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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학준 Feb 04. 2023

누군가에겐 정말 어렵다구

23.02.04.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게임은 어떤 걸까?

Razbuten ,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게임은 무엇과 같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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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나가서 글을 쓸까 말까 망설이면서 트위터 타임라인을 열심히 뒤지다 영상 하나를 봤다. 단톡방에 이거 재밌겠다 싶어서 공유했더니, "그거 자막 내가 달았어"라고 친구가 말했다. 탄성이 자연스레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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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버 Razbuten은 2019년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게임은 무엇과 같을까?>라는 영상을 올렸다. 한 번도 게임을 해본 적 없는 아내에게 여러 종류의 게임을 시키고, 아내의 반응을 지켜보면서 알게 된 내용들을 정리한 영상이다. 결혼 이후 아내와 몇 번 게임을 하면서 느낀 바와 얼마나 공명할지, 그리고 최근 내가 게임을 어려워하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을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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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처음 비디오 게임을 했더라?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 초등학교 1학년 때였을 거다. 당시 친구들 집에 놀러가면 다양한 게임기들이 있었다. 조금 잘 살던 친구는 닌텐도 슈퍼 패미컴이 있었고, 그게 아니면 삼성 알라딘 보이나 세가 마스터 시스템이 있었으니 대략 3~4세대 콘솔 게임기들이 내 어린 시절 최초의 비디오 게임기였을 거다. 오락실은 자주 안 갔고, 문방구 앞은 낄 자리가 없었기도 했다. 


이거 가지고 있던 <슈퍼 동킹콩> 매니아 친구는 미국 가서 의사가 되었다 (왜 난)


친구들이 하던 게임들이 재밌어 보여서 함께 하는 과정에서 게임을 하는 방법은 자연스럽게 습득이 되었는데, 보통 그 과정에선 엄청난 좌절을 맛보기 마련이다. 계속 같은 장소에서 떨어져 죽고, 같은 적에게 맞아서 죽고, 커브에서 도로를 이탈해서 꼴등을 하고, 패스를 막지 못해 슈팅을 허용하고... 친구네 집에서 2~3시간 정도 게임을 한다고 하면, 그 중 대부분은 어제의 좌절을 반복하다가 누군가가 '야 이거 이렇게 누르면 돼', '야 어제 XX형이 알려줬는데 이렇게 하래'와 같은 정보를 물어와야 앞으로 살짝 나가고 그랬다. 그러다가 저녁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가고.


집에 게임기가 있는 친구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았는데, 집에서 계속 반복해서 하다보면 어떻게든 풀리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다음날 놀러가면 친구는 이미 저 멀리 진도가 나가있고, 친구는 그 모습을 내게 보여주며 어깨를 들썩거리곤 했다. 그리고 나는 집에 가서 바닥에 드러눕는다. 엄마 나도 게임기 살래, 나도 집에서 깨고 싶단 말야... 물론 강경파 어머니는 설득에 넘어가지 않았고 - 어린 시절 세가 마스터 시스템을 사주시고도 게임 팩을 사야하는 지를 몰라 방치했을 정도로 게임에 관심이 없으셨다 - 집에서 게임을 해볼 수 있는 건 1995년 이후에나 가능해졌다. 그것도 PC가 들어왔기 때문에 가능했고.(이 이야기는 <현질의 탄생>에서도 살짝 다뤘다)


게임피아도 빼앗기고 베스트 일레븐도 빼앗기던 잡지강점기가 있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활성화된 시기도 아니니, 게임의 조작 방식을 배우는 방법은 매우 무식하게 반복적으로 시도하거나, 게임 잡지라는 비싸고 빼앗기기 쉬운 도구에 의존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친구의 공략을 눈으로 보고 베끼는 방법 뿐이었다. 그 중 가장 확실하고 빠른 건, 친구와 함께 게임을 하면서 서로 머리를 맞대고 조작을 다르게 시도해 보는 거다. 나는 이번에 이렇게 뛰어볼테니, 너는 이번에 이렇게 뛰어봐. 그리고 성공하면 기억해두고, 실패하면 다시 또 방법을 찾는 방식을 반복하면 결국 그 날 '우리'가 게임을 공략해내고 서로 얼사앉는 감격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짧지만, 그 즐거움이 게임을 반복하게 만드는 힘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게임에서 즐거움보단 짜증이 앞서는 경우가 많아졌다. 일단 조작이 예전에 비해 직관적이지 않다. 이 영상에서 언급하는 게이머들의 '암묵적인 가정'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비교적 어렸을 때부터 콘솔 게임기의 컨트롤러를 조작하는 데 익숙해져 있는 사람인데도, 게임 내에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컨트롤를 익히기가 쉽지 않다. 심지어 매해 버전업 하는 프랜차이즈 스포츠 게임들의 경우 새로운 기술들이 매번 등장하는데, 그 때마다 익혀야 하는 게 늘어나니 고통이 배가 된다.


