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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구 Jan 03. 2024

새해 연휴에 배달된 가정식 백반

키갈리에서도 음식 배달이 가능해요

키갈리 역시 밝아오는 새해를 맞이하는 들뜬 분위기는 동일했다. 해가 바뀌는 자정을 기해 연이은 축포 소리와 불꽃의 번쩍임은 신년을 맞이하는 사람들을 환호하게 만들었다. 이 동네 저 동네에서 터지는 섬광과 들썩이는 흥분에 자던 사람도 일어나 창가로 나왔다.

나는 깊은 잠에 빠져서 이런 광경을 목격하진 못했지만, 주변 사람들의 증언이 그러했다. 


계절의 변화가 거의 없는 이곳 르완다에서 해가 바뀐다는 것은 그냥 숫자적인 느낌이다. 다만, 함께 파견 나왔던 사람들이 임기를 마치고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1년의 흐름을 실감하는 중이다. 1,2주 먼저 나온 동기들을 환송해서 보냈고 이제 며칠 후엔 나도 떠난다. KCOC기관에 보고할 내용은 제출했고, 자유롭게 학교에 조언할 내용을 작성하면 모든 의무에서 벗어난다.  


새해가 되니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그동안 잘 활용했던 인터넷서점 1년 이용권이 사라졌다. Yes 24 크레마를 통해 최근에 나온 책과 잡지를 온라인상에서 구독해서 봤는데 그 혜택이 끝났다. 모든 신간을 다 읽을 수는 없어도 그나마 훑어 보기라도 했는데 너무 아쉽다. 1년간 구독했던 영작프로그램 ‘그램머리’도 조만간 끝날 것이고, 유튜브 다운로더도 그 기간을 다할 것이다. 인터넷이 끊기는 경우를 대비해서, 미리 영상 데이터를 받아 수업 때 사용했던 편리한 프로그램들과의 작별이다. 봉사자에게 요긴했던 지원이 임무의 종료에 즈음해서 자동으로 정지되고 있다. 이것 외에도 언어를 배우도록 금전적인 지원을 해주었던 것은 봉사자에겐 큰 힘이 되었다.  


살아가느라 1년 간 사들인 세간살이도 제법 된다. 처음에는 그릇 하나 변변치 않고 수저가 모자라서 사람을 초대하는 건 생각도 못했는데 이젠 남겨지는 물건들을 누구에게 주고 갈지를 고민하게 되는 시점이다. 옷가지랑 빨래건조대 전기포트 냄비 반찬통 등은 필요한봉사자들과 현지인에게 물려줄 생각이다. 그 필요에 맞는 사람들이 적합하게 잘 사용하기를 바라면서. 


학교도 방학이라 며칠 간의 시간이 선물처럼 주어졌다. 

컨테이너로 보내온 책이 조금 있고 어차피 무게 때문에 다시 가져갈 수는 없기에 정독하고 있다. 

학교도서관에 기증하고 갈 예정이지만 원서들은 읽어가며 밑줄치고 단어의 뜻을 적어 놓고는

금방 잃어버린 것들이 허다해서 아까워서라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줄 쳐 놓은 스펠링들은 여전히

생소하지만 마지막으로 기억에 집어넣느라 씨름한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귀로여행이라는 명목으로 이스탄불에 들리기로 했다. 짐을 들고 공항에서 구도심으로 이동해야 하고 명소들도 둘러봐야 하니 가만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숙소의 등급과 대중교통과의 거리와 관광지의 동선 등을 고려하니 이만저만 복잡한 게 아니다. 더구나 혼자서 며칠 간의 여행에 임해야 하니 튀르키예의 역사 공부와 현지 사정을 알아보느라 정신 사납고 기대된다.  그냥 편하게 집으로 돌아가도 되지만 언제 또 이런 기회를 가질까 싶어 동서양이 만나는 이스탄불로 날아가기로 했다. 


아무튼 한가로운 여유로 아침과 커피를 마시며 작업을 하다 보니 낮 11시를 향하는 시간 띠리링 전화가 울렸다. 아직 르완다에 남아있는 동기 청년의 인사다.

같은 아파트에서 지냈던 동기들이 떠났으니 적적하진 않은 지, 식사는 잘 챙겨 먹고 있는지, 신년 맞이 안부 인사를 덧붙이다가 점심은 먹었는지 물었다. 아직 점심 전이라 말하니 쉬는 날이라 손수 만든 반찬과 국을 좀 보내겠노라고 한다. 

“어떻게 보내려고?”

“모토로 배달 보낼게요”

하하하 웃음이 나왔다.

그렇지, 우리 단원은 오토바이를 타진 못해도 배달을 보낼 수는 있으니까.

그 마음 씀이 고마웠다.  

그리고 얼마 뒤 모토 운전사가 한 보따리 음식을 싣고 왔다.


나는 하얀 쌀밥을 그릇에 담고 보내온 미역국과, 미역 오이 무침에 호박전 오징어포를 차려서

홀로 밥상을 맞았다. 참기름과 고추장에 버무려진 미역과 오이의 아삭한 향이 마음 깊이 전해진다. 

“미경 고마워! 달고 맛있네”

한국에 가서도 동기들과의 밥상을 계속 이어가야겠다고 다짐한다.


'1 년을 잘 살아낼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과 함께 나눴던 밥상의 힘에 기인한 것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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