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묘사와 첫사랑의 담백함에 물든다

박완서 " 그 남자네 집"

by 준구

전쟁 직후의 서울살이를 담담하고 세밀하게 묘사한 작가의 문장이 풍경화처럼 펼쳐졌다. 골목골목의 전경이 상상으로 그려지고 돈암동에서 연지동을 돌아 청계천과 광화문 일대를 거니는 행인들의 표정까지 생생히 전해지는 듯하다. 청계천 변을 뒤덮은 악취와 후줄근한 판잣집은 여전한 위용을 자랑하는 조선의 고택들과 비교되고 내복도 잘 빨아 입지 못하던 시절의 구린내 속에도 향수로 치장한 양가집 규수의 활보가 교차되는 시절이었다.


“나는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의 아름다운 얼굴에서 창백하게 일렁이던 카바이드 불빛. 두툼한 파카를 통해서도 충분히 느껴지던 단단한 몸매, 나는 내 몸에 위험한 바람이 들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시대와 상황을 그리는 묘사에 가슴이 웅장해지고 첫사랑에 대한 작가의 섬세한 고백에 설레었다. 지나간 시절의 회상이긴 해도 어엿한 가정주부이자 조신한 어머니가 처녀 적 시절을 아쉬운 듯 그리워하는 솔직함을 용인하는 시대가 아니었으니, 작가의 용기 있는 솔직함을 응원하며 읽었다.

어릴 적, 거리의 포장마차를 밝히던 카바이드 불빛이 떠올랐다. 흰색 고체의 카바이드가 풍기는 그 독특한 향과 주변을 비추던 빛깔이 문장을 읽는 순간 부활한 듯 타올랐다.


피난 가지 못한 사람들로 남겨진 텅 빈 서울이 휴전 후 다시 채워져서 부나비처럼 모여들기 시작했다.

작가는 자신도 다시 대학에 복귀할 거란 부푼 기대를 품었기에 이런 표현을 사용했다.

“꿈꿀 자유만은 남아 있다고 믿고 끊겼던 꿈을 잇기 위해 앞다퉈 돌아온 피난민으로 서울이 미어터져가는 이 마당에.”


“인구의 집중 현상과 의식주의 절대적인 부족은 사람의 실생활뿐 아니라 위계질서와 윤리의식에도 엄청난 지각변동을 가져왔다”

철철이 들여놓는 쌀가마와 한 해 분의 연탄 장만, 후줄근한 군복 패션에 동네마다 깃발을 드높였던 박수무당집이 번성하던 시절이었다. 도처에 널린 지지궁상에도 작가는 남편을 만나 혼례를 치렀다. 함과 사주단자가 오가는 속에서 양반의 자존심과 중인 집안으로 궁의 소주방에서 일한 가문의 전통이 어떤 첨예함을 드러내는 지를 보여줬다. 어려운 시절에도 먹는 것이 낙이고 품위가 되는 가풍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작가 역시 이를 문화의 차이라고 표현했다.


“여기저기서 아기들이 지천으로 태어날 때였다. 전후라는 시기는 전쟁 중에 죽고 죽인 엄청난 인명을 벌충하려는 하늘의 뜻 같은 게 축복처럼 형벌처럼 이 땅의 천지간에 미만 해 있었다.”

이 문장이 나의 머리를 쿵 때리는 것처럼 가슴에 와 박혔다. 밑줄을 긋고 마음으로 암기하고 싶은 시구의 운율이었다. 그 시절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태어났고, 아이들의 터울이 2~3년으로 맞춰질 수 있었던 것은 아무렇지 않은 듯 자행되었던 소파수술에 있었음을 빼놓지 않았다.


나의 70년대 국민학교시절이 6~7십 명이 한 교실에서 수업받느라 2 부재 수업을 치렀다면 50년대는 이보다 더 열악한 3 부재 수업까지도 실시했다는 사실에 기겁했다. 칠십여 명의 아이들이 한 반에서 생활하니 선생님에게 자기 자녀의 이름이라도 인지시키려면 치맛바람에 촌지가 등장하는 것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시절이다.


먹고사는 문제가 제일 크게 다가오는 시기에 이웃 여동생 춘희를 미군부대에 취직시켜 주고 행여 잘못될까 조바심 내보지만, 걱정은 현실로 다가왔다. 가족을 먹여 살렸지만 양갈보라는 굴레 속에서 도피하다시피 미국으로 터전을 옮긴다. 그래도 한 몸 희생해서 동생들을 가르치고 부모를 봉양하고 가족들을 희망의 땅으로 정착시킨다. 자녀뻘인 조카들에겐 미국 현지에 적응하라고 한국말을 안 가르쳤는데 그 손자 세대는 다시 번성한 코리아의 영향으로 한국어를 배우느라 난리인 시대를 맞았다. 춘희가 작가에게 국제전화로 하소연하는 마지막 장에서 2000년에 부상한 한국의 세계적 위상을 잘 말해주고 있다.


작가가 기록하는 시대상과 진솔한 감정 묘사가 후대에 얼마나 생생한 가치를 부여하는지 절절하게 공감하며 책의 마지막에 다다른다. 끝 문장이 내내 잊히지 않을 것 같다.


“그 남자도 무너지듯이 안겨왔다. 우리의 포옹은 내가 꿈꾸던 포옹하고도 욕망하던 포옹하고도 달랐다. 우리의 포옹은 물처럼 담담하고 완벽했다. 우리의 결별은 그것으로 족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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