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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역니은 Jul 22. 2023

나의 결혼일지 10 - 탈모에 관하여

탈모, 그건 저 혼자의 일입니다. 진짜입니다!


부부의 이야기를 다루는 결혼일지에

탈모에 관하여 썼다는 것은

확실히 나는 거기에 해당된다는 것이고 또···

(판사님,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엣헴, 어쨌든 이번 이야기는 탈모,

그것도 정수리 원형 탈모에 관한 이야기이다.


탈모를 처음 발견한 것도, 두 번째, 세 번째 발견한 것도 내가 아니었다. 정수리에 생기는 거니까 아무래도 내가 발견하기에는 어렵지. 단골미용실에서 알려주거나, 나보다 키가 큰 사람이 (굳이) 알려주거나 그랬다.

나만 알 수 있는 거면 차라리 나을 텐데 남이 알려줘야만 내가 알 수 있는 병이라니, 참.


탈모야말로 내가 얻은 병 중 가장 의외의 질환이었다. 왜냐고? 튼튼하고 숱 많은 내 머리카락은 내 얼마 안 되는 자랑거리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문근영 배우가 주연을 맡은 <신데렐라 언니>라는 드라마를 아시는지···, 그 드라마에는 방영 이후 십 년이 넘게 흐른 지금까지도 손꼽히는 몇 가지 명장면이 있다.


그중 문근영 배우가 도망치는 장면에서 그녀의 묶었던 머리가 풀리며 비단결처럼 매끈한 검은 머리가 출렁이는 장면은, 동생역을 맡은 배우 서우에게 '연습은 하니? 죽도록 하는 거야?'라고 호되게 꾸짖는, 시청자조차 주눅 들고 반성하게 만드는 칼 같은 딕션으로 유명한 그 장면과 함께 오래도록 회자되고 있다.


내 머리는, 바로 그런 머리였다고요.

그러거나 말거나, 휑뎅그러니하게 비어 가는 내 정수리와, 그리고 꼭 그 주변만 나기 시작한 흰머리는,

(나중에는 백반증 때문에 그렇다는 걸 알았지만, 참 별의별 병을 수집하고 다니네) 빈 정수리와 흰머리가 손잡고 목놓아 소리치는 것 같았다.


여기를 주목해 주십시오, 바로, 이곳이, 탈모로 비어 가고 있습니다!


더 이상 손 놓고 있을 수 없던 나는 다급하게 회사 근처에 탈모 클리닉을 찾아갔다. 부동산값 비싼 강남 한복판에, 이렇게 오래되어 보이는 외관의 클리닉이라면

효과가 좋아서 이제껏 살아남은 게 아닐까, 하는 근거 없고 순진한 생각이었다.


들어가자마자 바로 나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기는 했다. 데스크 뒤 벽 전체가 화려하고 큰 꽃무늬 벽지로 덮여 있고 관리실은 커튼으로 구분된 게 다인 것 같은 조잡한 인테리어에서 전문성을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머리관리'라는 걸 해주던 클리닉 원장이 자기가 직접 만들었다는 영양제 비슷한 뭔가를 과일로 만든 거라 먹어도 된다며 제 입에 직접 칙칙 뿌려 넣는 퍼포먼스까지 더해지면서, 애초에 없었던 신망은 더욱더 나락으로 떨어졌다······.


여자끼리 캠핑 가면 위험하지, 남자들이 다 목적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성희롱이야 뭐야 싶은 스몰토크를 시작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머리에 거품을 매단채로 뛰쳐나오고 싶은 심정이 되어 반드시 환불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위약금과 각종 영양제며 샴푸값을 치르고 나서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두 번째로 찾아간 클리닉은 체인점이 여러 군데 있는 곳으로 이번에야말로 믿을만하다고 생각했다.

그곳은 헤어클리닉보다는 태국의 어느 마사지 가게 같기도,  안락하고 편안한 서비스는 정말 좋았지만

이게 '치료'는 아니라는 건 탈모에 문외한인 나라도 알 수밖에 없었다.


그 헤어클리닉의 원장이 사람들이 병원에 갔다가 다시 오는 게 바로 우리 클리닉이다, 병원에 가면 악화된다,라는 말을 해서 내 의심을 샀던 것도 있다.