EA 개발자들이 타임드 피니시에 실패할 때마다 곤장을 맞았다면 엉덩이가 남아나지 않았을 것


심지어 L3/R3가 조이스틱을 수직으로 꾹 눌러야 한다는 사실조차 몰라서 게임 공략에 실패한 경험도 있었는데, 그땐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강하게 할 뿐이 아니라 진짜 죽을 거 같았다. 손가락을 어디에 둬야 하지? 이 작은 패드에 손가락 두 개를 대서 트리거 버튼을 누르라고? 네번째 손가락에 쥐 안나나? 처음엔 A/B 버튼 하나에 조작 하나가 할당되는 형태에서 점차 버튼도 많아지고 각 버튼에 해당되는 조작도 중첩되다 보면, 어느새 이 '기본기'를 익히다가 지쳐서 게임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최근 게임들에 즐거움을 느끼기도 전에 짜증부터 느는 이유가, 너무 많은 버튼과 너무 많은 기술이 직관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배치되어 있기 때문일 거다.


게다가 설명도 자세하게 안 해준다. 당연히 알 거라고 가정하는 것 같은데, 이 영상에서도 지적하듯이 '달리기'가 모든 게임에서 일반적으로 지원되는 조작이라는 사실을 게임을 안 해본 사람은 잘 모른다. 하지만 뭘 누르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아주 초보적인 수준에서 알려주는 튜토리얼은 점차 눈에 띄질 않고 있다. 이미 게임에 익숙한 세대가 주요 게임 소비 계층이 되어서일까? 이 정도는 당연히 알 거라는 생각인지, 조작은 그냥 해보라고 내버려두고 기술/스킬의 조합을 친절히 설명해주는 경우들도 있는데, 일단 조작 자체가 문제인 경우가 많다니까...(게다가 북미판으로 하다가 일본판으로 하면 X/O 반대로 너네도 누르잖아!)


참조 : 패미컴부터 플스5까지 OX가 뒤섞인 버튼의 역사 (눈물없이 볼 수 없다)


아무 거나 눌러보면 되지 않냐고? 그러려면 두 가지의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 1) 대부분의 게임에서 달리기와 같은 행동을 지원한다는 사실을 안다. 2) 어떤 버튼을 누른다고 바로 게임 오버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두 가지가 경험적으로 누적되어 있지 않으면, 일단 버튼 자체를 누를 용기가 안 난다. 용기도, 누적된 학습의 결과다. 그리고 이것이 기억 단계에서 일종의 체득한 암묵지 단계로 넘어가지 않으면 계속해서 이 부분을 상기해야 하기 때문에 뇌에 부하가 온다. 안 그래도 화면이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기본적인 정보들부터 계속 떠올리고 있으려면 게임할 맛이 나겠음? 그 사이에 남들 다 즐기고 사라졌다고. (그래서 내가 몸에 숙달된 레드얼럿2를 아직도 한다)


