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학준 Jan 06. 2023

진짜로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면

23.01.06. 다카하타 이사오, <당신이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면>


#

팀을 옮기기 직전이라 인수인계로 정신이 없다. 일부러 식사 약속 안 잡고 점심에 책을 읽는 게 낙이었는데, 사람들과 인사도 할 겸 밥을 계속 먹었더니 정작 책 볼 정신이 없다. 그래서 두껍지도 않은 조무원의 책을 며칠째 읽고 있다. 진도도 잘 안 나가서 아직 끝까지 못 갔다. 그래도 이번주 안으로는 다 읽고 정리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머리도 식힐 겸, 얼마 전에 잔뜩 서점에서 집어온 책들 가운데 가장 얇은 책을 읽었다. 다카하타 이사오의 강연록이다. 다카하타 이사오는 <반딧불이의 묘>, <빨강머리 앤>,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엄마 찾아 삼만리> 등 유명한 애니메이션들을 여럿 만든 지브리의 작가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 지브리다. 2015년 6월 29일, 일본 오카야마시 시민회관에서 열린 전몰자 추도식에서 행해진 평화 강연의 대본이 이제서야 번역되어 나왔다.


79세라는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강연에서 자신이 전쟁을 반대하는 이유와, 진정으로 전쟁을 반대하려면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를 조리있게 서술한다. 오카야마에서 벌어진 미군의 공습으로 도시가 불바다가 되었을 때 그는 고작 9살 때였지만, 그 강렬한 기억은 팔순을 앞둔 당시에도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눈, 코, 피부에 새겨진 공습의 상흔은 그가 전후 일본공산당을 지지하는 계기가 된다.


#

공습을 직접 겪은 세대지만 그는 전쟁에 대해 직접적으로 말하길 꺼렸다. "제가 겪은 일 따위는 말씀드릴 만한 게 못 된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고 말한다. 전쟁을 겪었고, 공습의 두려움에 시달렸지만 어쨌든 살아남았고, 많은 나라의 젊은이들은 이 무의미한 전쟁을 이어가기 위한 위정자들의 고집에 헛되이 목숨을 잃었다. 자신이 말할 조건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가 입을 여는 것은, 이 참혹하고 쓰라린 경험으로 쌓아 올린 '부전의 맹세'(<진격의 거인>이 가져다주는 불쾌함의 근원이 이것이다)가 어느새 허물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경악스러웠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은 자신이 잘 하는 분야를 통해 자신의 사상과 의견을 전달하려고 한다. 하지만 다카하타 이사오는 자신의 작업물인 애니메이션이 전쟁 반대에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반딧불의 묘> 같은 애니메이션을 통해 당시의 참상을 전달하고, 관객들의 마음에 전쟁의 참혹함을 각인시켜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줄 수는 있지만, 정작 전쟁을 일으키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이 작품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전쟁이 이 고통을 가져다 줄 것이라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참해지지 않으려면 '이겨야 한다'고 말하며 전쟁을 독려한다.

 

그런 점에서 생각해 보면 얼마나 처참한 상황을 겪었는지를 이야기한들, 아니 설령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세계 곳곳에서는 지금도 비참한 전쟁이 계속되고 있잖아요. TV나 무언가를 통해 전쟁이 얼마나 비참한 상황을 만들어 내는지 분명히 알 수 있는데, 그럼에도 전쟁은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국가는 전쟁을 선택하죠. (16)


패배의 비참한 체험을 말하는 것만으로는 전쟁을 막을 수 없다. 오히려 역사에 대한 배움이 필요하다. 그것이 그가 발언을 자제했던 이유이자, 더는 발언을 자제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전쟁의 전후 상황, 전쟁을 일으킨 이유, 전쟁을 피할 방법에 대해 공부하고, 전쟁이 국민과 정치인을 어떻게 만들었으며, 누가 이 참혹한 결과에 책임을 졌는지를 배워야만 전쟁은 '진정으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그림이 아니라, 말을 한다.


