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뮹뮹 Mar 07. 2017

예술가와 예술과 도덕

커피를 마시며 짧은 생각

내가 제일 여러 번 읽고 좋아하는 시는 박진성 시인의 <식물의 밤> 이라는 시집에 나오는 <투명> 이라는 시다. 읽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투명하고 여린 것 같은 이미지에서 강직하게 뿜어져 나오는 필체의 카리스마가 너무나 매력적인 시다. 외국까지 소중하게 가지고 갔던 박진성 시인의 시집은 외국 생활에서 심심한 위로와 재미가 되어주곤 했다. 당연히 내가 좋은 것은 나누고 싶은 마음에 친구한테 이 시인의 시집을 추천해주었는데 "박진성 시인은 최근 문화계 성폭력 추문에 여러번 언급 되어서 본인이 활동 중단을 선언한 대표적인 인물이야.." 라는 답글이 돌아왔다. 무언가 민망한 마음에 몰랐다는 식으로 서둘러 답글을 달았지만 사실은 알고 있었다. 예술가와 예술 작품의 관계를 논할 때, 나는 그 둘은 전혀 다른 것으로 인지하고 있었다.

물론 예술가가 죄를 지어도 그의 예술 작품이 좋으면 다 용서받을 수 있고 좋다 - 라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우리는 참 망나니 같은 사람들의 예술 작품을 아주 오래 전부터 즐기고 있었다. 바그너의 음악 중에서 유태인 혐오가 담기지 않은 음표 하나가 없다는 설이 나올 정도로 바그너는 심각한 유태인 혐오자였다. 화가 카르바지오는 살인자였고 바이런은 근친상간을 즐겼고 플로베르는 미성년 남자아이들에게 돈을 주고 섹스를 즐겼다. 예술가는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일지 몰라도 그 예술가가 창작하는 예술이 도덕적으로 용납받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신물이 나올 정도로 많이 우려먹는 예시지만 미성년자와의 성욕구를 주 소재로 한 롤리타 라는 소설같이 말이다.

사람을 논할 때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대고 평가할지 언정 예술까지도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댈 수 있는 것인가에서 나는 예술은 미적 영역 안에서만 평가 받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예술이 도덕적인지에 따라서 예술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 아닌 것처럼 예술이 굳이 도덕적일 필요도,  좋은 예술을 만들기 위해 예술가가 도덕적일 필요도 없다 (물론 예술가가 죄를 지었으면 당연히 법원에서 판결을 받고 죗값을 치루어야겠지만). 어떤 그림이 인종차별적 요소가 들어갔다고 해서 감상자까지도 인종차별에 동의할 필요는 없다. 작가의 붓터치와 섬세한 구도나 아이디어를 즐긴다고 해서 그 그림이 품은 인종차별적 이야기까지도 내가 인지하고 이해한다는 것이 동의한다는 의미는 아니니까.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는 많이 벗어나는 기분이지만 결국 표현의 자유에 귀결되지 않나 싶다. 일베 동상이 홍대에 올라간다고 해서 분노할지 언정 그것을 부시는 것과 페미니스트들이 여자를 꽃에 비유하는 것이 불편하다 라고 할지 언정 그 비유를 금지해라 라고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예술가도 마찬가지 아닌가 싶다. 어떤 부도덕한 예술가가 어떤 부도덕한 이야기를 하던 그 이야기를 "하지 말라" 라고 하는 것은 개인의 도덕도, 사회의 도덕도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절대 다수가 내가 불편하고 내가 싫고 그런 생각이나 부도덕한 짓을 한 예술가가 싫다 라고해서 그 예술가의 목소리와 창작물을 부시고 태우고 억압하는 것은 결국 우리 사회에 있는 한 목소리를 나 편한대로 지우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결론 따위 없지만 박진성 시인 외에도 다른 문학계 성폭행 추문에 관해서 진실이 밝혀지고, 허위사실이 있다면 가려내고 만약 죄가 있다면 떳떳하게 처벌을 받으셨으면 싶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글을 쓰신다면, 모두들 전보다 더 성숙해진 필체로 돌아오셨으면 하고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소파 아래에 바퀴벌레가 나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