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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역니은 Jul 22. 2023

나의 결혼일지 08 - 공황에 관하여(1)

공황장애가 당황스러운 당신


나는 공황, 남편은 공항 내지 또는 곰탕이라고 부른다.

남편은 시간이 지나도 그 두 글자를 똑바로 발음하기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귀엽게 부르면 그 병이 좀 다르게 느껴지는 걸까?


공황장애가 있다는 건 일 년 반에 걸쳐서 아주 천천히 알았다. 처음에는 몸 온갖 곳에 염증이 났고-피부에서 턱으로 무릎으로 여기저기 번져 나가는 환장함을 동반- 다음에는 심장이 쿵 떨어지거나, 짓눌린 듯 갑갑해지거나, 추를 달아놓은 것처럼 너무 무겁다고 느꼈다.


지독한 담에 걸린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결릴 리가 없지. 목, 어깨, 허리가 뻐근하고 저린 건 현대인이자 사무직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법한 질환이니까 심각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이런 정도로는 누구한테 아프다고 하기도 민망했다.

사무실에서 손목이나 어깨, 목이나 허리 아픈 사람 손 들어보세요 하면, 너도 나도 우르르 손 들고 일어설걸.


회사 근처에 자주 가던 정형외과 의사는 염증이니 물리치료를 꾸준히 받으라고 했고 심전도 검사를 한 내과의 사는 결과가 멀쩡한 걸로 봐서 식도염일 가능성이 있다, 고 했다. 정형외과도 내과도 한의원도, 어디에서도 속 시원한 진단이나 처방은 받지 못했다.


어느 날은 예의를 차린답시고 상사를 위해 문을 밀다가(그러니까 고작 문을 열어주다가)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담이 심하게 왔고, 그날 밤 결국 응급실에 갔다.

응급실에서도 이런저런 검사를 하느라 시간만 보냈을 뿐, 아무런 소득 없이 집에 돌아왔다.


그 일이 있고 다음 주에, 아무 생각 없이 찾아간 사무실 근처 통증의학과에서-원래 병원에서 길게 이야기하거나 질문을 하지 않는 편인데도-어쩐 일인지 내 일련의 증상과 병원 방문기를 좀 소상히 이야기했다. (마음 깊숙이 내가 이렇게 많은 병원을 전 전하는 동안 어딜 가도 차도가 없더라는 서러움이 깔려있었나 보다)


내 이야기를 관심 있게 들어주던 중년과 노년 사이 어딘가의 의사는 (난 이때 그의 아미셔츠며 안경을 보고 패션 센스가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넨 여기 있을 게 아닌데, 옆 방에 정신의학과 선생이 있으니 거길 가보라고, 했다.


내가 공황인 거 같다고.


그 병원은 통증의학과와 정신의학과가 같은 병원 안에 있고, 통증의학과 의사와 정신의학과 의사가 벽 하나 사이에 방을 두고 있는 신기한 병원이었던 것.


의사는 그 자리에서 바로 옆방 정신의학과 의사에게

전화를 건 다음, 환자 한 명을 받아달라고 했다.

자기 친구인데, 자기보다 훨씬 좋은 사람이고 잘해줄 거라고 날 웃으며 보냈다. (글을 쓰는 와중에 대기자들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드네. 이 병원은 항상 대기가 좀 긴 편인데)


통증의학과를 찾아갔다가 얼결에 정신의학과로 넘겨진 나는 이 상황이 어이없고 한편으로는 좀 웃겼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람. 야인시대라는 드라마에서

'내가 고자라니!' 하고 외치는 유명한 장면이 있는데,

그 순간의 내 인생이 약간 그런 장면 같았다.


'내가 공황이라니!'


정신의학과 의사를 마주하고 내가 할 말이라곤···

여기저기 몸이 계속 아프다고 한 것. 가끔 숨을 쉬기 어렵다고 한 것. 기분이 어떠냐기에, 때로 우울하고 때로 좋지요, 답한 것.


의사가 한 질문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내가 상상했던

-정신의학과에서 나눌 거라고 생각한-대화는 아니었다. 감정에 대한 질문보다는 뭔가 이성적인, 그러니까 과학적인, 세르토닌이라는 물질이 안 나오고, 중추신경계가 어쩌고, 뭐 이런···그런 대화를 나누었던 것 같다. 나한테는 행복한 감정을 나오게 하는 뭔가가 없고, 그걸 나오게 하는 약을 줄 거라는 거였다.


그때의 내 감정을 설명하기에 '웃프다'라는 말보다 정확한 건 없을 것 같다.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그게, 정확한 증세를 알고 싶기는 했지만 알고 나니까 기정사실이 되어버려서 슬펐던 것 같다.


내가 '진짜로 아프다'는 게.


그리고 약을 받고 돌아가는 동안-이 시점에서는 결혼이 약 두 달가량 남아 있었다-(구) 남자친구한테 말해야 하나, 이걸 말하면 기겁하고 줄행랑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누구라도 환영할 만한···병은-그런 병은 애초에 없겠지만-어쨌든 이것 참···난감하네, 하는 생각.


사는 동안 거의 내내, 공황이랑 (간접적으로) 같이 살아온 나에게도 어려운 일인데 남자친구가 과연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싶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최대한 담담하게, 그리고 일상적인 이야기처럼 '내가 공황이래', 했더니 (구) 남자친구는 '내 여자친구가 공황이라니, 충격이야'라고 하고 그걸로 끝이었다.


···이게 끝이야? 충격이라고는 했지만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맹하고 귀여운 목소리라니.

그 뒤로도 공황에 대한 이야기를 주제로 삼아 무겁게 대화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적어도, 결혼하기 전까지는 그랬지(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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