#

그가 경험한 오카야마 공습의 밤은 끔찍하다. 비처럼 내리는 소이탄은 목조 건물 위주였던 오카야마를 불태웠다. 대피 방법도, 대응 방법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일본 정부 때문에 시민들은 헛되이 불을 끄려다 화상을 입고, 물 속으로 대피했다가 삶아지고, 건물 안으로 숨어들었다가 잿더미가 되었다. 도자기인지, 찜솥 안의 구이인지 구별하기 어려울만큼 훼손된 사람의 시체들이 타카하타의 곁에 널브러져 있었다. 잊을 수 없는 어두운 풍경으로 그에게 남았을 것이다.


끔찍한 공습이 지나고, 부서진 교정에서 민주주의 교육이 이루어졌지만 이것은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전쟁의 패배가 가져온 결과였기에 급작스러웠고, 민주주의에 대해 아는 바가 없기는 선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어설프게나마 토론이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그 결과가 민주 시민의 양성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전쟁이 끝나고 천황제는 살아남았고, 천황의 순행은 여전히 그 어떤 것보다 그 지역의 중요한 사무였다.


그럼에도 전쟁 없는 70년이 가능했던 것은, 전쟁의 패배가 불러온 결과를 당시의 일본 정치인들도 몸으로 겪었기 때문이다. 타카하타는 좌파와 우파 정치인 모두 전쟁은 다시 일어나선 안되는 끔찍한 일임을 체득했기에 헌법9조가 존속할 수 있었다고 본다. (직접 그들이 나서서 평화를 희구했다고 보기에는, 강제로 평화로워야 했던 당시의 상황이 더 큰 영향을 미치긴 했겠지만) 하지만 그들은 이제 일선에서 물러났고,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가 전쟁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불편'해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 자유로운 시대에도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말하기 어려워하는데, 전쟁과 같은 광기어린 시대에 전쟁을 반대하는 의견을 내는 용기있는 행동이 가능하겠냐고 묻는다. 남들의 기분을 거스르는 것을 싫어해서 아무 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우물쭈물함과, 주변 사람들을 고통의 구렁텅이로 끌어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것도 책임지지 않으려 회피하는 뻔뻔함이 일본인들에게 여전히 남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한 때 반전주의자였던 작가가 손쉽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전쟁을 독려하는 시를 썼던 사례를 이야기하며, 나와 당신의 나약함을 강조한다. 아무리 자신이 전쟁에 반대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주변 사람들과 분위기는 쉽게 거스르기 어렵다. 우리는 겁이 많고, 그렇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면 차라리 이기기를 바라며 전쟁을 독려한다.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는가? 헌법9조는 마지막 방파제이지만, 이제 전쟁을 원하는 이들 - 전쟁을 모르는 이들은 이 방파제를 터버리고 싶어한다.


#

이대로 재무장을 향해 차근차근 걸어가는 국가에 저항할 방법은 없는가? 그는 연설 후 3년이 지난 2018년 사망했고, 그 사이 일본은 방위예산을 늘리고 헌법9조를 사문화하는 데 사실상 성공했다. 헌법을 개정하지는 않았지만 장거리 미사일을 확보하고, 해외로 자위대를 파견하여 군사 협력을 강화하는 등의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정부가 만들어내는 전쟁의 바람에 또 다시 휩쓸리지 않으려면 그가 말한 것처럼 국가가 하자는 대로 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가며 평화를 껴안고, 헌법9조를 지키는 수밖에 없다. 그 가능성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지만.


이것이 다른 나라의 일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도 일어나는 일들이라는 게 꽤 불안하고 두렵다. 선제 타격을 운운하고 전쟁을 불사한다는 말들을 쉽게 내뱉는 위정자와, 이에 반대하면 매국노 취급하는 분위기가 이곳에도 있다. 전쟁을 겪은 세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려 하는 지금이 가장 전쟁이 되살아날 가능성이 높은 시기가 아닌가 한다. 그런 점에서 자신의 참혹한 경험을, 바로 최근에서야 내놓았던 그의 말의 무게를 가늠하기 어렵다.


얇고, 절박한 책이다. 시간이 지난 후, 우리에게 시간이 있었다는 사실을 후회하지 않기를 바란다. 급히 읽은 책이라 나중에 생각을 더 덧붙이고 싶다. 이 책의 번역 후기에서 언급한 <스파이의 아내>에 대한 옛 글도 다시 손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 다시 이 영화를 본다면 나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매거진의 이전글 귀걸이와 코걸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