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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역니은 Jul 31. 2023

나의 결혼일지 13 - 식장에 관하여

로망과 자본 그 사이의 고민



나는 어떤 결혼식을 만들고 싶은지 분명한 로망이 있었다. 파랗고 맑은 하늘, 푸들 꼬리 같은 구름, 키 큰 나무가 만들어주는 초록그늘, 적당히 따스한 해가 보이는, 그곳은 바로 한옥! 나는 한옥에서 하는 야외 웨딩을 원했다. 야외 웨딩에 관심 있는 사람, 알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얘는 참 바라는 것도 많다는 것을···.



야외웨딩은 당연히 일반 홀에서 치러지는 예식보다 손가는 일이 많다. 결혼에서 손 가는 일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돈이 더 들어간다는 뜻이기도 하고.

날씨 문제는···하늘의 뜻을 한낱 인간이 어찌 알랴. 이 문제 앞에서는 겸허해졌다. 무엇이든 받아들이리다.



한옥 야외 웨딩이 가능한 장소 중 영빈관, 삼청각, 두가헌은 워낙 유명하지만 웨딩 카페에서 공유된 견적을 보고 찾아가 보지도 않았다. 어차피 우리 예산에는 턱도 없는 비용이다. 우리가 잡아놓은 예산 내에서 알아봐야 한다(당연하지만 이때부터 좀 슬퍼지기 시작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예식을 진행하는 한옥 레스토랑으로 눈을 돌렸지만 내가 알아본 곳들은 소규모 웨딩만 가능했다. 양측 하객을 모두 합쳐 50-100명 이내로 맞춰야 한다. 하객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최소 150명은 계산해야 하는데. 원래 장소의 용도가 식당이니 케이터링은 제공되어도 플라워 장식, 음악 등 개인이 직접 업체와 컨택하며 준비해야 하는 곳도 있다.



코로나로 많은 예식장이 문을 닫았고 개중에는 후보에 있었던 한옥도, 언니가 결혼식을 올렸던 장소도 있었다(자매의 취향이란). 한옥이 아니라 야외 웨딩 조건이라도 충족하고 싶었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은 상황이라 예약은커녕 투어조차 쉽지 않았다. 도대체 한국 결혼율이 낮다는 것은 무엇을 근거로 하는가. 웨딩사업은 이렇게 번청 하는데(그렇게 보이는데).


나는 식장에 막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눈 깜박하면 지나갈 이벤트에 목매지 말고 그 비용을 다른데 쓰라고 조언하는 결혼 선배들의 말은 귓불도 스치지 못하고 사라졌다.


현실과 타협해야 했다. 자연 채광이 있고 우디하고 그리너리 한 느낌을 줄 수 있는 곳이라면 야외나 한옥이 아니어도 좋았다. (자기가 무슨 숲의 정령이라고 왜 이렇게 저런 것에 집착하는 건가)


남자친구는 여의도에 위치한 더파티움이라는 곳을 알아왔다. 이 친구가 이런 걸 보는 눈이 있었나? 그곳은 아름다웠다! 한쪽으로 자연 채광이 비치고, 화려한 조명이며 꽃장식이 눈부셨다. 바로 예약을 잡고 눈으로 보러 갔다.



조명 안 키면 이렇게



조명 키면 이렇게

** 사진 출처는 공홈에서 / 문제 시 삭제



실제로 본 그곳은 몹시 예쁘긴 했지만 나에겐 지나치게 화려한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자연 채광이 한쪽 벽을 통해서만 가능했고 창이 있는 곳도 커튼을 완전히 걷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는 어두운 홀에서 하이라이트 조명을 받으며 등장하고 싶지 않았다. 이 홀은 주인공들이 등장할 때 커튼이 자동으로 닫혔다 열리고 조명이 오락가락 내려오며 환하게 빛을 뿜어내서 되려 그런 웨딩에 최적화된 곳 같았다.


그래도, 그나마, 이런 마음으로 양해를 구하고 나 홀로 투어를 세 번 더 갔다(죄송합니다). 자꾸 봐서 정을 들이면 다르지 않을까 하는 대문자 F다운 생각이었다. 위약금을 물고 계약을 물리는 것으로 끝이 났지만.


