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조합에 대한 단상
매일 아침 확성기와 스피커를 통해 힘찬 구호와 날 선 노래들이 들려왔다.
맞은편 기업의 사옥 마당에는 수십 명의 노동조합원들이 모여서 단합된 힘과 결의를 다지는 모양이다.
창 밖을 내다보니 펄럭이는 깃발 아래로 머리에 띠를 맨 사람들의 결연한 대오가 펼쳐져 있다.
“흩어지면 죽는다 흔들려도 우린 죽는다......”
투쟁가요의 힘찬 역동과 메아리가 주변 건물을 울리면서 내 가슴에도 추억과 향수 같은 울림을
일으켰다.
‘나도 노동조합에 속한 때가 있었지,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받고 기업과 상생하면서 서로를 지켜주는 울타리를 가꾸고 싶었던 때가 있었어.’
노동조합을 갖추고 있는 일터에선 노동자의 권리가 일정 정도 보장되고 사용자 측과도 합리적 대화가 가능한 힘을 갖는다. 노동의 안정성이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는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의 상황에선 조합의 보호망이 근로자에게 든든한 힘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노동조합을 결성하기 힘든 작은 규모의 사업장과 영세업종의 노동자 및 자영업자와 나와 같은 프리랜서 및 미취업 예비노동자에게는 조합원의 대열에 서 있는 노동자의 모습이 여간 부러운 것이 아니다. 그것도 대기업에 속한 노조원이니 말이다.
플랫폼 노동과 시간 단위로 쪼개어지는 노동의 파편화 속에서 뭔 시대에 뒤떨어진 노동의 안정성이냐고 말한다면 나로서는 할 말이 없다. 엄청난 사내 보유금을 소지하고 있으면서, 더욱 기업 편의적이고 안정적인 환경과 노동의 유연성을 담보하지 않으면 돈을 안 쓰겠다는 사업가에게도 보탤 말은 없다.
특정 기업에 가면 노조가 굳이 필요 없는 천국의 복지가 펼쳐질 테니 능력 있는 나는 그곳에 가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애써 그를 설득할 필요도 없다.
노동자를 노동자라 부르기조차 껄끄러웠던 우리의 문화에서 대자적 노동자 의식으로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을 모색하는 것은 늘 먼 나라의 이야기에 불과한 꿈일까?
대기업에 속한 노조원들이라면 기업별 노조의 달콤한 한계를 벗어주길 바란다.
산별노조를 통해 여리고 취약한 환경의 동일 산업 직군들을 보살펴달라는 말이다.
위험의 외주화는 기업의 약삭빠른 경영합리화일 수 있다손 치더라도 같은 노동자의 양심으로는 방관해서는 안 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프리랜서 알바 등을 가르는 노동의 다양한 형태가 존재하지만 이를 관통하는 중심에는 사람과 노동의 소중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았으면 한다.
기업에게 하루아침에 바꾸라고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도 가재는 게 편일 수 있는 노동자들에게 호소하는 말이다.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와는 상관없이 유럽 사회가 구축해놓은 노동에 대한 가치와 존중을 늘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어떻게 노동조합을 결성했고 어떻게 퇴직자와 실업자 영세사업자와 예비 노동 인력들에게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했는지를. 물론 사업가와 정치가들이 노동을 대하는 철학이 근본적으로 우리와는 다르다는 것이 경이롭게 다르다지만.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마침내 하나 됨을 위하여”
H그룹의 앞마당에서 울려 퍼지는 노동가요에 여러 모양의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 대열에 서 있는 당당한 사람들에게 부탁한다. 그 외침이 당신들만을 위한 구호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소리칠 수 없는 사람들까지를 대변하는 함성이길 바란다고.
대의를 향한 열정의 함성이 아니라면 그건 그냥 소음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