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의 학교생활을 마감하며
학생 하나가 내게로 와서 울먹였다.
자신의 USB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중요한 데이터를 저장하고 소중히 다루며 사용했을 것이기에 안타까웠다. 무엇보다 멀티미디어를 전공하는 고등학생이지만 한 반 30여 명중에 자신의 노트북을 가지고 공부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우리나라에서라면 너무 흔해서 서너 개씩은 나뒹굴어 다니는 USB가 귀해서 하나만 가져도 유용할 수밖에 없는 물품이다.
KCOC의 지원으로 새 USB를 받아 신나게 사용하던 것을 잃었으니 얼마나 마음이 무너지는지, 바라보던 나도 마음이 아려왔다.노트북이나 패드쯤이 없어진 것도 아니고 겨우 조그마한 USB에 상심하는 그들의 가난이 밀려와 눈물이 났다.
'르완다 시내 키갈리의 삶이 이 정도라면 외곽지역의 모습은 어떨까?'
우리 월드미션고등학교는 오전 8시 30분에 1교시를 시작한다. 8시에 전교생이 강당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전달사항을 받아서 각 교실로 향한다. 50분으로 짜인 수업시간은 중간에 쉬는 시간 없이 연이어져 11시 50분이 되면 15분간의 휴식이 주어지고 이때 빵과 우유 간식을 먹는다.
다시 수업이 진행되어 오후 2시 35분이 되면 모든 수업을 마친다. 고등학교 1, 2 학년은 집으로 향하고 고 3은 점심을 먹고 학교에 남아 공부를 더한다. 선생님들도 이 시간이 되어야 늦은 점심으로 허기를 면할 수가 있다. 그나마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오후 특별활동이 있어서 전교생 모두에게 점심을 제공한다. 이 날은 조금 당겨서 점심을 먹는데 정말 특별하고 기분 좋은 날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무리하게 시간을 붙여서 쉬는 시간을 없앤 것은 모두 먹는 문제와 귀결되는 배치다.
사립학교가 르완다 당국의 지원 없이 재정을 충당하는 것은 수업료와 급식비 등인데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에게 많은 금액을 받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모든 것을 충당하는 것도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 12시나 1시에는 점심을 먹어야 하는 한국인의 특성상 점심시간인 2시 35분까지 버티는 것이 상당히 힘겹다. 어떻게든 견딘다 해도 현지음식으로 한 끼를 때우는 것에도 어려움이 있다. 입맛에 잘 안 맞는 것도 있지만, 접시 하나에 담아내는 이들의 음식이 우리에게 필요한 영양소를 고루 전해주는 것 같지 않아서다. 한마디로 빈약해 보이는 한 끼의 식사다.
월요일의 수업은 특히나 큰 어려움을 느낀다. 학생들은 지난 주말을 보낸 일로 수다를 떨고 싶은데 얘기할 시간이 따로 없으니 몰래몰래 소곤대느라 수업에 집중을 잘 못한다. 한참 떠들고 실컷 먹고 왕성하게 운동을 해야 하는 나이라 안쓰러울 때가 있다. 태양이 작열하는 낮이면 달궈진 지붕과 지면의 열기로 교실이 후꾼 달아오른다. 힘겹게 걸어서 등교하느라 지치고, 잘 먹지 못해서 허기지고, 간식을 먹은 뒤라 나른한 학생들의 눈꺼풀로 쳐지는 시간이다.
그래도 온갖 난관에도 흐트러지지 않고 집중해서 공부하는 친구들이 있다. 어릴 때부터 서로를 돕는 것에 익숙해서 같이 협력도 잘하고 배려도 잘하는 학생들이다. 돕는 것을 자연스러운 미덕으로 살아낸 성숙한 친구들이지만, 시험을 치를 때조차 치팅을 도우려는 건 멀리하면 좋겠다.
우리 학교는 카메라와 캠코더를 갖추고 있어서 학생들이 실습 때 유용하게 사용한다. 많은 수량을 보유한 것은 아니지만 직접 만지며 사용법을 익힐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학교의 인기는 높다.
돌아보면 나의 지식과 노하우를 학생들과 나눌 수 있어서 감사한 시간이었다. 모든 게 풍족하진 않지만 그 소중함을 알기에 귀하게 사용하려는 학생들의 마음이 예쁘다.
다음번에 학교에 올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는 더 많은 것이 향상되어 있기를 소망해 본다.
표지사진 : 월드미션신학대학 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