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도시 파리로 떠나는 신혼여행
결혼식이 끝났다면 떠나야 한다. 신혼여행은 인생에
(아마도) 한 번밖에 써먹을 수 없는 찬스다.
휴가철이 아닌 기간에 훌쩍, 길게 떠나도 책상을
빼겠다는 무시무시한 협박을 듣지 않을 수 있다
(농담 같아?).
여행을 갈 때 유형은 주로, 크게 두 타입으로 나뉘는 것 같다. 바로 관광지파와 휴양지파다. 나는 무조건 전자로, 내게 여행은 몰티즈가 되어 길고 긴 산책을 하는 것과 같다. 끊임없이 여기저기 탐색하고 참견하는 것. 지쳐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볼 건 다 봐야한다는 입장이다. 굳이 유명관광지가 아니어도 좋다.
남편은 휴양지파로 느긋하게 쉬고 경치를 즐기면서 맥주 한 잔, 와인 한 잔 하는 게 여행이랬다. 이렇게 되면 여행지도 갈리게 된다. 나는 하루에 이만 보는 우습다는 각오로 유럽을 가야한다고 주장했고, 남편은 하와이로 가서 여유를 즐기거나 스위스를 가서 광활한 대자연을 보고싶어 했다.
하와이를 가느니 제주도를 가고 말지! 라며 하와이를 우습게 봤던 것, 지금은 진심으로 후회하지만,
당시에는 어리석게도 바다 있고 야자수 있으면 모두 비슷해 보였다. 나는 물이 무서워 수영도 못하는데 한없이 모래성이나 짓고 있으란 말인가. 쉬는 것도 한두 시간이지 리조트가 좋으면 그게 뭐 어쩔 건데, 싶은 심정이어서 모든 휴양지를 반대했다.
지금은 하와이에 가서 포케를 먹는 꿈을 그린다.
남편의 너그러운 양보와 다음 여행은 꼭 스위스를 가자는 기약 없는 약속과 함께 프랑스 파리와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여행지가 정해졌다. 각각 5일씩, 10일간 떠나는 여행이었다.
파리와 바르셀로나 모두 처음 가보는 나라인 데다 거의 4년 만에 떠나는 해외여행이었다. 나는 가는 전날까지 여행지에서 입을 옷을 사러 다니며 TPO를 맞추기 위해 애썼다(매일 입을 옷이 다르다).
파리에서는 스트라이프 티셔츠 위에 빨간 카디건 두른 다음, 옆구리에 길쭉한 바게트 끼고서 빨간 플랫 신고 상큼 발랄하게 걸어 다녀야 하니까!
정신없는 출국날 동터오르는 아침, 우리는 인천공항 터미널로 가는 고속버스를 잡기 위해 뛰어야 했다.
남편은 저만치 앞서 내 캐리어까지 양손에 두 개를 끌고 달리고 있었다. 시간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던 나는 남편을 따라 뛰면서도 남편이 괜히 서두른다고 투덜거렸다(당연히 여유가 넉넉하지 않았다).
버스는 11월 초에도 땀을 흘리는 부부를 싣고 공항을 향해 달렸고, 우리는 곧 1 터미널에 내리느냐 2 터미널에 내리느냐 하는 기로에 섰다.
나는 전날 친구에게 '해외는 1 터미널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불분명한 출처), 정확한 근거 없이 1 터미널이라고 말했고 남편은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아내의 당당함에 끌려 1 터미널에 발을 디뎠다. 탑승터미널은 항공사에 따라 다른 것이지, 해외인지 국내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님을, 우리가 잘못 내렸다는 것을,
버스가 출발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2 터미널로 가는 시간이 꽤 걸리는데 당장 오는 버스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비행기를 놓쳐서 신혼여행을 못 가는 파격적인 에피소드를 만들고야 마는가 싶었지만, 운명은 다행히도 우리를 제시간에 2 터미널로 데려가 주었다.
드디어 한숨 돌리자고 들른 파리크루아상에서 남편은 자신이 애지중지 아끼던 아크테릭스 바람막이를 두고 비행기에 올랐고, 그것이 바로 파란만장한 신혼여행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였음을 누가 알았으랴······.
(친절하신 공항과 인천공항 파리크루아상 직원분들
덕분에 옷은 귀국 후에 무사히 찾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