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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Mar 07. 2022

경쟁하지 않고 행복하게 일하기

습관이된 경쟁을 버려간 고군분투기

K양 행복해지고 싶죠? 행복하기가 쉬운 줄 아십니까? 망설이고 주저하고 눈치 보고 그렇게 해서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노력하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는 겁니다. 

은호야.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다. 네가 행복해져야만 이 세상도 행복해진단다. 하느님한테는 내가 같이 용서를 빌어주마. 행복해져라 은호야.

드라마 <연애시대> 중

내 인생 드라마 중 하나인 연애시대에서 극중 아빠(김갑수 배우)가 딸 은호(손예진 배우)에게 하는 대사이다. 이 대사가 실제 우리 아빠가 나에게 하는 말인 것 같아 저 장면을 보며 눈물을 펑펑 흘렸다. (김갑수 배우님의 외모가 우리 아빠와 닮기도 했고) 행복이란 단어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화두 되었다. 살면서 내 행복을 위해 노력했던 적이 있었나? 내 행복이 뭐였지? 행복이란 외딴섬에 홀로 버려진 것처럼 나의 행복은 막막하고 낯설었다. 


경쟁해야 했던 학창시절

난 인생을 정말 열심히 노력하며 살고 있었다. 남들보다 출발선이 한참 먼 곳에 있어 노력하지 않으면 금방 뒤처졌기에 부단히 노력했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했고, 대학에 가서는 장학금을 받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다. 매번 성적 장학금을 받은 건 아니었다. 워낙 집안 형편이 어렵다 보니 가난이 우선순위가 되는 장학금들이 몇몇 있었고, 그런 장학금에 예외 없이 해당이 되는 가난 덕(?)에 등록금을 모두 메울 수 있었다. 장학금을 받는다고 해서 형편이 여유로워지거나 남들과 동등한 출발선에 오르는 건 아니었다.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쉬지 않고 알바를 했다. 


여대의 특성상 미팅을 많이 한다. 동기들의 대화에서 이번 학기에 몇 개의 미팅을 나갔다느니, 지난주엔 어느 학교랑, 이번 주는 저기 학교랑, 미팅에서 만난 애랑 카톡 중이야, 등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난 그 대화에 공감할 수 없었다. 미팅에 나갈 생각을 해보지도 않았다. 과제와 알바로도 부족한 시간이라 미팅은 내 선택지에 있지 않았다. 동기들이 나가서 노는 동안 내가 열심히 공부하면 성적 장학금을 노려볼 수 있겠다 싶었다. 얘들아 더 많이 놀아줘.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동기들을 학점으로 이겨야만 했다. 그래야 등록금 고지서를 받고 좌절하지 않을 수 있기에, 친구들을 꼭 이겨야만 했다.


또 경쟁해야 했던 회사 생활

회사에도 이겨야 할 사람들이 많았다. 상사의 컨펌과 동료들의 칭찬을 받기 위해, 클라이언트의 만족을 위해 이 세상 모든 디자이너들을 이겨야 했다. 당장 옆에 있는 직원들보다 잘해야 했고, 핀터레스트에서 꼿은 레퍼런스보다 좋은 시안을 만들어야 했기에 모든 레퍼런스들을 만든 디자이너들보다 잘해야 했다. 꼭 실력 있는 디자이너가 되어 유명해지고 싶었다. 무엇보다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내가 매번 질 수밖에 없는 돈을 이기고 싶었다.

그런데 연애시대의 저 대사를 듣고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라니. 행복은 내가 한 번도 노력해 보지 않은 대상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나의 노력들은 어떤 의미였을까. 


당장 눈앞에 들이닥친 가난을 대처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수많은 경쟁자들을 이기기 위해 노력했고, 그 노력에 내 꿈, 나의 행복들을 아무렇지 않게 묵살했다. 그저 타인을 이겨 인정받는 것만이 내 목표였다. 하지만 남들보다 뒤처진다 싶으면 금세 실망하고 쉽게 지쳤다. 그럴 때마다 나의 나약함을 질책했다. 이 정도도 못 견디면 어떡해, 전 세계에 네가 이겨야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나는 나를 탓했지 내 목표 설정이 잘못되었음을 알지 못했다. 


프리워커가 되면서 연애시대의 저 장면을 자주 다시 봤다. 진정한 내 행복을 위해 노력해 보자고 다짐했다. 행복한 이기주의자가 되어 진짜 행복한 내가 되고 싶었다. 이를 위해 타인과 경쟁하지 않고 행복하게 일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타인의 인정이 아닌 스스로 만족하고 즐겁게 살아 보고자 했다.


지독한 경쟁자의 등장

작년에는 누군가를 이기는 것이 아닌 내가 이루고 싶은 것들을 목표로 세웠다. 연간 매출 OO, 매달 평균 매출 OO, 연간 O개 서체 런칭 등의 목표로 2021년의 다이어리 첫 장을 시작했다. 그리고 작년 가을에 모든 목표들을 이루었다. 그런데 목표를 달성했음에도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성취감과 보람, 나 자신에 대한 기특함이 따라올 줄 알았는데 감흥이 전혀 없었다. 목표를 어렵지 않게 달성하여 희열이 모자란다고 생각했다. 목표를 너무 낮게 잡았나 싶어 연말까지 남은 기간 내에 이룰 목표들로 상향 조정했다. 그렇게 난 또 새로운 경쟁자를 설정했다. 내 지독한 라이벌, 어제의 나.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보다 더 똑똑하고 잘나기를 원했다. 그렇게 나는 내일이 되면 또 찾아올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경쟁자, 어제의 나와 경쟁을 벌였다.


