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에서

아이와 같은 어르신들을 만났다

by 준구

벽면에 붙은 그림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원색으로 채색된 단순한 그림,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의 교실 뒤편에서 많이 보았던 것 같은 색감이 나를 끌어당겼다. 응시하는 짧은 순간에 오만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도화지에 그림을 그린 사람은 요양원에서 생활하시는 어르신들이다.

한때는 강건한 몸으로 자녀를 낳고 기르셨으며 지적으로는 최고의 수준에 이르러 세상의 첨단과학과 학문을 논하셨던 분들이셨다. 배움이 없다손 치더라도 인생을 살아내면서 터득한 지혜로 가득했던 어른이다.

그러던 분들이 휠체어에 의지해서 이동하고, 간신히 자신의 몸을 가눠서 어렵사리 침상을 오르내리고 계셨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홀로 보행할 수 있다면 그나마도 다행인 나이 듦에 이른 것이다.

오늘, 요양원 홍보영상을 제작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했다.

산 좋고 물 맑은 자연에 둘러 싸인 요양원은 깨끗했다.

볏이 잘 드는 방에는 1인실을 사용하시는 어르신에서 2~4분이 함께 쓰시는 공간으로 나뉘어 있었다. 서로 대화가 가능하신 분들은 이야기를 나누셨고 누워만 계시는 어르신도 있었다. 거동이 가능하신 분들은 종이 접기나 그림 그리기 노래교실 등의 활동으로 시간을 보내었다. 서가에는 책도 놓여 있었지만 작은 활자를 읽어내실 수 있는 시력과 집중력을 유지하고 계시는 분은 많지 않아 보였다. 책의 절반은 활자가 큰 아이들의 동화책이 많았다. 홀에 켜져 있는 TV를 응시하시는 분들도 계셨다.

오후 활동 시간이 되자 종이 접기와 그림 그리기를 위해 어르신들이 중앙 탁자에 둘러앉으셨다.

자녀와 손녀뻘로 보이는 선생님이 차근차근 방법을 알려주었고 어른들은 주름지고 뻣뻣해진 손을 움직여서 힘겹게 종이를 접어 나갔다.

유치원 아이들에게 말하듯 친절하고도 배려 섞인 선생님의 설명이 오히려 내 맘을 짠하게 만든다. 허약한 육체만 남고 생기는 빠져나가 버린 유치원 아이로 돌아온 연로하신 어른들을 본다. 피해 갈 수 없는 나의 미래이자 인간의 운명 앞에서 만감이 교차되는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생로병사의 일반적인 순리 앞에서 꼼짝없이 겸허해지는 기분이었다.


돌아가시기 전 팔순의 아버지 모습이 겹쳐지며 떠올랐다. 언어 구사가 어눌해지시고 몸도 마음도 쇠약해지셔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로 누워서 몇 해를 보내시던 몇 해 전의 광경.

그때 아버지는 상대적으로 또렷한 정신과 점차 자유롭지 못해가는 육체 사이에서 깊은 좌절과 절망을 느끼고

계셨던 것 같았다. 그러면서 정신마저 희미해져 가는 상황을 인정하고 싶지 않으셨을지도 모른다.


입소해계신 분 중에서 비교적 연소한 축에 속하는 60세 미만의 어르신을 뵙게 되었다.

어디가 불편하신지는 모르겠지만 요양 중이라는 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가정을 꾸리셨던 분인지? 자녀가 있는 분인지? 개인의 사정을 잘 알 수는 없지만 이곳에 계시기에는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대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 정도의 시설이라면 본인이나 자녀 모두가 만족스럽게 선택하신 곳이라고 생각된다.

자녀들은 한참 일터에서 일해야 하는 때이고 돌봄에만 전념할 상황들이 아닐 것이다. 부모님 역시 그런 상황을 잘 알고 노년의 친구들과 더불어 생활하는 것 역시 좋은 대안으로 받아들였으리라 믿는다.


촬영을 하면서 어르신을 돌보는 요양보호사나 간호사 조리사들의 마음을 엿볼 수가 있었다. 이것은 의미 있는 케어이고, 나의 부모님을 대하는 마음이며, 향후 나의 모습이기도 한 미래를 접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전도서 3:1~10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마다 알맞은 때가 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다. 심을 때가 있고, 뽑을 때가 있다.
죽일 때가 있고, 살릴 때가 있다. 허물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다. 통곡할 때가 있고, 기뻐 춤출 때가 있다.
돌을 흩어버릴 때가 있고, 모아들일 때가 있다. 껴안을 때가 있고, 껴안는 것을 삼갈 때가 있다.
찾아 나설 때가 있고, 포기할 때가 있다. 간직할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다.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다. 말하지 않을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다.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다
전쟁을 치를 때가 있고, 평화를 누릴 때가 있다
사람이 애쓴다고 해서, 이런 일에 무엇을 더 보탤 수 있겠는가?
이제 보니,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수고하라고 지우신 짐이다.


죽는 날까지 육체와 정신이 쇠하지 않다면 좋겠다. 나의 의지와 힘으로 걸을 수 있길 바란다.

설령 그렇지 못하더라도 오늘 이 순간만큼은 가치 있는 발걸음을 내디뎌야겠다고 되뇐다. 다소 먹먹했던 마음이 차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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