼 휘발성이 강한 생중계 앱이었는데, 그 이후로 안타깝게 큰 영향력을 발휘하질 못했다. 애초에 트위터 유저들이 익명성에 목숨을 거는데 얼굴을 까고 나오는 영상 콘텐츠를 달가워하진 않았고, 생중계 앱이다보니 소위 '챌린지'처럼 확산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문제가 있었다. 지금이라면 다른 선택을 했을까? 글쎄, 그냥 그 앱으로 할 수 있는 다른 방향을 고민했을 것 같다. 



http://www.p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74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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