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한 틈에 다가온 코로나 2.

장마철의 격리

by 준구

아내의 코로나 격리생활이 내가 경험했던 봄날의 7일보다는 더 고통스러웠을 것이라 생각했다.


6월 말의 찌는 듯한 무더위에 장마까지 기승을 부리니 실내 공기는 쾌적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코로나 방역에도 무던히 애를 써왔던 터였고, 내가 걸렸을 때에도 용케 가족 간의 전파를 막아낸 성과가 이번엔 통하지 않아 허탈한 면이 있었을 것이었다.


양성 확진 이후 3일 간 목이 심하게 아프고 후각 기능을 잃어 냄새를 맡지 못해 답답해했다.

아침에 원두를 갈아서 정성껏 내린 커피의 맛이 쓰기만 해서 절반 이상을 남긴 채로 상을 문 밖으로 내놓았다. 가게에서 사 온 밑반찬에 장모님이 쒀오신 닭죽을 정갈하게 차려 주었지만 끼니때마다의 식사량이 줄어들고 영 입맛도 없어 보였다. 어쨌든 과일이라도 다양하게 맛보라고 수박과 자두에 복숭아 등을 썰어서 넣어 주었다.


“똑똑” 안방 문을 두드리면 쟁반에 놓인 음식이 들어간다는 신호다.

한 동안 시간이 흐르고 지나면 비워진 그릇을 문 앞에 내놓는다.

'슬기로운 감방생활의 배식 시간이랄까? 올드보이의 최민식” 신세랄까?'

넣어주는 음식을 때론 군말 없이 비워내곤 하면서도 끝에 가서는 맛이 없다고 투정이다.

역지사지로 내가 갇혀 있을 때는 잘 먹었다고 챙겨줘서 고맙다는 의례적인 인사치라도 했는데

아내는 대놓고 차려준 음식이 맛없다고 불평이다.

하기야 아내는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주었고 나는 완성된 냉동제품의 국과 밥 종류를 포장만 뜯어서 데워준 것이라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 배달 음식마저 입에 당기지 않는 것을 보면 후각과 미각에 이상이 생긴 게 분명한 것 같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 갑갑한 7일의 격리를 마치고 외출이 가능한 주말을 맞이하게 됐다.

딸내미는 스스로 자가진단 키트로 음성임을 확인하고 나서야 엄마가 자유롭게 거실로 나올 수 있음을 선포하고 깨끗해졌음을 선언해 주었다. 토요일 아침 우리는 해방의 기쁨으로 방안과 거실 화장실을 박박 닦아 청소했고 잃은 미각을 찾아주러 점심 외식을 결정했다. 엄마는 몸을 보신할 요량으로 능이 오리백숙이 먹고 싶다고 했는데 딸은 해물이 당긴다며 해신탕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내도 고생했지만 딸의 고충도 십분 이해하는 차원에서 호기롭게 해신탕으로 몸을 보충하기로 했다. 가격은 일단 뒤로하고 기력을 보한다는 명분으로 이름난 곳을 찾아 길을 나섰다.

예약 없이 도착한 식당엔 다행히 자리가 있었다.

처음 방문했다고 말하니 실은 예약제라 받지 못하는데 운이 좋다며 너스레를 떤다. 닭고기와 값비싼 버섯에 해산물과 문어가 합체되어 푹 고운 국물을 만들어 냈다.

깻잎과 마늘종 등의 푸성귀 반찬들이 잃어버린 아내의 미각을 되살려 놓기를 바랄 뿐이었다.

사실 아내는 배가 고프면 성격이 날카롭고 예민해진다. 없이 자라서 밥때가 되어도 달리 먹을 게 궁하던 사람들에겐 좀 생경한 반응일 수도 있을 것이다. 먹을 수 있다면 감사하고 취할 것이 없다면 또 그러려니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보곤 하기 때문이다.


해신탕 / 헤어질 결심



점심을 잘 먹고 나서 내친김에 오후엔 영화관에 가기로 했다.

주말의 영화비는 평소보다 더 비싸다는 것을 알지만 코로나로 인해 발길을 끊다시피 한 영화관을 몇 년 만에 다시 찾는다는 반가움이 앞섰다. 마지막으로 본 영화가 뭔지도 생각이 안 날 정도로 멀리했던 공간을 다시 마주한 기쁨과 데이트할 때의 상큼한 기대감으로 영화를 보았다.

“헤어질 결심”

한 사람에 대한 배려와 애정 관심이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게 만들었다.

영화의 대사처럼 그가 그렇게 매력적인 여성이 아니었다면 남자에게서 그런 호의들이 나올 수 있었을까?

맞닿을 인연이어서 그런 끌림이 있었던 것일까?

새로움이 싹트는 순간 기존의 틀엔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가정이라는 견고한 울타리와 신뢰가 ‘감사와 고백 사랑이라는 잔잔한 표현 없는 내적인 관성에 갇혀서 느슨한 해체의 수순에 돌입했다.


마음에도 길이 있어서 어딘가를 향하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겠다.

깊이 들여다보고 돌아보며 성찰하면서 걸음을 내딛는 수밖에......


아내의 격리 생활 덕에 오래간만에 몸에 좋은 음식을 먹었다.

넓은 화면과 양질의 사운드로 영화의 스토리텔링에도 푹 빠져들었다.


아내는 다시 기운을 차리고 감사한 출근길에 올랐다.


때때로 의도치 않은 시련과 상황들을 맞이하게 된다.

그것이 삶이니 늘 겸허함을 잃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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