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아내가 확진되었다

방심한 틈에 다가온 코로나

by 준구

컨디션이 안 좋다며 마른기침을 내뱉던 아내가 결국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다.


한동안 금기시되었던 회사 모임이 다시 재게 되어 간간히 저녁 모임을 갖더니만 조금 느슨해진 긴장의 공백을 비집고 코로나가 파고든 것이다. 자연스럽게 큰 방으로 들어간 아내는 3개월 전의 내 모습과 동일한 상태로 격리 생활에 들어갔다. 7일간의 격리로 회사에 출근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마냥 쉴 수는 없는 상황이라 재택근무체제에 돌입했다. 방안으로 낮은 상과 노트북을 들여보냈고 식사도 챙겨주어, 딸린 화장실에서 씻고 지내게 했으니 거실로 나올 일은 애초에 없앴다.


설령 안방을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은 나와 아이가 직장과 학교로 떠나간 때에 마스크와 장갑을 끼고 거실에 나와 TV를 보거나 점심을 차려 먹을 때가 유일했다. 어쨌든 외출이 금지된 아내의 끼니를 걱정하느라 바리바리 장을 봐서 냉장고에 음식을 쟁여 놓았다. 감금되면 운동량이 줄지만 끼니만 되면 더 입에 맞는 음식을 떠올리곤 했던 기억이 생생했던 때문이다. 나를 챙겨주었던 아내에게 역지사지의 입장으로 끼니를 준비해 주었다.


딸아이는 학교에 다녀와서 거실에 놓인 에어컨을 켜서 땀을 식히며 시원하게 있으면서도 엄마가 있는 안방 문을 철저히 닫아 놓았다. 안방에는 냉방기가 없다는 사실은 잘 알면서도 감염의 우려를 냉정하게 차단시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아내는 딸내미가 참 냉정하다고 내게 이르는 터에 그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딸이 학원에 간 사이에 안방 문을 열어서 선풍기로 에어컨 바람을 전달해 주며, 3일 정도는 목이 좀 아프고 답답할 테지만 잘 견디라는 말로 아내를 위로했다.


토요일 확진에 일요일을 지나고 월요일 아침이 되자 딸내미 학교에서 아내에게 알리미 문자가 왔다. 부모가 확진 판정을 받은 경우 PCR 또는 신속항원 검사를 통해서 음성 확인을 판정받아야 등교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부랴부랴 동네 병원 중에서 신속항원 검사를 실시하는 곳이 어딘지를 찾아보았다.

늘 가던 병원은 10시부터 진료 가능하다고 나와 있고 가보지 않았던 가정의학과는 9시부터 문을 연다고 했다. 그래서 가정의학과에 전화를 걸어서 코로나 검사가 가능한 지 물어보았다.

“PCR 검사를 받을 수 있나요?”

“왜 PCR 검사를 받으려고 하시죠” 의아하다는 듯 의사가 물었다

“부모가 코로나 확진이라 아이가 음성인 것을 확인받아야 해서요”

“PCR은 하루가 걸리는 것이고 신속항원 검사를 받으셔야 빨리 등교할 수 있습니다”

의사는 답답하다는 듯 이미 여러 부모에게 했을 법한 말을 퉁명스럽게 전화기로 답했다.

‘아 그렇지 PCR과 신속항원 검사는 조금 개념이 다른 거였지’, 평소에는 알고 있었는데

당황하고 보니 같은 뜻으로 혼용하는 실수를 범하게 되었다.


네비를 켜고 조심스럽게 찾아간 가정의학과 1층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 10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료실 입구에는 이미 대기하는 사람들이 모든 소파를 차지하고 있었다.

접수를 마치고 사방을 둘러보니 주말 내내 월요일만 기다리며 아픔을 참아왔던 사람들이 한가득 이란 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평균 연령이 오륙십은 돼 보이는 어르신들과 피로에 전 주부들이 몇 병상 안 되는 베드에 누워 비타민 수액 등을 맞으며 누워 있었고, 조금 뒤엔 요양원 차로 실려온 한 무리의 휠체어 노인 어르신들이

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젊고 어린 측에 속한 우리는 의자라도 양보해야 하는 심정으로 일어서려니 마침 진료실로 들어오라는 호출을 받았다.


아침에 통화했던 의사의 냉랭한 말투가 이번엔 딸을 더욱 긴장시켰는지 아이는 면봉을 코에 쑤셔 넣기도 전에

몸부림을 치며 뒤로 물러난다. 평소에 스스로 많이 검사를 받았던 아이가 웬일인가 싶을 정도로 과민반응을 보이며 검사를 두려워했다. 의사 선생님도 평정심을 잃는 듯싶었는지 나이 지긋한 간호사님이 진료실 안으로 들어와 딸내미를 겨우 진정시켜서 검사를 마치게 했다.

결과를 기다리며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살며시 문이 열리더니 휠체어에 몸을 겨우 가누고 있는 노부인을

밀며 백발의 할아버지가 들어오셨다.

"우리 아내 좀 살려주세요! 링거 좀 바로 놔주세요. 안 그러면 죽어요. 어서요!"

고래고래 생떼를 쓰며 숨넘어간다고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의원은 일순간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길게 줄을 서있던 사람들도 어서 저 할아버지부터 처리해 주라며 양보하기 시작했다. 누워서 링거를 맞던

사람들은 눈치를 보며 바깥으로 나와 앉아 마저 수액을 꼽으며 배드를 내어 주었다.

이쯤 대고 보니 아침부터 곤두선 의사와 모든 스텝들의 마음이 헤아려졌다.


다행히 딸은 음성 판정을 받았다.

그리 긴 시간을 보내지 않고 학교에 등교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며 안도의 숨을 쉬었다.

초등학교 앞에서 차에 내려주려고 시간을 보니 10시 30분 경이다. 아이가 한마디 한다.

"아빠 이 시간에 학교에 꼭 가야 해요. 가기 싫어요."

"뭐라고, 가기 싫으면 가지 마!" 나도 순간 화가 나서 큰소리를 냈다.

........

딸은 문을 쿵 닫고는 학교로 들어갔다.

아차 싶었다.

'그 시간에 이런 사달을 겪고 좋은 맘으로 학교에 갈 아이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

"그래 힘들었지. 아빠가 아이스크림 사 줄 테니 이거 맛나게 먹고 힘내자!"

그리고 꼭 껴안아주며 멋지게 학교로 보냈으면 좋았을 텐데.


늘 마음과 머리와 행동의 우선순위가 뒤바뀌어서 후회할 때가 있다.


그래도 우리 딸과는 웃는 얼굴로 저녁상을 맞이할 것이라 믿는다.

그렇게 부모도 성숙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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