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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학준 Feb 04. 2023

<좌파의 길> 1장에 대한 메모

23.02.04. 낸시 프레이저 - 좌파의 길:식인 자본주의에 반대한다2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뱀 = 우로보로스. '도식'에 대한 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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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대와 상부구조라는 고전적이지만 끊임 없이 마르크스주의를 괴롭히는 도식은, 자본주의를 문제의 핵심으로 놓는 이들로 하여금 그 둘의 관계를 나름대로 정식화하도록 강제한다. 소위 '경제적인 것'이 다른 영역으로 힘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가? 전달은 언제나 잡음 없이 깔끔하게 이루어지는가? 그리고 그 경계는 깔끔한가? 칼 폴라니의 자기조정시장이라고 부르는 영역과 사회 영역 사이의 경계투쟁에 대한 역사적 분석을 낸시 프레이저는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참고 : 낸시 프레이저, 마르띤 모스케라 - '식인 자본주의'의 부상(자코뱅, 2019/창비,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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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마치 시장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말하지만, 정작 시장은 시장의 바깥을 필요로 함. 특히 국가. 그리고 시장에서의 교환보다 비시장적 영역의 강제적 부의 이전, 그러니까 강탈이 필요하다. 그것은 이윤을 더욱 확실하게 뽑아낼 수 있다(물론 그 사이에 저항은 분명하다). 동의보다 훨씬 간편한데, 동의는 양보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확대는 자본의 축적에 필요한 이윤을 간편히 확보할 수단이 적용될 영역을 축소시킨다. '착취' 만으로는 그 자본의 순환을 감당할 수 없다. 스스로 자신의 토대를 갉아먹는 최악의 상황에 치달으면서도 멈출 수 없기 때문에, 위기는 구조적이다. 또한 사회 질서의 변화는 수탈과 착취 모두를 한꺼번에 근절할 방식으로만 온전하게 완성되며, 그것이 낸시 프레이저가 요구하는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사회 질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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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페가 사회운동의 효과적인 결합의 전략에 신경을 쓰는 동안, 그러한 결합의 목적과 결과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를 꺼리거나 민주주의의 급진화라는 '주인 기표'의 텅빈 내용만을 언급하는 것은, 그의 주장에 이 운동의 결합을 이끄는 주체, 전략, 자원 모두가 부재하기 때문이지 않나? 또한 사회의 근본적 변화가 아니라 사회를 담론적인 것으로 환원하고, 그리하여 담론 경쟁의 장에서만 그 운동의 결합과 해체를 논하는 빈약함도 여기에 기인한다.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들 사이에서 새로운 사회운동은 어떻게 안정화되는가? 이 새로운 사회운동의 공통의 이해관계란 무엇일까? 그리고 마초 노동계급과 페미니스트 사이에 조율 가능한 공통의 이해 관계가 있다면, 누가 어떻게 그것을 형성하는가? (좌파 포퓰리즘 운동에 대한 평가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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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프레이저가 임금 노동자의 '재생산'이 임금 노동을 지탱하는 뼈대임을 처음 지적한 것은 아니다. 인종주의, 제국주의, 반-여성주의가 어떻게 자본주의 사회 질서 안에서 자본의 축적에 기여하는지 연구한 저작들은 이미 있다. 예컨대 실비아 페더리치의 <캘리번과 마녀> 같은 책을 보면, 남성이 임금노동자로 전환되는 이면에는 여성이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을 전담하는 무급노동자이자 재생산의 담당자가 되는 역사적 과정이 설명되어 있다. 게다가 이 과정은 일회적이지 않다. 자본주의에 고유한 성별 분업이라는 균열 지점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형성되어 왔는지를 드러내는 좋은 연구다. <좌파의 길> 안에 이 내용이 담겨 있지는 않지만, 선행 연구들에 대한 참고는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3장에 대한 독해 이후에 판단을 내려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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