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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역니은 Aug 03. 2023

나의 결혼일지 15-여행에 관하여(2)

지른 내마저 감격이어라(처음에만), 파리!



파리로 가는 열몇 시간 동안 나와 남편은 기내식을

받아먹으며 수리남을 정주행 했다. 편하게 자리에 앉아서 주는 밥이나 먹으며 프랑스를 가다니 이런 호사가 어디 있나 감탄하며. 비행기에서 보이는 야경이 궁금해서 자꾸 창문을 열어대는 내게 남편이 속삭인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갈 때는 해가 지지 않아.'



드골 공항에 도착한 뒤, 우리는 우버를 타고 처음 머물 숙소가 있는 파리 중심가로 향해 갔다. 아직 기운이 남아있는 남편이 기사와 대화하는 동안, 장시간의 비행에 기력이 쇠한 나는 창 밖으로 파리의 고속도로 풍경과 지나쳐가는 차들을 별 감상 없이 멀거니 구경했다. 서울이나 파리나, 고속도로는 다 비슷하구나.



도심으로 들어올수록 하늘은 어둑어둑해졌고 차에서 내릴 쯤에는 완전히 어둠이 내렸다. 숨을 크게 들이쉬면 이국 특유의 냄새가 났다. 우리를 지나치는 사람 중 동양인은 보이지 않았다. 길 한쪽에는 '아이 러브 파리'가 적힌 티셔츠나 스카프, 에펠탑 모양 장난감들을 파는 기념품 가게들이 즐비하고반대편 길로는 연두색 자전거를 탄 프랑스인들이 자동차보다 더 빨리 도로를 쌩쌩 내달리고 있었다. 드디어 우리가 파리에 왔음을 실감하여 약간 감격했다.



프랑스 파리의 숙소, 특히 주요 관광지 근처 숙소는

1박에 5-60만 원을 호가할 정도로 아주 비쌌다.

우리 1박 최대 예산은 50만 원이었다. 파리를 가는 게 중요한 거지, 굳이 비싼 숙소에 머물 필요 없어.

숙소에 오래돼서 삐걱거리며 열리는 낡은 나무 엘리베이터가 있는 것마저 만족스러웠다. 뭔지 모르지만 어쨌든 유럽감성이 느껴지는 것 같다. 창문을 열면 옆건물 벽이 크게 시야를 가로막고 있어서 상반신을 창문 밖으로 빼고 위를 올려다보지 않으면 하늘도 볼 수 없었지만···어쨌든, 파리면 됐지.



숙소에 짐을 풀고 남편과 간단한 야식을 사러 근처 슈퍼마켓을 갔다. 여행지에서 슈퍼마켓이나 시장을 구경하는 건 너무 재밌는 일이다! 여기 사람들한테는 흔하디 흔한 각종 과자며 빵, 과일, 각종 유제품과 올리브 절임 같은 반찬들이 왜 이렇게 새롭고 신기한가. 오뚜기 카레, 풀무원 냉면, 반찬코너에서 파는 창난젓이며 낙지젓에 감격하여 들떠서 사진을 찍고 있는 외국인, 을 떠올려본다(귀여운데?).



파리 슈퍼마켓에는 샐러드와 유제품 종류가 정말 다양했다. 한국은 샐러드 전문점이 아니고서야 일반 슈퍼에서 이렇게 다양한 샐러드를 팔지 않는다. 유제품도 이렇게 가짓수가 많지 않다. 유럽은 알레르기 분류를 중요하게 신경 써서 그런 걸까. 나는 아침으로 먹을 믹스베리맛 요구르트를, 남편은 맥주와 소시지빵을 사서 돌아왔다. 시차 적응을 해야 하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서 한국에 있는 친구들, 가족들과 열심히 연락하다가 겨우 잠들었다.


아침은 남편의 제안으로 맥모닝을 먹으러 맥도널드에 간다. 맥도널드 가는 길에 샤넬이며 디올, 여러 명품 브랜드샵 테라스가 열리고 있는 게 보인다. 나는 여행지에서 이렇게 현지인들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움직이는 게 좋다. 맥도널드에서 나는 계란과 베이컨이 들어간 맥머핀과 따듯한 라테를, 남편은 팬케이크와 망고주스를 주문했다. 영어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도 상관없다. 한국처럼 키오스크로 주문하면 되니까.



