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마주하는 시간.
새벽부터 택배가 도착했다.
엄마의 택배다. 파김치, 깍두기, 코다리조림, 깻잎절임과 마늘, 파, 양파, 오징어채까지 한 짐을 택배로 보내셨다.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고맙다는 말 대신, 무겁게 왜 이렇게 많이 보냈냐고 어떻게 우체국까지 가져갔냐고 타박부터 하고 말았다.
늘 이런 식이다.
만들고 보내느라 힘들었을 텐데 고맙다고 해야 하는데, 마음은 그러한데 말은 반대로 나간다.
참 못났다. 드라마에서 엄마에 관한 이야기만 나와도 눈물이 먼저 나면서도, 말은 참 못나게 한다.
아이들 때문에 힘들었을 때도 멀리 있는 엄마한테 전화로 내 감정을 굳이 실어 보냈다.
걱정하실걸 알면서도, 참지 못하고 엄마한테 내 화를 걱정을 쏟아냈다.
나에게는 남동생이 있었다.
4년 전, 동생은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저녁 11시쯤이었나.
늦은 시간에 전화를 하지 않는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느낌이 이상했다. 전화기 너머로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네 동생이 이상하다고, 샤워하다가 쿵 하는 소리가 나서, 문을 열었더니 쓰러져 있다고, 구급차가 몇 대나 왔는데도 애가 일어나질 않는다고 했다.
사람들이 웅성대는 소리 사이로 엄마가 울고 있었다.
자는 애들을 깨워 빨리 외할머니 댁에 가야 한다고 말하고, 짐을 대충 챙겨 나가려는 순간 이모에게서 전화가 왔다.
동생이 떠났다고 했다. 갑자기 너무나도 갑자기 그렇게 동생이 떠나가 버렸다.
어떻게 대구까지 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남편은 쉬지 않고 운전을 했고, 아이들은 조용히 앉아 있었고, 나는 웅크린 채 울고 있었던 것 같다.
동생과 나는 네 살 차이였다.
서로 살갑게 지내는 사이는 아니어서, 내가 결혼한 후엔 명절 때가 아니면 따로 만나는 일도 드물었다.
서로 바쁘다는 핑계로,
정신없이 장례식을 치르고, 동생의 친구들과 회사 사람들을 만나며 새로운 동생의 모습을 알게 되었다.
이 무슨 어처구니없는 일인지, 누나라면서 동생을 참 몰랐구나 싶었다.
동생의 친구들과 회사 사람들 덕분에 정리는 빨리 되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 아빠, 동생, 나, 이렇게 우리 네 식구가 함께 밥 한 끼 먹는 꿈이라도 꾸었으면 좋겠다고.
엄마는 그때부터 밥을 잘 드시질 않는다. 입맛이 없다고 했다.
맛을 못 느끼겠다고.
엄마 집 근처에는 이모들이 산다.
엄마에게 집을 정리하고 서울로, 내 곁으로 오시라고 했지만, 이모들이 가깝게 있고, 정정하신 외할머니도 계시다며 나중에 오겠다고 하신다. 외할머니는 103세이시다. 외삼촌 댁에 계시지만, 아직도 밭에 나가서 잡초를 뽑으실 정도로 정정하시다.
엄마는 걱정이다. 자기도 외할머니처럼 오래오래 살게 될까 봐.
나를 생각하면 오래오래 살고 싶지만, 너무 오래는 살고 싶지 않다고......
엄마가 보내 준 음식들을 정리하고 다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입맛이 없어서 간을 잘 맞췄는지 모르겠다는 엄마에게,
“엄마, 간이 딱 맞아. 파김치는 아린 맛이 하나도 없어. 양념에 사과도 갈아 넣었다더니 더 맛있네. 깍두기도 익으면 맛있겠다. 깻잎도 맛있네. 코다리조림도 간을 더 맞출 필요도 없구만. 다 맛있어. 잘 먹을게.”
사랑한다는 말도 덧붙이면 좋으련만, 차마 그 말을 못 붙였다.
“사랑해, 엄마”라고 말하는 순간 눈물이 흐를 것 같아서, 그 말을 못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