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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역니은 Jul 31. 2023

나의 결혼일지 12-예식에 관하여

결혼식, 쉬울 줄 알았니?



결혼식은 신부와 신랑에게 큰 노동이다.


신부는 허리를 꽉 틀어쥐는 코르셋에 조이고, 드레스를 풍성한 모양으로 유지시키기 위한 철제 고정장치를 허리에 단 채로, 무려 몇 세기를 거슬러 올라가 이 옷차림이 일상이던 중세 유럽의 여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녀들의 고통과, 심지어 단명을 이해한다.



신랑은 딱딱한 구두를 구르며 바짝 긴장해서 하객을 맞이한다. 난생처음 발라보는 비비 때문에 피부가 간지럽고 왁스 잔뜩 바른 머리도 불편하다. 재킷과 나비넥타이까지 받쳐 입은 정장 차림이 어색하고 더워서 땀이 뻘뻘 난다. (이 부분에서 신랑의 고충을 상상해서 쓰느라 약간의 애를 먹었다)



결혼식이 거행되는 동안 눈 똑바로 뜨고 환하게 웃으리라, 카메라를 의식하고 다진 결의를 너무 잘 지킨 탓일까? 회사 사람 A에게는 '그렇게 크게 웃는 신부는 처음 봤어'라는 이야기를, 또 다른 회사 사람 B에게는 '본 중 가장 행복해 보이더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는 게 아니었지. 따듯한 햇살처럼 적당히 환하게 웃었어야 했는데. 이건 폭염 수준의 환한 미소다.

500만 원을 들여 교정에 성공한 가지런한 치아가 아래위로 이렇게까지 잘 보일 일인가. 입 다물고 은은하게 미소 짓는 사진을 찾기 힘든 내 결혼식 사진은

소파 밑에서 먼지를 덮고 고이 잠자고 있다.



결혼식이 진행되는 동안 오로지 웃는 것에만 집중했기 때문에 여유가 없었다. 행진하는 동안 양옆을 보며 인사하고 손을 흔든 건···철저한 리허설과 교육 덕분일 뿐. 누가 어디 있어서 그걸 인지하고 알아보며 반가워했던 건 아니다. 그래서 결혼식이 어땠느냐 누가 묻는다면, '감정'을 느낄 새가 없었기 때문에 감동적이었어, 기뻤어 등등 어떤 '감정'을 이야기하기 좀 어렵다. 좋기는 했지. 그런데···기억이 잘 안나.



본식 격인 1부가 끝이 나고, 옷을 갈아입고 하객에게 인사드리러 다니는 시간, 2부가 열린다. 원래 2부에는 케이크 커팅이나 축배 등 하객과 함께하는 순서가 서비스로 있었는데 1부가 끝나고 2부 드레스로 갈아입으러 간 나는 쪽방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모든 무게가 허리로 몰려오는 것처럼 허리가 너무 아팠다!



신랑의 부축을 받아 겨우 밖으로 나간 나는 2부 예식 등장을 거절하고 또다시 건치 미소를 장착한 채 바로 하객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하러 갔다. 2부 예식 세리머니는 하지 않겠다고 했던 나의 선견지명을 칭찬했다.

이 상태로 세리머니까지 했다면···끔찍하다.



하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러 다니는 동안, 내 가까운 지인들을 만나면 그들 사이에 끼어 잠시 숨을 돌렸다. 지인들이 퍼온 뷔페 음식을 포크로 찍어먹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얘들아 와줘서 정말 고마워, 먹을만하니? 냠냠, 이거 뭐니? 냠냠, 나 좀 죽을 것 같다. 아니야, 마카롱은 별로 안 좋아해. 냠냠. 많이 먹고 가렴. 어머, 쟤 양손에 술병을 끼고 돌아다니네···.



결혼식이 다 끝나고 식장 측에서 뷔페 음식을 조금씩 담아서 한상을 새로 마련해 주었다. 드디어 코르셋마저 벗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자리에 앉았지만 뭘 먹을 수가 없었다.


숟가락 들 힘도 없었고 음식을 보니 속이 메슥거려서 몇 입 끼적대다가 신랑에게 넌 계속 먹어라, 하고 식사를 그만뒀다. 너무 지쳐서 눈물이 절로 나는 바람에 신랑이 식사하는 동안 테이블에 엎드려 숨을 골랐다.


이렇게 결혼식은 끝이 났다. 우리는 서로의 어깨와 허리를 부여잡고 집으로 돌아갔다.


신혼여행을 바로 떠나지 않고 회사를 며칠 출근하다가 출국하기로 한 것은 많은 사람들의 의문을 샀을 망정(신혼여행 안 가세요?) 옳은 선택이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식이 끝나고 바로 떠났다면 타국에서 병원 신세를 졌을 것이 분명하다.


이번 이야기의 결론은, 신부가 코르셋과 철제 튤을 착용할 거라면 결혼 전 코어 운동을 든든히 해놓도록 하세요.


2부 드레스는 되도록 편한 것이 좋겠고. 신혼여행은 좀간격을 두고, 쉬었다 떠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신랑에게는 할 말이 많이 없어서 미안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결혼식은 내돈내산 중노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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