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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구 Dec 22. 2023

아프리카 소녀들도 편식을 하네요

이렇게 몸에 좋은 음식을 안 먹다니.

학생들과 같이 급식을 먹다가 깜짝 놀랄 광경을 보았다.

밥 위로 얹은 채소를 열심히 골라내는 것이다. 각종 야채를 볶아서 만든 간간한 국물을 스튜처럼

올린 것인데 그걸 하나하나 분리해내고 있다. 당근을 빼고 호박도 골라내고 심지어 콩을 속아내서

한쪽 그릇에 담고 있다. 한 둘이 아니고 서너 명의 여학생들이 사이좋게 앉아서 편식하느라 골라내는 모습을 보니 너무나도 생경했다.

"너희는 몸에 좋은 당근 호박 콩을 다 골라내고 밥만 먹으면 어떡하니?"

"콩으로 죽을 쓴 음식도 남김없이 싹싹 비워내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보다가 너희들을 보니 내가 당황스럽네, 너희 지금 편식하는 거야?"

놀란 나머지 질문을 계속 이어가는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말한다.

“저희도 안 좋아하는 음식이 있어요.”

그 말은 내게 이렇게 들렸다.

“우리도 먹고살 만한 집에서 자라서 좋아하지 않는 음식은 안 먹는다고요.”

‘아! 그렇구나 음식에 호불호가 있을 수는 있지, 그런 호사는 그래도 굶지 않는다는 전제 조건에서는

가능한 선택인 거고, 너희 밀레니엄 세대는 아프리카라고 해서 선진국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지.

르완다의 키갈리 정도라면 어느 정도 사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말이야.’

그래도 오늘 뭔가로 머리를 세게 맞은 듯한 충격을 받은 게 사실이다.


음식을 산더미처럼 받아서 싹싹 비우거나, 급식 일부를 남기는 아이들은 봤어도 이렇게 대놓고

편식을 하는 친구들은 처음 본 셈이다.


르완다에선 고구마가 천대받는 음식이다. 반대로 감자는 상전이다.

고구마 값이 워낙에 싸서 어릴 때 지겹도록 먹는 게 고구마란다.

우리나라에서도 쌀이 워낙 비싸서 수제비나 국수를 물리도록 끓여 먹었던 사람들이 그 음식에 손사래를 치듯이 말이다. 대신 감자는 고구마보다 상대적으로 비싼 작물이라 대접받는 음식이다.

당연히 손님을 접대할 때는 감자가 올라가야 한다. 쌀은 감자보다 더 비싸고 귀한 양식이다.  


여학생들이 편식으로 골라낸 야채가 한 접시를 이뤘다.

‘한국에서는 건강식에 해당하는 당근, 호박, 콩, 브로콜리라 아까워서 버릴 수가 없다.

이미 나의 정량을 넘겼지만 학생들에게 핀잔을 주며 남겨진 음식에 손을 댄다.

“ 너희 건강을 위해서라도 이 음식들은 꼭 먹어야 해!

남기는 게 아까워서라도 먹지만 균형 잡힌 몸을 위해서, 다음에는 꼭 도전해 봐! 알겠지?"

몇 번을 다짐시키고 당부하면서 맛있게 먹는 시늉을 했다.  

한편으론, 허기를 면키 위해 뭐라도 먹었던 르완다 사람들이 이제는 취사선택이 가능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배고프게 자라지 않은 신세대들의 자기주장일 수도 있겠다는……

그래 이 아이들은 모바일과 인터넷을 통해서 세상의 정보를 자유롭게 취사선택할 수 있는 세대일 테니까.


르완다에서 맛본 햄버거와 샌드위치 피자와 치킨은 정말 일품이다.

유럽의 영향을 일찌감치 받아서 그들의 입맛을 잘 알고, 육류도 저렴하다 보니 고기를 아끼지 않고 사용한다. 햄버거의 패트는 육질이 두텁고 식감이 부드러운 것이 우리나라의 패스트프드점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양질의 맛이다. 닭도 우리나라의 치킨에 비한다면 알통이 두 배쯤은 더 튼실한 놈들이다.

감자는 해발이 천에서 이천 미터 사이에서 재배된 것들이라 강원도 감자 뺨치게 맛나고 달다.


아무튼, 한국은 온통 눈으로 뒤덮인 겨울왕국의 추운 크리스마스 즈음 이라는데 이곳은

햇살 쨍쨍한 한여름의 성탄 전야로 접어들었다.  

따끈한 우동 국물에 와사비에 찍은 회 한 점이 생각나는 저녁이다.

이곳엔 그런 음식이 귀하기만 하니 먹는 것 때문이라도 살던 곳이 그리워지는가 보다.  


한국에 가면 바로 먹어야 하는 음식 리스트라도 함 작성해 봐야겠다.

함께 맛나게 드셔 줄 분 계실까요?



표지: 르완다 햄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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