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신했던 양호실 매트리스의 기억
학생들이 종종 쓰러진다.
아침 예배를 드리는 중, 의자에 앉았다가 갑자기 무너지듯 몸이 옆으로 넘어간다.
종과 횡의 열을 맞춰 2~30분간 꼼짝없이 서서 조회와 애국가를 제창해야 하는 금요일의 의식 중에는 여지없이 다리가 풀려 스르르 허물어지는 학생들이 나온다. 주변에 서있던 친구들도 화들짝 놀라 실신한 학생을 부여잡고 들어 학생주임실로 옮긴다.
초등학교 시절엔 월요일마다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애국조회라는 시간을 가졌다.
여러 순서를 거친 조회 말미, 교장선생님의 훈시가 길어진다 싶으면 여지없이 학생 한 둘이 갑자기 쓰러지곤 했었다. 그때를 제외한 중고등학교 시절엔 그렇게 허물어지는 친구들을 목격하지 못했다. 남 중 남 고를 다녀서 그랬는지, 여학생들이 쓰러지는 비율이 높아서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주변의 친구들은 튼튼했다.
그런데 이곳 르완다의 고등학교에서는 수업 시간 중에도 쓰러져서 실려오는 학생을 자주 본다. 컨디션이 안 좋다가도 잠시 교실에 엎드려 쉬며 회복하는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몸을 주체하지 못해서 쓰러지는 학생도 생긴다. 우리 학교엔 아직 양호실이란 공간이 없으니 환자가 발생하면 매트리스 하나를 겨우 펼 수 있는 학생주임실로 데려간다. 급히 자리를 깔고 실신한 친구를 눕혀서 숨을 고르게 하고 상황을 지켜보면서 살핀다. 대게는 좀 쉬는 동안 기운을 회복해서 제정신이 들어오지만 어떤 때는 선생님들도 당황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수업 중에 멀쩡하던 학생이 발작증상을 일으켜 한바탕 어수선한 소동이 일어났다. 주변에서는 어떻게 해 줘야 할지 모르고 선생님도 너무 놀라서 눈물만 글썽거리며 발을 동동거린다. 급한 데로 나름의 조치를 취하고 학생의 부모님께 연락하니 전에도 발생했던 이력이 있어 자녀를 데리고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우기라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떨어져 춥고, 낮에는 뜨거운 태양아래 교실의 양철지붕이 데워져 후끈하니 몸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게 쉽지는 않다. 등 하교 때 많이 걷고 대중교통에도 시달려야 하니 에너지 소모가 많은 편이다. 한참 영양을 필요로 할 때 잘 먹고 다니지 못한 것의 당연한 귀결일 수도 있다.
한 번은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고 괴성을 지르며 울부짖는 친구가 있었다. 어느 누구도 어찌하지 못하고 뿜어내는 분노와 울분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는데, 극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억압이 폭발한 듯 보였다. 30여 분간의 고성을 토해내고 나서야 겨우 잠잠해져서 이성을 찾았다. 발악을 하며 모든 힘을 다 쏟고 나서야 조용히 잠이 든 것이다. 아프리카의 친구들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돌봄과 쉼이 필요한데 그런 것까지 살피며 살아갈 여력이 안 되는 게 현실이다. 소박하게나마 우리 학교에 양호실이 만들어지고 학생을 돌볼 수 있는 양호 선생님이 계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는 생각이다.
중학교 때 몸이 안 좋아서 수업 중에 양호실을 찾은 적이 있었다. 양호선생님은 내 몸의 열을 재고 상태를 체크하면서 약을 주시며 먹고 좀 쉬었다 가라는 조치를 내려주셨다. 감기기운에 열이 있는 상태여서 난생처음 양호실의 매트리스에 몸을 뉘었다. 몇 개의 침상에는 엷은 칸막이가 쳐 있었고 상태가 안 좋은 학생 몇이 고이 잠들어 있었다.
이부자리에 익숙했지만 그것과는 다른 질감의 고급스러운 쿠션의 매트리스가 나의 몸을 포근히 바쳐주어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따스함과 평온함으로 신열이 내릴 무렵, 비몽사몽 중에 나직이 들려오는 두 여자 선생님의 대화가 또렷이 귓전을 때렸다. 갓결혼을 하셨던 선생님이 양호선생님에게 조언을 구하는 대화다.
은밀하고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나누는 말이었는데 유독 선명하게 들려왔다.
"신혼인데 어떻게 해야 서로가 만족스러운 잠자리를 가질 수 있을지?" 아이를 언제쯤 갖는 게 바람직할지를 묻고 답하면서 정겹게 차와 담소를 나누는 중이셨다.
솔깃한 어른들의 대화에 귀를 열고 쫑긋 세워보지만, 포근한 매트리스의 푹신함에 취해 꿈결로 빠져들었다. 사랑방 같은 양호실의 온기와 예상치 못한 배려로 누웠던 그때의 달콤한 휴식과 말끔한 회복을 우리 학생들도 경험할 수 있다면.......
몸과 마음의 건강을 돌봐 주시던 양호선생님의 손길과 보건실의 쾌적한 환경을 우리 학교도 갖출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는 보건실로 칭하고 응급상황과 총체적 케어의 개념으로 확장된 기능을 담당하는
보건교사의 역할이 이곳에선 더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다.
그런 날이 꼭 올 것을 기대하면서 쉬이 쓰러지지 않고
꿋꿋이 자라나는 학생들이 되기를 손 모아 염원해 본다.
표지 : 월드미션고등학교 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