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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학준 Apr 26. 2021

애서가에게 던지는 질문

이준익, 자산어보(2021)

*영화 <자산어보>의 스포일러가 들어 있습니다


브로맨스물, 혹은 역사물. <자산어보>가 어떤 영화냐는 질문에 대한 답으론 모두 나쁘지 않다. 다만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 입장에서 또 다른 답을 내려보고 싶을 뿐이다.

<자산어보>와 <대학> : 두 방향의 힘


이 영화는 '애서가'에게 던지는 짖궂은 질문이다. 주인공들 모두가 직간접적으로 책과 관계를 맺고 있는 애서가이지만 각자는 나름의 방식으로 책 앞에서 좌절한다. 하고 싶은 말은 책으로 쓸 수 없고, 책 너머엔 몰랐던 잔인한 세계가 있다. 게다가 책으로 쓰지 않은 말들이 마음으로 전해질 수 있다면, 당신들이 사랑해 마지않던 그 책이란 대체 무슨 소용이냐고 영화는 묻는 게 아닐까?


영화에서 주로 언급되는 책 세 권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하나는 영화 제목이자 정약전이 유배지인 흑산도에서 쓴 <자산어보>다. 그가 어부 장창대와 함께 이 책을 완성해 가는 과정이 영화의 핵심 줄거리인지라, 이 영화를 언급하는 사람들 누구든 이 책과 관련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성리학과는 무관해 보이는 <자산어보>를 쓰는 행위에서 드러나는 정치적 의미나, 이 책을 쓰는 과정에서 피어나는 두 사람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들 말이다. 


장창대를 움직이는 건 <자산어보>가 아니라 <대학>이다.

다만 장창대를 움직이는 건 <자산어보>가 아니다. 혼자서 읽어보려고 애쓰다가 끝내 포기했고 정약전에게 가르침을 받고 나서야 읽을 수 있었던 <대학>이 그의 동인(動因)이다. 장창대가 뭍에서 온 상인들에게 매달리듯 구해주길 부탁하고, 정약전에게 무릎을 꿇으며 가르침을 요청하는 것도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다. 


<대학>은 사서삼경(四書三經)이라 불리는 유교 경전 중 하나이자, 학문의 목적과 진행 방향에 대해 논하는 책이다. 몸과 마음을 바로잡아 선한 본성을 실현한다면 좋은 정치를 할 수 있고, 세상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말이 담겨 있다. 성리학의 대강이 간결하게 정리되어 있는 이 책이 창대에겐 문지방과 같다. 비록 지금은 가난한 서얼의 신분이나 여길 넘어서면 출세길이 열린다. 


자신의 책을 쓰는데 창대의 도움이 필요했던 약전은 거래를 제안한다. <자산어보>에 창대가 힘을 보태는 대신 <대학> 읽기에 자신이 도움을 주기로. 두 사람을 움직이는 서로 다른 방향의 힘이 한데 어우러지며 영화 속 사건은 진행된다. 거래의 결과 창대는 행동의 근거가 되는 지식들로부터 자유로움을, 약전은 사물들의 세계를 탐구하며 즐거움을 얻는다. 


말단 별장(別將)이지만 그를 포함해 관리 그 누구도 책에 대해 관심이 없다. 책에 관심이 있는 이들은 세상의 가장자리에 있는 사람들 뿐이다.

<목민심서> 앞의 까막눈들


책을 잘 읽지 못할 때에도 창대는 경전의 구절들을 언급하길 꺼리지 않았다. 관아에 나아가 별장(別將)에게 세금 징수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할 때에도 버벅거리며 문장을 읊는다. 마치 세상의 잘못에 대해 '근거 있는' 비판을 행한다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 믿는 듯하다. 안타깝게도 별장은 아는 게 없는 까막눈이다.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니 옳은 말도 소용이 없다. 곤장을 때리고 옥에 가두어 그를 조용히 시킬 뿐이다.


