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12. 과거의 나에게 감사한 일이 있나요?
아빠는 택시드라이버였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개인택시를 운전하셨다.
조금 더 어릴 적, 국민학교 4학년 무렵에는 고속버스를 몰고 다니셨다.
가끔 아빠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5시쯤 집 앞 정류장 지나간다. 나온나.”
동생과 나는 서둘러 신발을 신고 버스정류장으로 달려갔다.
얼마 후, 아빠가 몰던 버스가 멈춰 서고 문이 스르륵 열렸다.
“이거 가지고 가라.”
산지에서 직접 구해오신 과일 꾸러미가 우리 손에 안겼고, 아빠는 다시 핸들을 잡고 떠나셨다.
버스가 멀어질 때까지, 동생과 나는 손을 흔들며 서 있었다.
아빠가 멀리까지 다녀오실 때면 며칠 만에 집에 들어오곤 하셨다.
그럴 때마다 빈손인 적은 없었다.
어떤 날은 초콜릿 한 상자, 어떤 날은 빵이 한 상자.
한두 개가 아니라, 늘 박스째였다.
“조금만 사 오라니까.” 하는 엄마의 잔소리에도,
“아빠 때문에 살이 자꾸 쪄.” 하는 내 투정에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아빠는 늘 한가득 사 오셨다.
내가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아빠는 고속버스 운전을 그만두고 개인택시를 몰기 시작하셨다.
삐까뻔쩍한 새 차가 우리 집 마당에 들어섰고, 우리는 팔공산으로 드라이브를 갔다.
새 차 냄새.
팔공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구불구불했지만, 차는 부드럽게 달렸다.
창밖에는 짙푸른 산 그림자와 반짝이는 계곡물이 이어졌고,
아빠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를 따라 낮게 흥얼거리셨다.
그날의 아빠는 조금 자랑스러워 보였고,
우리는 그런 아빠가 좋았다.
아빠는 다시 긴 시간을 도로 위에서 보내기 시작했고, 우리는 자랐다.
언제까지고 우리 곁에 계실 것 같던 아빠는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나는 운전 안 할 거야. 절대로 안 할 거야.’
아빠의 사고 이후, 운전은 두렵고 멀게 느껴졌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한 해, 엄마가 내 손을 잡고 운전학원에 등록했다.
“지금은 안 해도, 언젠가 필요하다. 지금 시간 있을 때 배워둬라.”
그렇게 따게 된 면허증은 몇 년 동안 장롱 속에 잠들어 있었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가 자라면서 운전할 일이 하나둘 늘어났다.
결국 다시 도로주행 강습을 받고, 운전을 시작하게 되었다.
남편이 운전해 줄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장거리 운전도 번갈아 할 수 있으니 한결 수월하다.
지금 돌아보면, 엄마가 그때 운전학원에 등록해 주지 않았다면
내가 스스로 면허를 따려고 했을까?
아마...... 그러진 못했을 것 같다.
겁이 나면서도 면허를 따둔 그때의 나에게 고맙고,
조용히 내 손을 잡아끌어 준 엄마가 고맙다.
그리고 지금까지 별일 없이, 사고 없이 운전해 오고 있는 걸 보면
어쩐지 아빠가 곁에서 조용히 도와주고 있는 것만 같다.
“오른쪽, 왼쪽 잘 살피고, 노란 신호등은 빨리 가라고 바뀌는게 아니에요. 속도를 줄이라는 겁니다.”
도로주행 연습 때 강사의 말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오늘도 운전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