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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구 Jan 09. 2024

아내의 글을 읽고 싶다

책을 만들지만 온라인상에는 활동하지 않기에

아내가 쓴 글을 읽는 걸 좋아한다.

그가 다이어리에 적거나 노트북에 정리한 글을 보노라면 깔끔한 정갈함이 풍긴다.

전체적으로 리듬감이 있고 담백하면서 편안한 글쓰기다. 30여 년을 출판편집에 몸 담았기 때문에 글을 잘 다루는 측면이 있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일기를 재미나게 썼다.

글쓰기를 강조하는 차원에서 숙제를 내주셨던 5학년때 선생님은 잘 쓴 일기를  골라서 읽어주곤 하셨는데 그의 글은 자주 선택받았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아이들은 마지못해 억지로 쓴 표가 났지만 채택된 친구들의 글에는 알찬 흐름과 의미가 담겨있었다. 반에서 있었던 동일한 경험을 서술한 글에도 선택된 아이들의 문장엔 마력 같은 흡입력이 있었다.  


아내 회사가 만드는 책은 기획의도에 따라 필자가 다양하다. 문인에서부터 각 분야의 전문가들에 이르는 다양한 사람들이고 보니 글을 쓰는 스타일 또한 제각각이다. 진행을 총괄하는 아내는 때때로 어렵게 글을 써 온 학자들의 현학적 문맥을 이해하기 쉬운 글로 바꿔 부드럽고 세련된 문장으로 다듬는다. 그런 모습을 보면 저런 능력으로 자신의 글을 썼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된다. 

더구나 지금은 떨어져 지내느라 노트북에 저장된 아내의 글을 펼쳐서 볼 수도 없고 차근차근 대화를 나누지도 못하니 그의 필체가 그립다. 나는 홀로 있는 시간을 정리하는 차원에서라도 브런치와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있지만, 둘 다를 즐겨하지 않는 그이기에 아쉬움이 크다. 

전화로는 일일이 나눌 수 없는 아내의 심경과 일상이 너무나 궁금하고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글을 잘 쓰는 아내의 문장을 읽을 길이 없으니 아쉽다. 어쩜 직업이 책을 내는 일이고 매일 단어와 문장에 씨름하는 처지라 그럴 필요를 못 느낄 수도 있겠지만 가장 가까이 있는 펜으로서 서운하다. 나의 시시한 감정과 소소한 일상이 올려지는 반면 아내의 마음을 엿볼 수가 없으니 말이다.  

직장과 가사와 아이들 케어만으로도 바쁘니 여력이 안되기도 하겠다.


나의 파견 기간이 끝나가니 집으로 돌아가면 해소될 일일 수도 있다. 

바람이라면 내가 아는 그의 재능을 자기만의 공간에 가둬두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독특한 리듬을 함께 나누면 더욱 빛나지 않을까 하는 팬심 같은 마음이다.  


나의 글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내가 이번 언급은 이해해 주면 좋겠다. 

현실성은 없겠지만, 내가 벌어오는 생활비로 살면서 아내가 직장을 쉰다면 글이 나올 수 있을까? 

그 쉼 속에서 자유로운 창작이 흘러나온다면 그렇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정신없이 빨리 돌아가는 한국사회에서의 삶에서 벗어나 다른 템포로 살아가는 아프리카의 생활을

경험케 해 주면 좋겠다는 바람도 가져 본다. 아내를 쉬게 해주고 싶다는 간절함과 그렇게 해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현실 인식이 현기증을 일으킨다.  


그래도 하루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그와 함께 도란도란 일상을 나누며 편히 잠자리에 들 수 있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간의 외로움이 추억으로 변해가는 시점이다.  


르완다의 밤이 깊어 갈 무렵 서울의 새벽은 다가오는 시간이다. 




표지: pixabay.hngahae 님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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