우리밖에 없는 2층으로 올라가 한적하게 창밖을 구경하며 아침을 즐긴다. 미화원이 청소를 하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보이는 풍경이 살아 움직이는 영화 그 자체라서 감격에 또 감격이다. 여행을 오면 길거리 쓰레기통을 봐도 감동스럽다. 심지어 길거리에 버려진 쓰레기며 코를 찌르는 지린내마저도 아, 나 이거 파리 여행을 다룬 책에서 읽었어, 라며 으쓱한다. 촌스러워도 어쩔 수 없다!



아침을 먹고 뛸르히 공원에서 산책을 한 뒤 다시 숙소로 돌아가 남편은 모자란 잠을 채우고 나 혼자 다시 밖으로 나온다. 여기까지 와서 잠을 두 번이나 자겠다니. 내 여행 사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여행지에서 혼자 발걸음 닿는 대로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므로 오히려 잘됐다고 여긴다.



아침 아홉 시쯤 됐을까, 이른 시간인데 벌써 카페테라스에 사람들이 앉아서 커피도 마시고 밥도 먹고 있다. 현지인이 많으면 맛집이라고 하지 않나. 현지인인지 관광객인지 모르지만 그 주장에 근거하여 좁은 크레페 가게에 들어가 남들 따라 초코바나나 크레페를 하나 산다. 포일에 감싸준 따듯한 크레페를 베어 먹으며 어제 본 기념품 가게를 따라 숙소로 돌아온다.



아침으로 먹은 맥모닝보다 훨씬 맛있다! 여행지에서의 맛집이란 원래 이렇게 '문득' 들어가서 '발견'하는 법이라고 맥모닝 먹으러 가자고 한 남편에게 의기양양하게 맛보라고 할 참이다(누텔라가 치덕치덕 발려 있는데 맛이 없을 수가 있나 하는 의문은 잠시 접어두자).



*** 번외 편 ***



여행 가기 바로 전날 갑자기 앞머리를 자르겠다며, 밤 아홉 시에 문을 연 유일한 미용실이었기에, 리뷰도 보지 않고 아무 곳이나 무턱대고 들어간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


머리를 잘라주다 말고 갑자기 본인 아버지 안부를 묻지 않는 통화를 하질 않나, 전기파리채를 들고 벌레를 잡지 않나(이 타이밍에서 싸한 기운을 느꼈으면 나가야 했다).


난 분명 뒷머리는 다듬기만, 앞머리는 너무 짧지 않게 잘라달라고 요청했지만 눈 깜짝할 새에 앞이고 뒤고 머리칼이 잘려나가 있었다(어어어? 저기요?).


내 평범한 긴 머리는 사라져 있었다. 김병지 헤어컷으로 유명한 바로 그 머리, 걸스온탑을 부르던 시절의 보아처럼, 야성미 넘치는 샤기컷(이 단어를 아는 90년 대생들은 손을 들어주소서)을 한 내가 거울 속에서 울먹이고 있었다. 분노한 손님을 두고 미용사는 자신만만하게 몇 센티 안 잘랐다며 자를 가져왔다(이건 또 무슨 퍼포먼스인가).


직접 재보고 나서야 자기가 너무 짧게 잘랐다며, 컨디션이 안 좋았던 것 같다며 사과한다. 바닥에서 머리를 주워드는 행동은 내 분노를 더욱 부채질했다. 그거 뭐, 도로 붙이시려는 거요? 이만하면 충분히 당했다 싶어 모든 것을 거부하며 가겠다고 한다. 미용사는 사과의 뜻으로 2천 원을 깎아주겠다고 했다.


그 얄팍한 할인에 가슴속에 천불이 일었지만, 그냥 빨리 떠나는 게 수라고 생각했다. 집으로 흐느끼며 돌아가는 길, 그 미용실에 대한 리뷰를 읽자 가관이다. 미용사가 다단계 권했어요···요구와 전혀 다르게 마음대로 잘라버렸어요···아아, 왜 이걸 이제야 읽는 건가. 그 뒤로는 처음 가는 미용실이라면 꼭 리뷰를 읽는다.



오늘 이야기의 결론, 미용실에 가기 전에는 추천을 받거나 리뷰를 꼼꼼히 읽고 여행 가기 바로 직전에 뭔가 바꿔보겠다고 설레발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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