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마지막 날은 장맛비
비가 퍼붓기 시작했는데 더한 경고라도 하려는 듯 하늘은 기습적으로 번쩍이는 섬광을 뿜어냈다.
우르릉 쾅쾅 요란한 소리를 토해내며 천둥이 내리쳤고 번개와 굉음은 그렇게 대기를 진동시켰다.
한동안 너무 가물어서 메마른 땅과 시내를 보며 걱정했는데, 이제는 심한 폭우에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마스크로 가려진 채로 올라탄 출퇴근의 피로감은 온종일 꿉꿉한 공기로 이어져 눅눅한 기간을 보내는 중이다. 어쩌다 차를 몰고 나서기라도 하면 가뜩이나 막히고, 긴장하며 운전하다 보면 빗물을 쓸어내는 와이퍼만 멍하니 응시하곤 한다. 하루하루 치솟는 기름값 때문에라도 직장인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혼자서 차를 몰고 출근하는 때에는 뭔가 미안한 마음이다.
아침 일찍 출근을 서두르던 아내가 “특별한 일 없으면 집에서 일하는 게 어때?”하며 말을 건네었다.
본인은 이 비를 뚫고 지하철로 향하면서 내게는 좀 여유 있게 일하라는 뜻이다. 왠지 분주하고도 공허한 며칠을 지내면서 잠시 멈춰 쉬고 정리해야 할 필요를 느끼던 차라, 아내의 말이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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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아침을 차려서 등교시키고 한동안 접어 두었던 성경을 펼쳐 들었다. 빗물이 땅에 떨어져 찍히듯 글자 하나하나를 힘주어 읽어 나가다 불현듯 생각난 벗을 떠올리며 안부를 물었다. 그가 해외로 나갔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스쳐간 탓이다.
비가 퍼붓는 장마철 우기와는 상관없이, 그는 쨍쨍한 태양볕 아래 한가로움을 즐기는 LA 로데오 거리의 사진을 내게 보냈다. 마스크도 없이 자유롭게 활보하는 멋진 도시남의 패션이었다.
오랜 직장생활을 끝내고 누리는 외국 여행이니 맘껏 즐기면 좋겠다고 문자 한다.
인생에는 다양한 전환점이 있게 마련이다. 뜻대로 되었다면 참모로 청와대에 입성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고
국회나 지방에서 부럽지 않은 위치에 진입해 있었을지 모른다. 어쨌든 잘 쉬고 돌아오시라......
적지 않은 의료보험비를 내면서도 병원 방문을 미루던 게으름을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한의원이라도 가라는 성화에 못 이겨 S대학 병원의 진료를 시작했다. 훌륭한 대학 병원을 옆에 두고도 맘에 두지 않았던 것은 여유가 없기도 했고, 큰 불편함을 못 느낀 것도 있었다.
경제적인 측면으로 따지자면 생활비에 더해 진료비를 지출하는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지만 희게 번져가는 피부를 염려하는 주변 사람의 마음을 외면할 수만은 없었기에 용기를 내었다.
선교사가 세운 키갈리의 고등학교에 르완다 정부가 미디어학과를 신설해달라는 요청 건으로
그곳 한인 선교사님과 구체적인 내용을 주고받는 중인데 이 일이 순조롭게 준비되기를 기도한다.
기독교 영상을 제작했던 예전 선후배 동료들과는 가을에 맞춰서 발간할 학술지를 위해 오래간만의 모임을 가졌다. 모두의 경험치와 연구물을 결과로 남겨 조금이라도 사회에 기여하자는 바람이었다.
제작이 주춤한 사이에 단비처럼 만나는 사람들과 영상제작을 강의하며 배움을 나누는 중이다.
감사하고 고마운 시간이다.
어쩌다 보니 1년의 절반을 보냈고 다시 하반기를 맞이하는 시점을 맞았다.
시간은 절로 흘러, 퍼붓던 비도 지나갈 터이니 이제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어야지.
내가 노력해야 하는 것과 기원하며 의뢰해야 하는 것들을 가름하며 호흡을 가다듬고 빗소리에 귀 기울인다.
억세고 세찬 중저음의 울림이 지축을 뒤흔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