불일치, 관객은 이제 불길하다. 가르침은 오직 책 속에만 남아 있음을 창대는 알지 못한다. 약전과의 거래는 그의 눈을 뜨게 만든 것인지 오히려 가린 것인지 혼란스럽다. 책을 읽을 수 있게 되니 자신을 버리고 뭍으로 돌아간 아버지가 다시 돌아와 관직으로 나아갈 길을 열어주겠다는 제안을 받게 된 창대의 표정엔 욕망이 어른거린다. 이것이 출세욕인지, 올바른 정치에 대한 희구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창대에게 이제 이 작은 섬은 자신을 구속하는 신분적 제약과 동일시된다. 뭍으로 나아가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섬 안에는 자신을 염려하는 정약전이 있고, 섬 밖에는 <목민심서>를 쓴 정약용이 있다. '반상평등'이니 하는 반역적 사상을 가진 약전이 아니라, 여전히 성리학의 질서 안에서 나라를 올바르게 다스릴 방법을 궁구하는 약용의 길이 자신의 길처럼 보인다. 몇 번의 왕래 끝에, 창대는 약전에게 고한다. 당신보다 동생이 더 훌륭하다고.


창대가 경전을 읊고, 경전에 삶을 끼워 맞춰가는 모습이 약전에겐 두렵다. 이미 경전을 외는 이들이 망쳐놓은 풍경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를 이 작은 섬에 유배보낸 사람들도 경전에 통달한 이들이었다. 읽어선 안되는 책을 읽고, 책으로 쓸 수 없는 세상을 꿈꾸었단 죄로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삶이 바닥으로 전락하는 모습을 본 약전에게 <대학>은 위험한 책이다. 책으로 쓸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있음을 창대는 모른다. 약전이 말을 아끼는 이유를 창대는 이해하지 못한다.


변요한의 얼굴은 영화의 감정이다.

책이 다 무슨 소용이요


양아버지가 내민 손을 붙잡고 도착한 나주에서 창대가 마주한 현실은 참혹하다. 탐관오리들은 제 욕심을 채우려 군포를 허위로 징수하고 있고, 살길이 막막해진 백성들은 아이를 낳은 죄라 자책하며 관아에서 양물(!)을 자르고 죽는다. 처절한 시위 앞에서 눈하나 깜짝 않는 아전들의 모습을 본 창대의 얼굴에 환멸이 스친다. 그런 그에게 나주 목사는 '네가 잘못 본 것'이라 말한다.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은 책에서 보던 것과 많이 달랐다. 갓끈을 풀고 아전의 목을 조르는 창대의 눈은 무력감과 배신감으로 물들어 있다. 그간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목숨만 건져 흑산도로 돌아오는 창대를 기다리는 건 약전의 죽음과 책 한 권이다. 창대는 자신 앞으로 남긴 <자산어보>의 서문을 읽는다. 이곳에 장창대란 이가 있었고, 그는 나와 함께 책을 썼다는 말을 읽는다.


반상평등의 세상에 대한 책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정약전은 이 책을 쓰면서 나름의 방식으로 실현했다. '상놈의 자식'이라는 말을 농담으로 쓸만큼 한계가 있는 이였지만, 정치와 무관한 사물의 책을 쓰면서 가장 정치적 목적을 달성한다. 책의 효용에 회의를 느꼈지만, 정작 책을 쓰는 과정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좌절을 극복한다. 실천으로서 만들어지는 형체 없는 책을 통해.


창대 역시 자신이 평생동안 바라던 책을 읽고 출세하지만, 동시에 책이 말해주지 않는 현실 앞에서 무력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 좌절의 끝에 함께 책을 쓴 이가 남긴 서문을 읽는다. 흑산도로 향하는 창대의 표정은 어둡지 않고, 어두워 무섭다는 흑산도는 색으로 물든다. 창대는 책을 통해 세상으로 나가려 했고, 약전은 책으로 쓸 수 없는 꿈을 꾸었다. 모두 책 앞에서 좌절하고, 동시에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극복한다. 


사람과 책, 세상과 책의 관계에 대해 주인공들은 모두 대답했다. 이제 당신이 사랑하는 그 책은 당신에게 무엇인가, 질문에 스스로 대답할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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