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텃밭

질문 5. 최근 가장 만족스러운 소비는 무엇인가요?

by 동그리

“베이지? 카키? 블랙? 카키색이 무난할 것 같은데? 음, 그래. 카키색이 예쁘네. 블랙도 괜찮을까? 햇볕을 가리려면 블랙이 나을지도… 아니면 더워 보이려나? 그냥 밀짚모자로 할까? 감성에는 그게 더 어울릴 것 같은데. 아, 뭘로 하지?”


일단 장바구니에 담아두자. 호미도 넣고...... 아, 맞다! 팻말도 세워야지. ‘이 고랑은 내 고랑이다!’를 알릴 팻말도 추가! 씨를 뿌려 키울까? 아니면 모종을 사서 심을까? 고민되네. 안 되겠다. 텃밭 책도 한 권 사야겠다.


신중하게 고른 가볍고 방수까지 되는 넓은 챙의 카키색 모자, 소중한 모종을 심기 위한 호미, 텃밭 주인의 자부심을 담은 팻말, 그리고 초보자도 따라 하면 성공하는 텃밭 매뉴얼 책까지.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3월 22일부터 텃밭 농사를 지을 수 있다.

공교롭게도 이 날은 내 생일이다.(생일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나는 흙 향기가 좋다.

비 온 뒤 촉촉한 공기 속에 퍼지는 흙 내음, 차가운 감촉이 좋다. 손으로 움켜쥐면 서늘하고 부드럽다가, 살짝 힘을 주면 단단하게 뭉쳐지며 촉촉한 감각이 전해진다.

어릴 적 외할머니 댁에 가면, 엄마를 따라 고추밭에 나갔다. 집에 가져갈 고추를 따고, 깻잎을 따는 일이 그렇게 재미있었다.

톡톡, 줄기에서 깻잎을 딸 때마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감촉이 좋았고, 싱그러운 향기가 퍼졌다.


가을이면 고추밭 옆 커다란 호두나무 아래에서 떨어진 호두를 줍곤 했다.

하나라도 놓칠까 꼼꼼히 살피다 우연히 발견한 호두를 손에 꼭 쥐고 오던 날들.

집 뒤에는 커다란 밤나무도 한 그루 있었는데, 지금까지도 그 밤보다 맛있는 밤은 먹어본 적이 없다.


어느 늦가을, 외할머니 댁에 갔을 때였다. 떨어진 밤을 친척들이 모두 주워가고 남은 게 없었다.

실망하는 내게 외할머니는 창고에서 낡은 망을 꺼내셨다.

‘집에 갈 때 가져가라’며 몰래 숨겨두셨던 밤 한 망.

세월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외할머니의 온기였다.

내 텃밭 로망은 어릴 적 추억 때문일지도 모른다.

베란다에서 종종 상추를 심었는데, 아이들에게 물을 주게 하고, 먹을 때면 꼭 직접 따오라고 했다.

아이들에게도 그런 작은 기억을 남겨주고 싶었다.

나의 텃밭.

앞쪽에는 상추, 로메인, 치커리, 루꼴라를 심고, 뒤쪽에는 토마토와 고추를 심을 예정이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겠지.

식사 때마다 가족들과의 이야기도 풍성해질 테고, 건강도 챙기고, 생활비도 절약하고, 버킷리스트도 이루고.


이 정도면 일석이조가 아니라 일석사조다!

+텃밭 분양 성공에 지대한 공을 세운 ‘완자’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루꼴라와 고구마 잊지 않을게. 고마워.)

상추, 치커리, 쑥갓, 루꼴라, 감자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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