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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구 Jun 17. 2024

약해지는 것을 인정할 때

언제나 푸르를 수는 없기에

드르륵 지지직 드릴로 썩은 부분을 긁어내는 동안 신경은 더욱 예민해졌다. 마취를 했지만 치아 깊이 송곳처럼 파고드는 날카로운 바늘의 공격에 몸이 바르르 떨렸다. 종국엔 불에 구운 오징어처럼  신체가

동그랗게 말리며 기구를 피했다. 불시에 맞이한 가공할 통증에 대한 조건반사적 방어였다.

 

딱딱한 게 껍질도 우두득 씹어먹던 때가 있었는데, 불길한 치통을 느끼자 이내 치과를 찾았다. 오른쪽 어금니와 그 옆의 치아 사이 어딘가에서 짜고 매우 것을 씹을 때면 찌릿하고도 시큰한 아픔이 엄습해 왔다.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어금니는 전체를 금으로 둘러쌓았으니 문제가 없을 것이었고 부분 금을 씌운 옆의 이가 악화된 것이라 생각했다. 외부의 충격으로 이에 금이 가서 잇몸까지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추측할 뿐이었다. 원장님은 엑스레이를 촬영해 보고 이를 딱딱 씹게 하면서  통증을 유발하는 부위를 찾아냈다.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치아 전체를 금으로 감싼 어금니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씌운 금을 벗겨 내기 전에는 원인을 찾을 수 없어서 견고한 틀을 제거하기로 했다.  

부분적으로  때웠다가 다시 전체로 금을 입힌 지 10여 년이 지났으니 해체하는 것도 단순치 않았다. 그동안 나름 치아 관리를 잘해왔다고 자부했는데 뜯고 보니 금 안쪽이 꺼멓게 썩어 있었다. 검게 상해버린 부분을

육안으로 확인하고 나니 왠지 허탈했다. 천년만년 견고하고 튼튼할 줄만 알았던 금니의 안쪽이 이 지경이 되도록 인지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금으로 둘렀으니 박테리아와 세균으로부터 안전할 것이라는 안이한 방심의 결과였다. 신경치료를 받는 동안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통증을 감내해야만 했다.


올 초 국내로 들어오면서 몸이 돌아가면서 안 좋았다.  처음엔 평소보다 두피의 각질이 많아져서 비듬을 제거하느라 샴푸에 신경을 써서 사용했다. 그러다 좀 안정되고 나니 이번엔 귀가 말썽이었다. 평소 잘 사용 안 하던 면봉으로 시원하게 귀를 후볐더니 이내 외이도에 염증이 생겨 몇 주간의 이비인후과 신세를 져야 했다. 몸에 면역력이 상당한 정도로 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하나 싶을 때 이번엔 상한 어금니를 발견한 것이다.


엊그제는 의자에 앉았다 일어나려는 순간 허리가 빠지직하는 통증이 찾아왔다. 평소에는 하등의 무리가 없는 동작들이 불가능해진 상태를 맞았다. 몸을 구부려서 양말을 신을 수 없을뿐더러 몸을 좌우로 움직이는 것조차 심한 허리 통증으로 절절매야 했다.  스스로 옷을 갈아입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의  몸상태로 변했다.

허리에 힘을 실을 수 없는 믿기 어려운 갑작스러운 통증에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하루를 꼬빡 누웠다가 이튿날 겨우 움직여서 정형외과를 방문해서 이런저런 진료와 물리치료를 받고 약을 복용하니 겨우 잦아들었다. 전에 허리 아팠던 병력이 없으니 물리치료만으로도 호전될 수 있을 거라 진단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추측건대 치과진료를 받으며 몸부림쳤던 허리근육의 일부가 이제야 난데없이 그 놀람을 표하는 것 같다. 너무 놀랐으니 이제는 네 몸을 스스로 잘 아끼면서 사용하라는 경고 같다.  


차량을 운행할 때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엔진오일을 갈아줘야 하고 브레이크 페달도 바꿔주고 타이어도 교체해줘야 하듯이 우리 몸도 늘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는 없을 게다. 시력이 떨어지고 청력은 약해지며, 이는 상하고 근육은 소실되어 몸의 탄력이 사라진다. 몸이 청년의 때와 같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고 그 능력치에 맞게 살뜰하게 아껴서 사용하는 지혜가 어느 때보다 절실해지는 시기다.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 요 9:4-


몸이 내게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이면서 마음을 살펴본다.

내게 주어진 소명과 삶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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