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아, 미안.

질문 13. 램프의 요정에게 부탁하고 싶은 세 가지

by 동그리

26도, 29도, 31도, 34도. 어제 우리 집 층별 온도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중간쯤(12개 중 6번째 계단쯤)에서 사우나에 들어선 듯한 느낌이 시작된다.

연일 ‘온열 질환 주의’라는 안전 안내 문자가 울린다. 덥다. 더워.

며칠 전, 방학을 시작한 둘째 아이와 광화문에 있는 서점에 다녀왔다.
큰아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부터, 방학이 시작되는 날이면 그 서점에 가는 게 우리 가족의 작은 전통이 되었다.
그곳 특유의 시그니처 향, 조용한 분위기를 우리 모두 좋아했고, 어느새 ‘방학 첫날엔 서점 가기’가 당연한 일이 되었다.

서로 책을 고른 후 만나기로 하고, 각자 헤어졌다.

나는 ‘여름’에 관한 책들만 모아둔 코너에서 한 권을 골랐다.
표지가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 여름을 조금은 좋아할 수 있을까?

우리 가족은(반려견까지 포함해서) 모두 여름을 싫어한다.

여름이 싫은 이유를 말하자면 끝도 없다. 아! 그래도 딱 하나, 좋은 점.

빨래가 빛의 속도로 마른다는 것. 옥상에 너는 빨래는 정말 순식간에 바짝 마른다. 그거 하나는 인정.

그런데 둘째 아이가 방학을 해서 집에 있으니, 싫은 여름이 더 싫다.

열다섯 살, 중2, 예민함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아이. 이 아이와 그리고 강아지와 함께 더위를 피해 1층에서 지낸다고 생각해 보라. (생각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지 않는가.)


해가 지날수록 여름은 더 뜨거워지고 있다.

더워도 너무 덥다. 에어컨을 층마다 쌩쌩 틀어놓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하지만 더위보다 더 무서운 전기요금님 때문에, 마음대로 틀지도 못한다.


“여름아, 미안.

네가 없으면 안 되는 줄 알면서, 고작 바짝 마른빨래만 좋아해서,

그래도 널 좋아해 보려고 노력 중이야. 너의 좋은 점도 하나씩 찾아내고 있어.

빵을 만드는데, 발효가 너무 잘되더라. 그리고, 주 3일 하던 수영을 주 5일로 늘렸어.

더워서 시작한 수영인데, 하고 나면 몸이 개운해지더라고.

그리고 있잖아, 여름아.

요즘 그런 상상도 해. 램프에서 요정이 튀어나와 소원 세 개를 들어주겠다고 하면, 뭘 빌까 생각해 봤어.

돈!(3대가 써도 남을 만큼), 큰아이 대학 합격, 그리고 너.

네가 좀 덜 뜨거웠으면 좋겠어.(그래도 여름은 여름다워야 하니까, 조금만 부탁할게.)

좋은 점을 하나씩 찾아보다 보면, 내년엔 너를 기다리게 될지도 모르겠어.”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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