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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학준 Jan 18. 2023

아파서 쉬는 김에

23.01.18. 

언제쯤 이거 다 읽을까...

며칠 많이 아팠다. 두통이 심해서 조퇴할 정도였다. 증세가 코로나랑 비슷해서 검사도 해봤지만 음성 판정이 나와 한 숨 돌렸다. 책은 거의 못 읽었다. 책뿐만 아니라 모니터 화면의 활자들도 읽기 힘들었다. 집에 돌아오면 침대에 바로 누웠다. 머리를 누군가 세게 망치로 때리는 느낌에 잠도 바로 못잤다. 그래도 주말 지나고 사흘쯤 되니 이제 좀 머리 회전이 된다. 말캉한 콧물에 잠겨 있던 뇌도 헤엄치기 시작했다. 


어제 밤엔 전기가오리의 강의를 들으며 로레인 대스턴의 <도덕을 왜 자연에서 찾는가?>를 복기했다. 중간에 듣기 시작했지만 복습을 해 줘서 손쉽게 따라갈 수 있었다. 이 책을 가지고 사람들이 사실에서 당위를 이끌어내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식으로 이해하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 사실 이 책은 사실에서 당위를 이끌어 내는 것이 원래 인간 본성의 한계고 습관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그 한계 있는 이성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는 책이다. 뒤로 갈수록 책이 중구난방이 되는 편이지만, 어쨌든 반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많은 게 좀 흥미롭다.


1시간 정도 강의를 듣고 나서 파울로 제르바우도의 <거대한 반격>의 7장을 조금 읽었다. 끝까지 가진 못했지만 민족주의 우파와 사회주의 좌파의 '적'과 '외부화' 기제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까진 읽었다. 민족주의 우팍가 '이민자'를 적으로 삼고 사회주의 좌파가 '부자'를 적으로 삼게 되는 국면이 어떻게 전개되었고, 민족주의 우파의 약한 고리 - 노동자를 위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해가 상충하는 부자들이 이해관계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만 그렇다 - 가 어디에 있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포퓰리즘에 '계급'을 덧붙이는 시도다. 부자를 도덕적으로 비판하는 프레이밍이 좌파 포퓰리스트들의 특징이라고 했는데, 솔직히 말해서 이러한 도덕적 비난의 프레임은 예나 지금이나 존재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살짝 갸우뚱하긴 했다. 여하간 더 읽어볼 필요가 있긴 하겠는데.


매일 무언가를 읽어야 쓸 말이 생기는데, 제대로 읽지 못하니 침묵이 길어진다. 그래도 살아났다는 증거 정도라도 남겨둔다. 내일은 뭔가를 써야지. 기운이 나자마자 글자를 보고 있는 나를 보며 걱정스런 눈빛으로 쳐다보던 아내의 표정을 떠올린다. 아내는 "책이 징글징글하게 느껴져" 라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안 보고 살 수 없는 게 또 활자중독자의 삶이므로. 대신 가능하면 덜 사서 책 짐을 늘이지 않겠다는 다짐만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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