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사랑한다
** 신혼여행기가 모두 끝난 것은 아니지만 줄곧 그 이야기만 읽는 것은 지루할 수 있으므로 잠깐 곁다리로 새기로 한다.
나는 남편이랑 같은 침대에서 한 이불을 덮고 잔다. 잠귀가 밝아 소음에 쉽게 깨는 남편은 싱글침대를 붙여 쓰고 각자 이불 한 채씩 가지기를 은근히 바랐지만···. 어찌나 귀가 밝은지 택배가 왔다며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문으로 달려가기도 하고(과연 배송이 와있었다), 이른 새벽에 어디서 불이 난 같다며 킁킁대더니 또 과연, 근처에 소규모이긴 하나 화재가 있었다. 나는 남편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부했다. 부부란 한 침대에서 발 비비며 손 잡고 자야 한다고, 그것만큼은 자율성을 줄 수 없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내 주장은 자못 비합리적으로 비칠 수 있으나, 남편의 곁에 조금이라도 더 다가가고 싶은, 떨어지고 싶지 않은 애절한 마음임을 이해해 준다면 좋겠다.
결혼 전 우리는 서로 충분한 거리를 두고서, 신체 부위 중 무엇도 겹치지 않게 냉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각자 이불 끝과 끝을 부여잡고 잠들었다. (그런 와중에도 내가 이불을 빼앗아가곤 했으므로 그의 주장을 십분 이해하는 바이나) 남편은-멀쩡히 산사람 두고 이런 말 하기 뭐 하지만-마치 고대 이집트의 미라처럼 양손을 가슴 위에 곱게 포갠 뒤 천장을 보고 가지런히 누워 새근새근 잠들어 내게 손 끝 하나, 발 끝 하나 허용하지 않았다. 그의 수면은 사뭇 경건하기까지 했다. 나는 그의 옆구리 한 번 찔러볼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불만을 못내 감추며 씨근덕대다가 잠이 들곤 했으므로, 연애시절 손가락 하나 허락하지 않았던 그 각박한 잠자리가 나에게는 약간 한처럼 남았다고 해야 할까······.
나는 신체 부위 중 어디 하나라도 남편에게 걸쳐놓고 자려고 하고, 남편은 그런 나를 천천히 풀어내고 서서히 멀어지려다 잡혀서 다시 말려 들어오고, 감겼다 풀었다 그렇게 실랑이하기를 반복하다가, 서로를 (내가 그를) 놔주고 전처럼 (그가) 멀어져 가면 본격적으로 자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남편은 오스카 트로피 모양을 하고, 양팔을 번쩍 든 채 벽에 찰싹 달라붙어서 자고 있다. 내가 그렇게 벽에 붙어 잘 거면 넓은 침대가 무슨 소용인가 말하면, 남편은 밤새 내게 당한 일들을 나열하며 하소연하기 시작한다. 어젯밤도 내가 그를 구석으로 밀어붙였으며, 이불은 모조리 빼앗아갔고-빼앗은 뒤에는 후다닥 일어나 덮어준 다음 도로 빼앗기를 반복-, 드르렁드르렁 코를 갈고, 이를 박박 갈았으며, 내 머리카락을 마구 뽑아대는가 하면 난데없는 발차기로 그의 명치를 가격했다고 한다(젠틀하고 쿨하게 바로 사과했다고 한다).
나는 한사코 그의 주장을 도리질 치며 부정했다. 나는 한평생 코를 골거나 이를 갈며 잔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부친은 내가 자는 모습을 보면, 어쩜 그리 네 모친과 똑같은 모양으로 자니···기절한 듯이 자서 누가 업어가도 모르겠더라,라고 평했을 뿐이고 종종 함께 자던 모친은 내가 아주 얌전하게 잔다고 후한 점수를 매겨주었기 때문이다. 남편이 내가 자는 모습을 휴대폰으로 녹화한 뒤 보여주고 나서야 내 실체를 직면했다. 정말 내가 이렇게 잔다고? 믿을 수 없었다···잠자는 숲 속의 공주처럼은 아니어도(아, 그녀는 정말 기절해서 얌전히 잘 수밖에 없긴 했지)···이렇게 온갖 난리부루스를 추며 잘 줄은 몰랐건만. 압권은 머리를 빗어내며 뽑다가 남편이 제지하자 허공에 그대로 멈춰버린 팔···마치 살풀이라도 하는 양, 황진이에 빙의해서 우아하게 허공을 가르는 팔······.
내게는 모두 기억에 없거나 멀거니 흐릿하게 남아있는 일이다. 위의 일 중 의도적으로 일으킨 물의는 무엇도 없음을 강조하며, 겨울이불은 이미 사버린 뒤라-우리는 9월 말에 결혼했다-여름이불은 한 채씩 장만해도 좋다고 했다. 나도 양심이 있지···. 겨울에 이어 여름까지 그의 잠을 방해하려는 마음은 결코 없었지만, 우리는 오늘도 한 침대에서 한 이불을 덮고 잘 것이다(결국 여름이불도 한 장만 샀기 때문이며 여기에 내 입김은 한숨도 들어가지 않았음을 꼭 밝혀두고 싶다).
오늘의 결론 : ···쩝,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