그럼 다 설명을 하면 되나? 그것도 아니다. 게임에 익숙한 사람이든 아니든 설명이 너무 길면 다 못 본다. 물론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일수록 글을 더 자세히 보긴 할텐데, 게임을 안 해봤기 때문에 그 글이 무슨 행동을 지칭하는지 잘 모른다! 만드는 사람 입장에선 고역이다. 게임의 저변을 넓히려면,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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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D 플랫폼 게임은 비교적 스테이지 구성이 평면적/직선적이라서 내가 잘 알든 모르든 일단 오른쪽으로 가야 스테이지 진행이 된다는 것 정도는 몇 번 해보면 알 수 있다. 아예 슈퍼마리오 같은 게임은 왼쪽으로 되돌아갈 수 없게끔 되어 있으니 단번에 알 수 있게 되지만. 그런데 3D 플랫폼으로 만들어진 게임들은 레벨 구성이 절대 평면적이지 않다. 때로는 뱅뱅 돌고, 숨겨져 있는 던젼을 찾아야 한다. 게임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이것은 잘 차려진 별미다. 찾아먹을 게 많으니 할 게 많아서 좋다. 반대로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지금 나는 어디? 여긴 누구?를 외치고 있을 것이다. 조이스틱을 돌려 시야를 회전시킬 수 있다는 사실조차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제한된 시야의 1인칭/3인칭은 오히려 방향감을 잃게 만든다.


게다가 3D 플랫폼의 사실적인 오브젝트는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형태로 상호작용을 시도하도록 만든다. 잡을 수 있어 보이고, 누를 수 있어 보인다는 거다. 게임 내의 논리를 아는 게이머들은 저게 다 그냥 게임 맵의 한계선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려는 디자인임을 알지만, 게임에 익숙치 않은 사람들은 현실에서 벌어지는 상호작용을 게임 내에서도 시도해보려고 한다. 이것은 때때로 잘못된 정보를 각인시킨다. "저기로 뛰면 되는 거 아냐?" "왜 저거 못 열어?" "저기가 비었는데 왜 저리로 안가?"


이 영상에서는 <라스트 오브 어스>를 예로 들었는데, 사실 피파도 마찬가지다(내가 피파에 억하심정이 많다). 피파 게임 내에서 공의 움직임은 점차 자연스러워졌지만, 그것이 여전히 특정한 경로를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예전에 비해 확률적 요소가 높아졌을 뿐, 공은 주어진 경로를 따라 선수들 사이를 움직인다. 그런데 그렇게 프로그래밍 하지 않는다면, 피파에서 패스 플레이는 불가능하다. 이것이 게임 내의 '현실성'이다. 모든 게임은 언제나 정해진 가능성들 내에서만 움직인다. 그것을 알고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게임에 대한 불만도 역시 많이 달라질 것이다.


(내가 안 썼음)


그리하여 이 영상이 말해주는 건 이거다. 게임 제작사와 플레이어 모두 게임 내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암묵적인 지식과 가정이 생각보다 많으며, 이것은 때때로 게임을 뒤늦게 시작해 보려는 사람들에게 높은 문턱으로 작동한다는 거다. 게임이라는 행위를 처음 해보는 사람 혹은 게임에 낯선 사람에게 있어서 오늘날의 비디오 게임은 꽤 불친절하고, 오해의 여지가 많다. (특히나 데포르메가 아니가 3D 오브젝트의 경우 사실성이 배가되어 마치 사실적인 상호작용이 가능할 것이라는 착각을 더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빠르게 좌절하여 게임에 접근하기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진다면, 게임에서 즐거움을 얻는 행위 자체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여지도 그만큼 줄어드는 건 아닐까?


결국 게이머들은 게임을 잘 하기 때문에 - 게임의 한계를 알고, 게임의 암묵적인 가정들을 알고 있기 때문에 - 게임에서 이겨서 승리하는 즐거움을 얻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을 '좋아한다'면, 반대로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게임을 잘 하기에 필요한 정보들이 없고, 그 과정에서 느끼는 고통이 크기 때문에 게임에 빠져들기 더더욱 어렵다. 이것은 결국 언어의 문제다. 진짜로 누군가 게임을 한 번도 안 한 사람이, 혹시라도 게임을 하고 싶어한다면, 게임 하는 법을 최대한 자세히 가르쳐줘야 한다.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게임은 흡사 '외국어'나 마찬가지니까... (당신은 이제 게임계의 말해X카나 그래X리가 될 각오를 해야)


그러니 게임에 조금이라도 호의적인 사람과 함께 새로 게임을 하고 싶다면, 반드시 친절할 것, 그리고 게임에서 승리하는 기쁨을 누릴 기회를 제공할 것. 너 즐겁자고 하는 게 아님을 명심할 것. 일단 오늘 아내가 집에 돌아오면 (산에 가서 아직 안 돌아옴) 아내의 승률이 높은 마리오 파티를 하자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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