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과 버스 예찬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기도 전인데 뙤약볕의 열기로 인해 도심은 용광로다. 아프리카의 더위도 이 같지 않았는데 우리의 6월은 대프리카이며 서프리카를 연상케 하는 맹렬함이다. 장마철을 지나 본격적인 7,8월에 들어서면 습도가 더해질 터이니 벌써부터 정신이 혼미해진다.
작년엔 해발고도가 1,000미터를 넘는 키갈리에서 지냈기 때문에 한낮의 여름철도 큰 어려움 없이 지날 수 있었다. 후꾼한 열기가 양철지붕을 덥히면 통풍이 잘 안 되는 교실에서나 땀을 좀 흘렸지만 그늘로 나오면 선선해서 견딜만했다. 내륙이며 고도가 높아 습하지 않으니 쾌적했다. 해가 지면 선선해져서 더위가 물러가고 열대야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바다를 낀 아프리카의 도시는 우리의 여름처럼 습한 기운은 있지만, 밤까지 열기가 남아있지는 않기에 지낼만하다.
문제는 아프리카만큼 강렬한 태양빛이 내리쬐는 우리의 여름 나기가 점점 더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더위에 습기에 도심이 머금은 열기가 쉬이 식지 않는 열대야까지 만나면 속수무책이다. 공공건물이나 회사에는 에어컨이 쉴 사이없이 돌아가지만 집에 돌아와서까지 한정 없이 돌릴 수는 없다. 에너지 비용도 비용이지만 모두가 그런 방식으로 더위를 식히기에는 대처가 불평등하고 비합리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 이른 더위를 잘 견디게 만드는 건 우리의 대중교통시설 같다.
더위에 지쳐 헤롱거리다가도 지하철에만 들어가면 금방 살 것 같다. 깨끗한 지하공간이 주는 쾌적함과
전동차 안의 시원한 공기가 잠시의 휴식을 제공해 준다. 물론 러시아워의 만원 공간에서는 사람과 사람이 밀착되어 열기와 온기를 느낄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훌륭한 지하철시스템으로 인해 안도할 때가 많다. 아프리카에는 당연히 지하철이란 교통수단이 존재하지 않고 영국과 미국의 시설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수준에 자부심이 느껴지곤 한다.
버스는 어떤가?
전용차선의 영향으로 배차시간이 일정하고 이용할 버스가 언제 온다는 것을 알려주니 애를 태울 일이 없다. 앱에서도 시간을 확인해서 탑승할 수 있으니 편리하다. 버스 내부에도 에어컨이 잘 작동하고 있으니 턱턱 숨 막히던 바깥으로부터 구원받은 기분이다. 빈자리라도 발견하면 잠시 졸기에 이만큼 안성맞춤이 없다.
키갈리에 살면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바로 이런 버스 시스템이다. 정류장에 기다리면서도 언제 버스가 올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우르르 달려들어서 탈지, 길은 안 막히고 갈 수 있을지 늘 불확실한 상황의 연속이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이젠 2024년 6월 한여름으로 진입하기 직전의 대한민국 서울에서 살아가는 중이다.
아프리카에서 살면서 익숙해진 더위를 피하는 루틴을 그대로 실천하며 생활한다. 외출 시에는 넓은 창의 모자를 쓰고, 선크림을 바른 후 집을 나선다. 마을버스와 지하철 일반버스를 번갈아 타고 사무실과 집을 오가고 있다.
버스정류소에선 태양을 피하게 하는 그늘 좌석에 앉아 기다리다, 버스와 지하철에 올라선 실내로 뿌려주는 에어컨의 선선함에 땀을 식힌다. 지하철에서 나와선 모자를 눌러쓰고 사무실로 걷노라면 허벅지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팽팽함을 즐긴다. 어떠한 곳에서든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사람인 것 같다.
신호등 앞에서 잠시 기다리는 동안 높이 자란 가로수 그늘에서 땀을 닦거나 펼쳐진 파라솔 아래로 들어가 잠시 머문다. 아프리카보다 더 더운 것 같은 서프리카에서 대중교통시설은 나에게 한 모금의 오아시스다.
우리의 대중교통시설과 시스템을 칭찬하게 되는 더운 날이다.
표지: 인왕산에서 바라본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