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10. 당신에게 밤은 어떤 의미인가요?
낮은 아이의 시간이다. 분주하고, 바쁘고, 요란하다.
낮 시간이 여유로워진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여유’라는 것이 생겼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니, 내 이름보다는 아이 이름으로 더 자주 불리게 되었다.
‘OOO 엄마’라는 새로운 이름, 새로운 부캐의 탄생.
아이를 등교시키고, 집안일을 하고, 아이 친구의 엄마도 만나야 하는 정신없는 하루.
그러다 모두 잠든 밤이 오면, 조용히 나만의 세계가 열린다.
그곳에서는 말이 필요 없다.
잔소리쟁이 엄마도 없고, 종종종 바쁘게 움직이던 나도 없다.
오롯이 나만 남는 시간.
큰아이가 유치원에 다니던 무렵, 나는 가구 리폼과 DIY에 푹 빠져 있었다.
그때는 아직 몸집이 큰, 뚱뚱한 TV를 쓰던 시절이었다.
거실장 위에 올려놓은 TV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아, 멀쩡한 거실장을 재활용센터에 내놓고, 문짝이 달린 오래된 TV장을 들여왔다.
원목으로 된 그 TV장에 사포질을 하고, 바니쉬를 바르고, 하얀색 페인트를 칠했다.
낮에는 아이와 시간을 보내야 했기에, 작업은 늘 밤에 이루어졌다.
아이가 잠들면 조용히 라디오를 틀고 붓을 들었다.
새벽 1시, 2시까지 페인트를 칠하며 라디오를 듣는 시간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나만의 놀이시간이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완전히 나로만 채워진 시간.
하지만 둘째를 갖고 나면서 이 고요한 밤은 한동안 멀어졌다.
그러다 둘째가 두 살쯤 되었을 무렵, 다시 나의 시간이 돌아왔다.
이번에는 베이킹이었다.
나는 쿠키, 케이크, 빵을 굽기 시작했고, 특히 브라우니를 자주 만들었다.
큰아이가 등교하고 나면, 집에만 있기엔 답답해서 둘째를 유모차에 태우고 동네를 산책했다.
아이가 잠들면 근처 카페에 들어가, 깰 때까지 한두 시간 정도 머물렀다.
일주일에 두세 번 그렇게 드나들다 보니 단골이 되었고, 어느 날 내가 만든 브라우니를 사장님께 드렸다.
사장님은 맛있다며, 한번 팔아보지 않겠냐고 하셨다.
육아에 지쳐 있던 나는 그 말에 다시 힘이 솟았다.
그날 이후, 내가 만든 브라우니가 가게 진열대에 올랐다.
좋은 초콜릿과 버터를 사용하고, 정성껏 포장도 했다. 반응은 꽤 좋았다.
브라우니를 시작으로 호두파이, 레밍턴, 오징어 먹물빵(샌드위치용)까지 만들게 되었다.
돈이 많이 되는 일은 아니었지만, 내가 만든 것을 누군가가 기꺼이 돈을 주고 사 먹는다는 사실이 기뻤다.
그러다 사장님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가게가 문을 닫게 되었고, 그렇게 1년 반의 시간도 조용히 끝이 났다.
이제 그 아이들은 어느덧 스물한 살, 열다섯 살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사포질을 하거나, 브라우니를 굽진 않지만, 여전히 무언가를 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밤이 되면 조용히 나만의 세계를 연다.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고, 글쓰기 모임에 올릴 글을 쓰고, 동동이의 털도 빗겨준다.
아이의 재잘거림으로 가득하던 낮은 지나가고, 이제는 각자의 시간이 많아졌다.
내 시간이 한결 여유로워졌지만, 이상하게도 여전히 밤이 되어야 진짜 나와 마주하는 기분이다.
밤은 여전히 나만의 시간이다.
잔소리도, ‘OOO 엄마’ 역할도 모두 내려놓고, 그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조용한 시간.
그때나 지금이나. 밤은 나에게 가장 솔직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