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방학에 들어가며
9월에 시작한 한 학기를 마치며 학교는 2주간의 짧은 휴식에 들어갔다.
12월 22일 간단한 수료식을 가지며 개근한 학생과 각 학년과 반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학생들을
축하하는 시간을 가졌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시점이었던 만큼 모든 학생들에게는 간단한 과자 선물도 나눠 주었다. 지각이나 결석이 한 번도 없었던 친구들에게는 새 가방을 선물했고 성적이 우수한 친구들에게는 장학금을 선사했다. 연말과 연초를 가족과 보내게 될 학생들에게 선생님들은 메리크리스마스와 해피뉴이어라는 팻말을 들어 올렸다.
간단한 행사를 마치고 이어진 순서는 성적표 배포다.
르완다는 학생들의 성적을 ‘아카데믹 브리지’라는 시스템으로 관리한다.
선생님들은 이 프로그램에 접속해서 각 학생들의 성적을 기입하는데 대략의 점수는 이렇게 분류된다.
첫 번째 시험 15%, 두 번째 시험 15%, 과제 및 태도 10% , 최종시험 60%의 비율이 기준이다.
나는 고1과 고2 멀티미디어반을 가르치며 오디오 리코딩, 카메라 작동, 영상제작, 시나리오 작성의
4과목을 맡았기에 성적처리에 적잖은 애를 먹었다.
삼십여 명이 조금 넘는 아이들의 이름과 얼굴이 잘 매치가 안되기도 했고, 비슷한 이름이 중복되어서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매주 숙제를 많이 내주라는 방침 때문에 월요일에 이를 거둬서 체크하고 확인해서 점수를 기입하는 것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과제는 주로 자료를 읽고 A4 한 장으로 요약 정리해 오는 것인데 얼핏 봐도 정성이 들어간 페이퍼와 건성건성 누군가의 자료를 베껴온 것이 금방 표가 났다. 그나마 제출했으면 다행이지만 아예 제출하지 않는 친구들도 있으니 점수차가 벌어지기 마련이다.
시험문제를 내고 체점하는 게 고역인 건 제멋대로 흘려서 쓰는 영어 스펠링은 알아먹기가 힘들다.
몇 번이고 인내심을 갖고 집중해서 봐야 글씨를 읽어낼 수가 있었다.
그렇게 점수를 내다보면 잘하는 친구들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의 편차가 너무 커서 바닥 점수들을 어느 정도 올려주느라 끙끙댔다. 모든 데이터를 근거로 중앙컴퓨터에 입력하면서도 혹시라도 학생들의 이름과 순서가 바뀌지는 안았는지 재차 확인해 가며 기입해 나갔다.
그러면서도 자기 점수가 왜 이것 밖에는 안되느냐고 따지지는 않을까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어쨌든 성적표가 배포되고 자기 점수와 등수를 확인하는 모습은 한국이나 여기나 마찬가지인 풍경이다.
얼굴에서 이미 표가 나기 마련이다.
전체적으로 다른 과목의 성적은 어떤지 궁금해서 몇몇 아이들에게 성적표를 보여달라고 했다.
영어, 수학, 컴퓨터, 미디어 등 점수와 등수로 표시된 성적표를 살피니 다른 과목 선생님들은 정말 냉정하게 원칙에 입각해서 점수를 준 것 같았다. 나는 과제를 안 하고 못했더라도 기본 점수를 주고
시험에서도 최저 점수를 줘서 전체적으로 평균을 올려줬는데 다른 과목은 정말 엄격했다.
원리원칙대로 0점 처리 및 평균점수가 낮았다. 자기 점수를 다시 확인하러 교무실로 찾아와 선생님을 만나려는 학생들이 있었지만 내 과목에서는 나를 찾아오는 친구들이 없었다.
사실 르완다의 교육시스템을 잘 모르면서도 일일이 물어가며 정규교사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이 벅차기도 했지만 학생들의 불만 없이 학기를 마감하게 되니 안도감이 밀려왔다.
혹시나 누군가 항의라도 하러 온다 해도 그 점수를 주게 된 근거들을 가지고 있지만 일일이 확인시켜 주는 작업이 얼마나 귀찮고 소모적인 과정이겠는가!
대학에서 강사로 가르치며 학점을 줘봤던 경험이 있어서 그나마 선방한 건지도 모르겠다.
개인 과제를 내주었고, 팀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며, 시험도 치렀다.
무엇이 되었 건 간에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테가 난다.
데드라인을 지키는 것과 콘텐츠의 완성도와 답을 기술하는 내용이 알차다.
채점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 서면 그런 핵심을 꽤 뚫는 지혜를 가진 학생들을 주목할 수밖에 없다.
1년간의 나의 봉사 태도를 점수로 환산한다면 몇 점을 줄 수 있을까? 신만이 아실 나의 성적표가 문득 궁금해졌다. 아무튼, 월드미션의 교직원과 학생들은 한국에서 사서와 한국어교사, 미디어교사로 파견된 우리에게 깊은 고마움을 표하며 현지옷을 선물했다. 작별이 아쉽지만 언젠가 다시 와주기를 소망했다.
우리 역시 짧은 인사말을 남기며 서로의 성장과 성숙을 기원했다.
이곳에 다시 온다면 또 얼마나 많이 변해 있을까?
표지사진 : 한 학기 개근상과 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