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견례와 피부에 관하여
전 글에서 밝힌 것처럼, 신혼여행기가 너무 길어 지루할 수 있으니 또다시 곁길로 새보려고 한다. 결혼의 기타 사항을 모아 만든, 보고서로 치자면 비고란에 있을법한, 모든 자투리들을 모아 만든, 결혼 조각보 같은 글이랄까.
첫 번째 자투리 주제는 '만남'이다. 나와 남편을 무럭무럭 길러주신 양가 양육자 어른들의 '만남',
이른바 상견례! 상견례를 미리 상상해 본 것만으로도 어색함으로 장이 배배 꼬이는 기분이 들었다.
그거 꼭 해야 할까···, 라고 은근한 기대를 담아 부모님들은 결혼식장에서 처음 만나서 인사하는 건 어떨까?라고 남자친구에게 다소 파격적인 제안을 하기도 했다(물론 대차게 거절당했다).
나는 일반적으로 예식의 시작을 알리는 '양가 어머니 화촉점화'도 식순에서 지우고, 부모님 입장도 각자 커플끼리 하는 것으로 대본을 바꾼 참이었다. (참 유난스럽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친하지도 않은 분들끼리 어색하게 손잡고 입장해서 무엇하는가)
반드시 만나야 한다면, 만남의 시간을 최소한 하겠다는 목표로 상견례 준비를 했다. 시간을 최소화하려면? 식사 대신 티타임을 가지는 거다! 일반 카페에서 스터디룸을 예약하는 건 분위기가 안 나고, 미리 예약하지 않고 분위기 좋은 카페를 갔다가 웨이팅에 걸리면···어객하게 대로변에서 자리가 나기를 기다려야 한다면.
아아, 상상만으로도 무시무시하다.
그런 위험을 감수할 순 없어. 호텔 로비에서 우아하게 커피 한잔 하는 건 어떨까. 한 잔의 18,000원이라는 고가에 미련 가지지 말고 커피 한잔 비우는 대로 리필 없이 쿨하게 자리를 뜨는 거야. 나의 선택은 창가로 푸릇푸릇한 첨구단이 보이는 조선웨스틴호텔 로비에서의 애프터눈티타임. 3단 트레이에는 커피에 곁들일 마카롱, 조각케이크, 가볍게 요기할 수 있는 샌드위치도 담겨 있으니 식사와 후식까지 한 번에 잡는 셈이야.
시간제한이 2시간이니까 더 있고 싶지만 더 있을 수도 없지···아유, 더 얘기 나누고 싶은데 시간이 다 돼서, 이만 헤어져야겠습니다. 아, 이렇게 호들갑 떨며 준비해서 그 상견례 성공적으로 마치셨느냐고 물으신다면, 그런 줄 알고 흡족하게 웃으며 끝냈다가 그날 밤 뜨거운 눈물을 쏟았습니다만······.
두 번째 자투리 주제는 '피부'이다. 나는 남편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딱히 요구하는 게 없다(해봤자 들을 리가···). 일관되고 끈질기게 요구하고 강요하며 집착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선크림을 바르라는 것이다. 선크림을 바르면 끈적하다느니 눈이 따갑다느니 하는 핑계로 빠져나가려고 하면, 비건 선크림을 써봐, 이건 순한 거라 괜찮을 거야라고 그를 달래 본다. 정 바르기가 싫으면 모자나 마스크, 양산이라도 써.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동생에게 SF60짜리 선크림을 구해달라 해볼까 봐, 거긴 해가 뜨거워서 자외선 차단이 강력한 선크림도 팔거야, 라고 말하는 그를 보며 이를 앙다물며 코웃음 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있는그느즈드르브르즈블(있는 거나 제대로 발라라 제발)····.
나는 태양을 피하고 싶다. 자외선 때문이라기보다는···기미와 잡티를 피하고 싶은 마음. 그보다 더, 얼굴이 타는 것은 내게 트라우마를 불러일으킨다. 못된 어린애들이 피부가 검은 편이었던 어린 나를 아주 모욕적인 말로, 줄기차게 놀리곤 했기 때문이다-조나단이 아니면 감히 할 수 없는 말이라고-. 검은 피부는 놀림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얼굴색에 관련된 각종 별명을 거치며 경험한 이후로, 내가 내 손으로 선크림을 사바를 수 있는 나이가 된 후에는 한 줄기 햇빛조차 허락하지 않으려는 집착으로 이어졌다.
이제는 집착을 놓으려고 해도 백반증 때문에 놓을 수 없게 되었지만. 아, 백반증이란 흰 반점이 피부에 나타나는 피부질환인데 모양도, 생기는 부위도 가지각색이다. 나는 백반증 치료로 유명한 우태하/한승경 피부과 본점을 다니며 엑시머 레이저 치료를 받고 있다. 레이저 치료는 일주일에 한 번, 연고는 아침저녁으로 바르랬는데 병원도 빠지고 연고도 잘 바르지 않아서 좀 악화되었다(그러면서 남편한테 선크림을 바르라고 해?). 처방을 꾸준히 잘 따르고, 나타난 부위가 크지 않는다면 눈에 띄게 차도가 있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백반증에 완치는 없다고 한다···의사에게 그에 대해 물었더니, 잘 자고 잘 먹고 잘 쉬어야 한다는, 만고의 진리이자 현대인에게는 불가능하다시피 한 처방을 받아 허무했던 적도 있다.
오늘의 결론 :
상견례건 어디에서건 선크림을 잘 바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