결국 이번에도, 비싼 위약금과 영양크림 같은 것들을 잔뜩 들고···클리닉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대체 왜 병원을 안 갔느냐면, 탈모를 치료하려면 그냥 피부과에 가면 된다는 걸 몰랐다. 그래서 어리숙하게 이 클리닉 저 클리닉 전전하며 정체 모를 샴푸나 떠안게 된 거였다.


이쯤 되자 탈모 명의를 찾아야겠다며 (드디어) 조사(검색)라는 걸 하기 시작했고, 어느 지역에 유명한 의사를 알게 되었다. 집에서 꽤 거리가 있지만 탈모만 나을 수 있다면 상관없을 것 같았다. 웨딩화보 찍기 위해 헤어메이크업을 받을 때 흑채를 뿌리던 심정이란···흑채로 박명수를 조롱해선 안된다!


(구) 남자친구는 집 주변에 있는 일반 병원에 가라고 나를 설득했다. 당신의 탈모는 그렇게 심각한 수준이 아니며 정기적으로 가기에 너무 멀고, 그 병원에서 처방해 주는 약이 너무 많은데 일일이 챙겨 먹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나는 (구) 남자친구에게 몹시 실망했다. 자기도 이

심정을 모를 리 없으면서 내 감정을 알아주지 않다니.

같이 가주지는 못할망정 날 말리다니?

어쨌든 (구) 남자친구의 따듯한 공감(?)에 설득된 나는 어느 대학병원을 가기로 했다.

(토막상식 : 대학병원은 제3병원이므로 초진 시 진단서가 필요하다) 지금 생각하면 대학병원에 간 것도 유난이다 싶지만.


대학병원은 기나긴 기다림과 다르게 허무할 만큼 처치가 간단했다. 피검사. 피검사에서 별다른 이상이 없다면, 정수리에 주사 한방. 그리고 바르는 약 처방. 끝.

반전이 있다면 탈모에는 정확한 원인도 치료도 없다는 것이었다. 의사는 특별히 권할 영양제나 음식도 없다고 했다.


탈모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극복해야 할 것은 '귀찮음'이었다. 아침저녁으로 매일, 머리 감고 약 바르는 게 큰 일이었다. 그 외로는, 정수리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가볍게 숱을 치고 길이를 줄였다.

그게 다였다. 클리닉에서 권했던 것처럼 요란법석한 과정은 없었다.


나는 잘 회복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그런데

···머리가 점점 더 많이 빠지고 휑해지는 것은 기분 탓일까? 아니다, 그건 실제 상황이었다.


(구) 남자친구는 '탈모 휴지기'에는 빠져야 할 머리카락이 빠르게 빠지기 때문에 당연한 현상이며, 이 과정이 지나면 새로 머리가 날 거라고 별 일 아니라고 위로해 줬다.


흰색으로 브리지 한 거 같다는 위로 같지 않은 위로를 받으며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머리를 뒤로 기댈 때마다 유독 차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으면 마음도 같이 서늘해졌다.


몇 개월이 지나고 머리가 조금씩 자라나기 시작했다!

잔디처럼 삐죽삐죽 짧게 자라는 머리를 보고

(구) 남자친구는 텔레토비 같다고, 귀엽다고 했다.


옆자리 과장님은 핀이나 왁스라도 써보는 건 어떻겠니진지하게 조언했다 (하지만 실제로 핀을 꼽고 오자 그냥 빼라···라고, 내가 회사에 시위하느라 일부러

그러고 다니는 줄 알았다고 한다).

나는 미래소년 코비나 머털도사가 된 기분이었다.

이런 머리로 결혼을 해야 하는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 뒤로도, 영양이 부족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오면 옳다구나, 하고 머리부터 빠진다.

제일 약한 신체부위에서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는데 하필 정수리가 그 부위였나 보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정수리가 알려주고 있는 셈이다(빌어먹을).


우리 부부는 지금도 비오틴을 열심히 챙겨 먹고 있다.

우리의 모근이 털을 열심히 붙잡아 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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