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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Feb 08. 2022

회사에 뼈를 묻겠다더니 프리워커가 되었다.

독립 디자이너가 된 이유

제 꿈은 2인자입니다!

누군가 내 꿈을 물어보면 회사의 2인자까지 오르는 거라고 말했다. 1인자는 되고 싶지 않았고, 오래 회사에 다니다 무사히 퇴직하고 싶었다. 모든 책임을 지는 최종 보스의 자리는 나에게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쫄보이고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하여 회사와 직원들의 밥줄을 책임지는 건 상상하기 싫었다. 내 주제에 어떻게 좋은 리더가 될 수 있나.. 조력자가 내게 알맞는 역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회사에 뼈를 묻을 겁니다.”


진심이 가득담긴 우스갯소리를 자주했던 사원 황다움이었다. 그래도 야망이 없진 않아서 2인자까진 오르자는게 내 목표였다.



그러던 내가 프리워커가 되었다.

때는 2020년 봄, 코로나 19가 터지고 세상이 고요해졌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연일 치솟는 확진자수에 걱정하며 집과 회사를 오가는 일이었다. 사람들의 외부활동이 중단되고, 당시 다니던 회사의 일도 뚝 끊겼다. 업무가 없어 컴퓨터를 켜놓고 마우스가 방황하는 날들이 늘어났다. 회사가 휘청였다.


그러던 중 내게 프리랜서로 앨범 디자인 의뢰가 들어왔다.


“일도 들어오니 이참에 잠깐 프리로 일하다가 포트폴리오 쌓아서 이직하는 건 어때?”


주변에서 현실적인 조언들을 해주었다. 상황상 계속 회사를 다니는게 회사에게도 나에게도 좋을게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월급 루팡은  체질이 아니고, 재밌고 보람된 작업을 하고 싶었다. 당시 내게 프리워커는 잠깐 스치는 경유역이었다. 이참에 쉬면서 작업하다가  본래 도착역인 회사로 이직하는게 목표였다.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퇴사를 했다.



기회로 가득한 회사 밖

김뽐므의 [여인에게] 앨범 작업을 시작으로 프리 디자이너의 삶이 시작되었다. 컨펌받을 사수가 없으니 디자인 퀄리티가 떨어지는 건 아닐까하는 걱정도 했었다. 하지만 걱정은 기우였다. 눈치보지 않고 마음껏 음악을 들으며 내가 생각하는대로 시안을 디자인했다. 클라이언트와 직접 소통하며 앨범 한장이 완성되는 과정은 그야말로 꿀이었다. 일이 이렇게 재밌을수가! 희열이 넘쳤고, 매순간 짜릿했다. 게다가 결과물도 만족스러웠다.

내가 프리가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주변에서 하나, 둘 브랜딩 의뢰가 들어왔다. 또한 뽐므의 앨범 작업으로 다른 아티스트들의 앨범 의뢰도 이어졌다. 직장을 나오면 일할 수 없고, 돈을 벌 수 없을 거라는 내 예상과 달리 세상은 기회로 가득했다. 프리워커가 되지 않았다면 오지 않았을 기회를 프리워커가 되었기에 잡았다. 원래 기회를 내 것으로 만드는 것 하나는 자신있었다.  


퇴사한 회사에서는 내게 프리로 일을 주기 시작했다. 회사에선 정직원을 쓰지 않고 외주를 주는 것이 일의 진행과 결과 모두 훨씬 낫다고 했다. 세상이 변하고 있었다. 아니, 이미 변한 세상을 나는 코로나가 터지고, 회사를 나오고 나서야 체감하게 된 것이다. 퇴사한 회사와 난 새로운 방법으로 상생했다.


요즘 그 회사는 일이 매우 많다. 코로나로 위기를 겪었지만 그 위기를 견디고 지나고 나니 좋은 날들이 펼쳐졌다. 위기의 때에 조금만 견디시길, 그 위기가 전부가 아님을, 위기라고 느끼는 이들의 어깨를 토닥이고 싶다.



나를 책임지는 건 오로지 나

프리워커가 되면서 가장 큰 변화는 능동적인 하루를 산다는 것이었다. 출퇴근이 없어지니 자고 싶은 시간에 자고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났다. 출근길에 다급하게 아침마다 카페에 들러 사가던 아메리카노 대신 모닝 커피를 직접 내려먹었다. 12시면 꽉 들어차는 식당이 아닌 집에서 내가 먹을 점심을 직접 요리했다. 오늘은 어떤 원두로 커피를 내릴지, 점심으로 뭘 해먹을지 매일의 선택을 기대하며 아침에 일어났다. 매일 내 방을 직접 청소했고, 빨래를 정리했다. 일상의 매순간을 내가 만들었고 내가 결정했다.  

과거의 난 책임지기가 두렵다는 이유로 회사의 그늘 아래에 오래 머물고 싶었다. 하지만 회사 밖을 나와 자유롭게 일하고 보니 난 매우 주체적인 사람이었다. 또한 내 인생을 잘 책임지며 살아가고 있었다. 내가 나를 책임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내 책임감은 충분히 증명되는 것 아닌가.


우린 회사의 명함으로, 연봉으로, 집과 차로 증명받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것들이 잠깐의 내 소속과 소유는 될 수 있어도 내 전부가 아니며, 나 자체를 나타내지 못한다. 나는 무엇으로 증명되고 누가 책임지는가는 내가 결정한다. 나의 주인은 나이고, 내 삶의 최고 책임자는 오로지 나뿐이다.


그렇게 난 사업자를 내고 나의 대표가 되었다. 다움웍스로 독립하고, 스테이셔너리 브랜드 게렌하푸를 런칭하고, 지금은 작업실을 커뮤니티로 운영할 준비를 하고 있다. 나를 책임지고, 내 일을 책임지고, 내  주변 사람들 또한 이제 책임질 수 있다.

다움웍스 :  www.dauum.works



당연함은 깨야 할 편견

직장은 나에게 언제나 당연한 곳이었다. 직장 외의 다른 가능성은 고려해보지 않았다. 내게 회사는 돈받고 다니는 학원이었다. 배움이 가득한 곳, 배워도 배워도 또 다른 배움이 펼쳐지는 곳. 동료가 있고, 선배가 있으니 든든한 곳. 그런 회사를 다니지 않는다는건 인생 경로에 없었다.


그런 나의 ‘당연히 회사에 다녀야한다’는 편견은 완전히 산산조각났다. 회사 밖은 가능성으로 가득했고, 자유와 주체성의 행복이 넘쳤다. 퇴사라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행복한 프리워커로 살지 못했을 것이다. 당연하다는 이유로 우리를 한 자리에 머물게 하는 편견이 난무하고 있다. 인생에 한번도 의심해보지 않은 기준, 프레임이 있다면 한번쯤은 깨보자.


지금은 경쟁하지 않고 행복하게 일하고 있다. 경쟁을 벗어나 나답게 살아가는 프리워커의 생각들을 하나씩 기록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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