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이런저런 상념들

2022년 1월 9일에

by 준구

새해가 밝은지 10여 일이 지나고 있다.

연말엔 2021년의 막바지에 몰린 일을 마무리 짓느라 바빴고, 잘 못하면서도 맡아야 했던 교회의 살림을 결산하느라 여유가 없었다. 1월부터 12월까지의 기록을 살피며 숫자의 오기는 없는지 항목과 합계는 정확한지 수없이 반복해서 복기했다.

내 돈을 내가 쓴 거라면 수치가 안 맞더라도 무슨 상관이 있을까마는 공적인 재정이라 끝자리까지 일치시켜야 한다는 압박에 눌렸다. 어렵게, 한 두장 짜리 결산 페이퍼로 완성하며 보고를 마쳤다. 중압감이 사라지니 긴장이 풀린 체 2022년의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50대의 중반으로 맞이하는 2022년이라 자뭇 진중하다.


신앙인으로 피디란 직업을 소명으로 살고 있으니 나의 달란트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품는다. 코이카나 NGO 단체 또는 선교회의 홈페이지를 종종 방문하는 건 행여라도 영상제작 관련 교육을 필요로 하는 수원국이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은 영상을 제작하고 이를 가르치는 일인데, 코로나로 인해 해외 촬영을 나가지 못한 게

3년째다. 가서 그들의 삶을 진솔하게 보여주고 영상을 통해서 후원을 이끌어 내고 돕는 것이 나름의 보람이었는데 길이 막혔다. 몇 해 전, 르완다에서 청년들을 가르치면서 배움에 갈급한 반짝이는 눈빛에 매료되었었는데, 다시금 그들 곁으로 갈 여력이 없다.

코이카에서 보내는 봉사단원은 젊은 층을 선호한다. 50세 이상에게는 기회조차 주워지지 않는 분위기다. 선교회는 누군가를 후원할 재정이 없고, 자비량 전문인 사역자로 나가기엔 자녀와 아내에게 무책임한 가장이 되는 것 같다. 마음은 원이로되 어찌할 선택지가 많지 않은 새해 벽두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집안 구석구석을 정리하며 짐을 내다 버리고 배치를 바꾸었다. 딸의 방에 새롭게 책상을 놔주고 가구를 버려서 조금이나마 넓게 공간을 꾸몄다. 서가에 놓인 책 중에서 그간에 내게는 전혀 낯선 분야에 해당하는 화학과 물리학 천문학 등의 서적을 응시하다 한 권을 잡아들었다. 이제라도 관심 갖지 않으면 평생을 살아도 알지 못할 것 같다는 뒤늦은 깨우침 같은 각성이랄까......

1년을 붙잡고 읽어 내린 walden 은 끝 부분에 도달했으면서도 시원스러운 깨달음이나 익숙함이 없다. 문학이면서 고전이고 사상가의 사색이 이런저런 분야를 오가느라 동시에 번역서를 오가지 않으면 그 느낌 그대로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런데도 끝까지 붙들고 놓지 않음은 무언지.......


넷플릭스 가입의 이유가 ‘종이의 집’이었고 종료도 ‘종이의 집’ 때문이 되었다.

정확하게는 새해의 기운을 바꾸느라 이를 정지시켰다. 비디오를 빌려보던 시절을 떠올리며

마지막에는 ‘남산의 부장들’ ‘아수라’ ‘내부자들’을 몰아서 봤다.

나의 선호와는 무관하게 봐야 할 것 같아서 의무적으로 감상했다는 말이 옳겠다.

우리 사회를 어떻게 하면 보다 건강하고 정의로운 공간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까?


새해에 방송된 ‘이슈픽 쌤과함께’ 김누리 교수 편을 시청했다.

우리 사회의 문제를 통찰력 있게 짚어 내는 모습에서 조금의 위안을 받는다.

나도 사는 동안 가족과 사회와 이 세상에 유익을 끼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머릿속의 엄청난 상상과 현실의 부조화로 어질 해질 때가 많다.

그럴 때면 기도하게 된다.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에도 내 길을 인도하시는 이의

한없는 은총이 나를 비춰 주시기를......


그렇게 겸허해지고 기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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