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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K Dec 12. 2023

처음은 원래 후지다

그럴 수도 있지 뭐

요즘 취미로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 초등학교 때 이후로 다시 배우는 것인데 높은 음자리만 보고 겨우 도레미파솔파시도만 따라 치는 수준이라서 기본부터 배우는 중이다.


피아노 레슨 2주 차가 됐다. 기초적인 것을 배우는데도 악보는 안 읽히고 손가락은 따라가지 못하는 대참사가 벌어진다. 선생님과 나만 있을 땐 그나마 괜찮은데 오늘따라 학원에는 나 같은 성인 수강생이 몇 명 있었다. 괜스레 비교가 됐다.

'저 사람은 그래도 좀 피아노를 쳐봤나 보네. 잘하네..'


잘하는 비교 대상과 후진 내가 같은 시공간에 있으면 후진 내 모습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누가 있냐고(가끔 있기도 하지만) 마음속으로 되뇌며 애써 후진 내 모습을 합리화시켜 본다.


생각해 보면 확실히 나는 어떤 것이든 처음부터 잘하는 부류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저 후진 내 모습이 스스로 싫어서, 그걸 다른 사람에게 들키기 싫어서 열심히 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벌써 4년 넘게 해오고 있는 요가도 처음에는 그 누구보다도 못했다. 요가에 잘하고 못하고는 없다고 하지만, 간단한 동작 하나 제대로 하기에도 너무 버겁고 힘들었다. 몇 달을 해도 제자리걸음인 요가 실력에 속으로 꽤나 울기도 했다. 도대체 내 몸뚱아리는 왜 안 되는 걸까, 하면서. 그렇게 후진 실력으로 몇 년을 하다 보니 이제는 그래도 동작들은 꽤 소화해 내는 몸이 됐다. (죽어도 안될 것 같던 머리서기도 3년 만에 성공했다.)


레슨을 마치고 연습실에 들어가 좀 더 피아노를 쳤다. 레슨실에서 들려오는 또 다른 성인 수강생의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후진 내 피아노 실력과 겹치면서 또 쭈굴 해졌는데 그래도 꿋꿋이 피아노를 쳤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저 사람은 잘하는 거고, 나는 못하는 거고. 비교해서 뭐 하나, 어차피 내가 바로 저 사람처럼 칠 수도 없는데. 그냥 나 할 거나 제대로 하자.'


초라하고 후진 내 모습을 마주하는 건 무엇이든 마찬가지인 것 같다. 참 좌절스럽고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그래도 꿋꿋이 해나가다 보면 어느 정도는 꽤 해내는 내가 될 것이다. 이렇게 마음먹기까지 아직도 쉽지는 않다. 하지만 이제는 후진 내 모습을 더 이상 부정하고 싶지 않다. 자존심 상하고 쪽팔리고 때로는 거지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런 과정을 겪어야 성장할 테니.


피아노 연주 첫 번째 목표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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