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의 크리스마스
드넓게 펼쳐진 옥수수밭 사이를 거닐었다.
너른 들판 가상이에는 아기자기한 수로가 사방으로 놓여 물을 실어 나르는 중이고 높다란 나무가
만드는 그늘은 사람들을 시원하게 식혀주는 안온한 풍경이다.
통나무 두 개를 놓아서 한 사람이 겨우 걸어갈 수 있게 만든 다리는 자연스러운 소박함 그대로다.
마을의 식수원인 개울가에는 노랗고 하얀 물통에 물을 긷기 위한 사람들로 분주하다.
물 심부름은 대게 어린아이들의 몫이라 조그마한 통에서부터 자기 몸보다 커 보이는 노란 물통에 이르는 모든 통이 동원됐다. 양손 가득히 들고 머리에 이고 아이에서 어른에 이르는 모든 마을사람들이 물을 길어 나섰다. 햇살이 빛을 잃어가는 오후 5시경이라 다니기에 적당한 시간이다.
낯선 무중구가 등장해서 길을 걸으니 간혹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이 있다.
‘니하오’ 동양인을 보면 나름 신경 써서 건네는 인사말이지만 우리 한국인의 언어가 아니기에
‘위리에 네자’ 라고 현지어로 답한다.
그럼 어쭈 르완다말을 하네 반가워하며 한번 더 말을 건네며
잘 지내느냐? 오늘 기분은 좋냐? 등 다음 단계를 테스트해보려고 한다. 두 세 마디까지만 대화가 오가도
이들은 상당히 대견하다는 눈빛을 보낸다. 실은 그다음 단계까지 계속 대화를 이어가고는 싶지만
그 정도의 실력까지는 연마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르완다에 조금 더 머문다면 나의 언어에 진보가 있으려나?’
마을을 통과해야 다다를 수 있는 들판까지는 10여분 밖에 걸리지 않지만, 아무래도 현지인 친구의
안내가 없으면 길을 몰라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오늘은 마침 사이온과 같이 걷는 중이다.
우리 학교를 졸업하는 그는 7월에 치른 수능시험 60점 만점에서 59점을 획득한 친구다. 차분하고 공손해서 교회활동에도 열심인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좋은 점수를 받은 줄은 몰랐다.
같이 길을 걸으니 그의 삶은 어떠한지 이해가 간다.
넓은 들판엔 제법 굵은 알의 옥수수가 여물어가고 한편으로는 콩과 고구마순이 모습을 드러냈다.
튼실하게 뻗어 내린 고구구 순을 보면 그 열매가 얼마나 실할지 가늠되고, 여기서는 먹지 않고 버려지는 고구마 순을 얻어다가 볶거나 김치를 만들면 얼마나 맛있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어쩌면 이제 르완다를 떠나려 하니 비로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들이 많아지는 것 같다.
이제 싹을 틔우고 잎을 넓혀가고 있는 양배추 밭에선 주인이 우두커니 서서 사방을 살피고 있다.
밭을 일구거나 풀을 베주는 것도 아닌데 뭐 하나 싶었는데, 종종 출몰해서 잎을 먹고 사라지는 야생동물을 감시하느라 망을 보는 중이란다. 사이온의 설명과 안내로 동네 구석구석을 산책한 후 마을 좌판에서 팔고 있는 옥수수에 눈길이 갔다. 15자루를 2,500프랑에 가져가라는데 옥수수 5자루에 1,000프랑을 주고 샀다. 여기 옥수수 맛은 어떨지 궁금한 게 가장 컸다.
주일인 24일은 크리스마스를 겸한 예배로 드렸는데, 청소년 사역을 주로 하는 우리 학교예배당엔
아이와, 싱글맘, 동네 주민들로 넘쳐나서 자리가 부족할 지경이었다. 예수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예배의 뜻깊은 자리이면서 동시에 이를 기념하는 선물을 나눠준다는 소문이 이미 파다하게 퍼져있기 때문인 듯했다. 예배 후에 나누는 선물인 쌀과 식용유는 이들에게 너무도 귀하고 소중한 양식이라 준비한 것보다 더 많이 온 사람들에게 고르게 분배될 수는 없었다.
선물을 받은 사람들의 안도와 받지 못한 사람들의 아쉬움.
크리스마스 전야에는 사람들이 심바마트 앞의 밤 분수대로 몰려나왔다.
분위기에 들뜬 젊은이와 아이들 그들의 부모는 그렇게 삼삼오오 모여 분수대의 조명과 이에 맞춰 나오는
물줄기에 몸을 적시며 한여름날의 성탄을 즐겼다.
옥수수와 감자를 감미로운 설탕과 소금을 배합한 물을 넣고 솥에 쪄냈다. 알알이 터지는 옥수수와 노릿노릿한 감자의 조합. 한여름날의 크리스마스 저녁에 구수한 고구마와 따끈한 감자로 예수의 탄생을 축하했다.
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