지진부진한 과정에 지친 남자친구와 가족들의 독촉에 시달렸고 나조차도 초조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곳이 있었다. 토브헤세드! 사촌오빠가 작년에 결혼식을 올린 곳이다.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예식장으로 돌싱글즈 시즌1의 촬영지로도 이름을 알렸었다.




공홈 사진이


실물보다 못한데요

** 사진 출처는 공홈에서 / 문제 시 삭제


첫 번째 사진 속 저 거대한 문이 열리면서 신부가, 문 옆에 초록색 좁은 나선형 계단이 보일 텐데 거기서 신랑이 나온다. 반대여도 상관없고, 주로 그렇게 하더라. (구) 남자친구는 스타워즈 OST (단다다다 단단 다다다단)를 배경음으로 깔고 직접 쿠팡에서 구매한 검은색 망토를 두르고 나와 주목을 받았고, 다스베이더 흉내를 내며 망토를 풀어헤쳐 바닥에 집어던지는 퍼포먼스까지 보여줬는데 사람들은 그게 내가 시킨 건 줄 알고 역시 네 신랑이더라고 말해서 몹시 억울했다.



나무 대신 나무 테이블이 있고(?), 꽃도 적당히 있고, 무엇보다도 오전에는 해가 사방에서 쏟아지고, 층고가 높아 개방감이 좋고! 더파티움보다 가격은 더 비쌌지만 난 이미 이곳에 마음을 빼았겼거니와 더 이상 다른 대안도 없었다.



다른 문제가 있다면, 토브헤세드에는 하루 3타임이 열리는데(오전 11시, 오후 3시, 저녁 6시 반 이런 식이다) 내가 원하는 건 오전이지만 오전에는 비용이 확 올라간다는 것. 그리고 오전에 결혼식 하면 스태프(헤어, 메이크업 등) 분들이 새벽부터 일하는 만큼, 나가는 비용도 추가금액이 붙는다. 내가 이른 새벽부터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도 문제였다. 눈물을 머금고 결국 저녁 6시 반 타임으로 계약했다. 트와일라잇 결혼식 같은 낭만적인 나이트웨딩이 될 거라 꿈꾸며.



*** 개인적으로 느낀 토브헤세드 특이점



1. 결혼 당사자들만이 참여할 수 있는 오픈카톡방이 있다.

  - 견적서나 계약서로 증빙하지 못하면 강퇴당하다. 내가 있을 당시에만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뭐랄까, 무척 전우애가 좋다. 청첩장, 드레스 준비, 다이어트, 각종 시술 등등 다양한 방법을 서로 열심히 공유하며 친목을 쌓는다. 하루에 온 메시지가 300+ 이상이 기본일 정도. 각 분야전문가가 갑자기 튀어나오기도 한다(법률, 디자인). 심지어 번개 정모도 하더라. 앞서 전우애가 좋다고 했는데 왜냐하면, 식장과 상대로 똘똘 뭉쳐 이런 건 개선해 달라 싸우기도 하기 때문이다.




2. 플라워 미팅과 결혼식 리허설이 따로 있다.

- 다른 결혼식장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플라워 미팅을 따로 한다. 플라워 업체가 정해져 있는데 거기랑 어떤 분위기의 어떤 등급을 원하는지 미팅을 한다 (내가 원하던 대로 해주지는 않았다)(그럼 미팅을 왜 했는가)(내가 빼달라고 했던 큰 백합이 여기저기 존재감을 내뿜음). 종종 어떤 신부들은 원한다고 했던 색깔과 분위기의 꽃다발을 받던데 나는 안 줬다(서운해라). 리허설도 일정을 잡아 미리 한다. 신랑, 신부가 미리 결혼식의 처음부터 끝까지 예행연습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오늘 이야기의 결론은, 모두 가질 수 있는 완벽한 결혼식장이란 좀처럼 찾기 힘들 테니 원하는 바의 우선순위가 충족되는 곳이 있다면 위약금을 물 땐 물더라도 일단 계약은 해두시길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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