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치파라솔 아래의 휴식을 꿈꾸지만

올여름 몸에 물이나 묻힐 수 있을까?

by 준구

올해도 여지없이 여름 극성수기인 8월 첫 주에 휴가를 보내야만 한다.


아내의 직장은 왜 굳이 이 기간을 특정해서 전 국민이 함께 쉬는 대열에 참여하는지 늘 의아했다. 공장 가동을 멈춰 세우고 일시에 쉬어야 하는 특수한 직종도 아닌데 왜 일괄적으로 대동 단결해서 휴식을 취하는지 잘 모르겠다. 물론 집중적으로 쉬고 다시 기운을 내서 함께 일을 한다는 차원에서는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이로 인해 우리가 여름휴가일을 택할 수 있는 여지는 애당초 없었다.

문제는 이 극성수기 동안의 휴가를 어디서 어떻게 보내야 하느냐는 막막함이다.

웬만한 관광지와 숙박시설은 이미 예약이 찼고, 간혹 자리가 있다손 치더라도 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라있다. 어얼리버드형 인간이라 사전에 모든 것을 세팅해두었더라면 문제없겠지만 여행을 미리 계획할 만큼 마음이 여유롭지도 못했다. 휴가지에서 숙박하지 못할 때 지인의 집에서 묵는 것을 차선책으로 대비해 두긴 했지만 사람들로 넘쳐나는 휴가철이라 그 집을 사용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고 신세 진다는 말도 쉽게 나오지 않았다.

여름이 오기 전에 미리 진지하게 휴가 계획을 세워보려고도 했지만 우리 가족만 떠나기도 눈치 보이고 장인, 장모님의 상황을 좀 지켜보았다. 본가의 부모님은 돌아가신 지 오래고, 건강이 허락하시면 두 분의 컨디션에 따라 장소를 결정할 요량이었다.

아내의 휴가 일정을 확인하신 장모님이 어디라도 가자시며 동행하시길 원하셨다. 내심 아들이 살고 있는 동남아를 가기 원하셨지만 일정이나 장인어른의 건강상태가 거기에 미치지는 못할 것 같았다. 어쨌든 8월 휴가를 2주가량 앞두고 부랴부랴 속성 휴가 계획을 세워야 했다.

차량을 운전해서 동해로 떠나는 것이 제일 만만한데 아무래도 막힐 것 같은데, 막상 숙박시설도 예약이 차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다. 차라리 비용이 좀 들더라도 제주에서 주택 하나를 얻어서 며칠 지내다 오면 아이들이나 부모님 모두 만족스러울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아내와 4촌 간인 언니가 제주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용하는 터라 만나게 되면 모두들 반가움이 더할 터였다. 3박 4일의 일정으로 제주행 비행 편을 살피며 숙소와 주변 관광지 정보 등을 서치하고 픽업과 렌터카 등을 확정하며 겨우 안도의 숨을 내쉰다. 아내는 친척 언니와 수시로 통화하며 당면한 과제를 이제야 해결하나 싶어 마음을 놓았다.


그런데 이번엔 장인어른의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컨디션이 좋으면 함께 동행한다는 것이 전제였는데, 병원의 정기검진 결과 심장질환이 악화되어 자리가 나는 데로 입원하셔야 할 것 같단다. 가슴께에 부착한 심장 보조 박동기가 피부 바깥으로 빠져나와 이를 교체해야 하는 상황이다. 수술을 위해서는 마음의 안정과 감염을 막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요즘 같은 코로나 재확산 시기에 대학병원의 입원과 보호자 간병의 문제는 그리 간단치가 않으니, 휴가보다는 회복에 맞추어 모든 계획을 다시 수정해야만 한다.


이번 주 금요일에 방학을 맞이하는 딸은 마음이 들떠서 제주의 하늘을 벌써 날고 있는데, 이 모든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서 가라앉힐지 걱정이다. 지난밤에는 제주의 해변에서 스노클링을 한다며 물안경과 수영복을 챙기며 행복해했는데, 느닷없는 여행 취소로 허해진 마음을 어떻게 달래주어야 할지......


어른들은 일을 쉬고 출근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도 휴가이지만 아이들의 동심은 바닷가의 해변이나 물놀이장의 폭포수를 맞아야 바캉스를 실감하는 것이니 말이다.

아이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라도 난 지금 집 주변의 물놀이장이라도 찾아내야만 할 것 같은 심정이다.

사실 코로나가 확산되기 직전의 휴가 때엔 큰맘 먹고 가족 모두가 베트남의 해변에서 한가롭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 누구도 여름의 푹푹 찌는 더위 속에서 마스크로 입을 가리며 답답하게 실내외를 걷지 않았다.


스위스에서는 만년설이 난데없이 무너져 내려 수십 명의 인파가 갑작스레
목숨을 잃었다.


한 여름에도 에어컨이 필요 없을 정도로 선선한 영국이 사상 최악의
무더위가들이닥치면서 대혼란에 빠졌다. -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선진국조차 기후변화가 기후재앙으로 진행되는 속도를 대비할 수 없는 상황이니 어려운 나라는 언급할 필요도 없겠다. 어쩜 우리 인간에게 필요한 휴가가 지구 생명체에게 더욱 절실한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른다.

자원에 대한 인간의 탐욕적 착취로부터의 휴식.

무분별한 자연의 약탈과 고갈, 지구온난화를 가중시키는 인간의 과다한 에너지 사용.

휴가를 받아야 할 대상은 어쩜 ‘대자연’이 아닐까?


인간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스스로 회복하고 치유해서 우리를 다시 품어주기를.


마스크를 벗어버리고 바다 내움을 한껏 맡으려 모래 해변을 걸을 수만 있다면,

올해 당장 떠나지 못하는 휴가에 대한 아쉬움도 없겠다.


사람도 자연도 다시금 살아나야 한다.




keyword
이전 09화구도자의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