아, 무엇을 위한 경쟁이란 말인가. 매일 경쟁이 끝내지 않았다. 오늘이 되면 어제의 나는 도태된 과거로 남는다. 어제의 스코어는 아침이 되면 사라지고 다시 새로운 게임이 시작됐다. 매일 새로운 게임을 뛰고 있으니 체력과 인내가 금방 바닥이 날 수밖에 없었다. 어제의 내가 훌륭해도 쉽게 만족하지 못했다. 쳇바퀴에 스스로 올라타 끝없는 질주를 하고 있음에도 인지하지 못했다. 습관이 된 경쟁을 타인과 하지 않으니 나와 벌이고 있는 모양이었다. 내 모양이 경쟁이라니. 경쟁처럼 생긴 건 당시의 나같이 생긴 걸 말한다. 뾰족한 정신같은 뾰족한 눈빛, 푸석한 마음처럼 푸석한 표정. 황경쟁은 모나게 생겼었다. 


등수로 실력이 매겨지는 학창 시절을 보냈고, 경쟁 사회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며 살아온 대한민국 청년이다 보니 내 몹쓸 버릇을 고치는 건 정말 쉽지 않았다. 미디어에서 본 수많은 사람들을 넘어서고 싶었다. 저 사람은 저렇게 잘 먹고 잘 사는데, 나는 왜 아직도 이 모양이지? 싸워보지도 않은 상대에게 내가 먼저 졌다. 경쟁 안 하기를 실패하는 자신에게 낭패감이 몰려왔고, 어제의 나를 이겨보겠다고 악을 쓰는 모습에 실망과 현타가 밀려왔다. 그럴 때면 일기장에 온갖 성질을 부렸다. 감정을 토해내듯 페이지를 가득 채워 적어가다 보면 체증이 내려갔다. 다행이도 내 일기들의 마지막은 희망적인 내용으로 끝났다. 괜찮아, 잘하고 있어,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그럼 된 거야, 언젠가 다 결실 맺을 날이 올 거야. 일기를 쓰며 나를 다독였고 다시 내 행복을 위해 노력할 힘을 얻었다.

빼곡히 써 내려가던 화풀이 일기들이 점점 짧아지고 빈도가 줄었다. 감정을 더 이상 토로하지 않아도 괜찮았고, 이기고 진다는 생각이 점차 사그라들었다. 이따금씩 연필을 폭풍 굴리며 뾰족한 마음처럼 뾰족한 글자들을 쓸 때가 있었지만 그러한 순간들도 점차 사라졌다. 그리고 빈 일기장에 진짜 내가 원하는 꿈들을 적었다. 내 안 깊숙한 곳에 숨어있던 꿈들이 꿈틀대며 수면 위로 올라왔다. 꿈들을 적으면 행복했다. 또 다른 꿈을 상상할 수 있었고 더 큰 꿈을 꿀 수록 더 행복해졌다. 


꿈을 그릴 때 가장 행복한 나

이제 내가 열심히 사는 이유는 단 하나, 꿈이다. 꿈을 꿀 때 난 행복한 사람이다. 내 꿈에 닿기 위해, 그 꿈을 이루는데 걸맞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오늘도 노력한다. 누군가를 이기려고, 어제의 나를 넘어서기 위한 노력이 아니다. 승패를 따지는 게임을 뛰는 것이 아닌 꿈을 향한 여정에 있는 것이다. 오늘 나는 어제보다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나의 가능성을 제한하지 않는다. 나는 큰 꿈을 꾸는 큰 사람이다.

언제부턴가 “늘 행복하세요”라는 말을 실언이라 생각해 절대 쓰지 않았다. 살다 보면 행복하지 않은 날들도 많은데 늘 행복하라는 건 뜬구름 잡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난 행복마저 작게 제한하고 있던 걸까. 늘 행복하길 바랄 수는 있는건데 내 바람마저 줄여야만 했을까. 나는 불행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이유로 불행을 방치했고, 금방 털고 일어나 만들 수 있는 행복을 만들지 못하는 게으름과 탁한 정신머리를 합리화했다.


행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행복하려면 행복을 방해하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 몸에 벤 습관은 수년이 걸려야 겨우 사라질까 말까이다. 그래서 습관을 버리는 연습을 지속해야 한다. 경쟁하는 습관을 버리기 위해 나는 지난 일기를 자주 들춰본다. 어제 쓴 일기를 읽으며 ‘어제의 내가 잘 지냈으니 오늘의 나도 잘 지낼 거야.’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나는 이제 더 이상 경쟁 상대가 아닌 행복을 위해 노력했다는 증거이다. 나를 위해 매일 노력하는 하루를 보냈고, 그 하루들이 쌓여가고 있다. 그것은 확실한 행복이다. 그러니 난 분명 행복한 사람이다. 


내가 행복해야 주변에 행복을 나눠줄 수 있다. 주변 사람들이 행복해지면 그 행복이 그들의 주변 또한 행복하게 할 것이고, 그렇게 행복이 번져 이 세상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라니, 지나치게 이상적인 유토피아적 상상이라고 해도 괜찮다. 행복에 낙오자가 없는 세상을 바라고 싶다. 아니 바라야 한다. 우리는 꼭 행복해야 한다. 내가 행복해야 이 세상이 행복해진다는 드라마 속 대사를 이제야 현실에서 만난다. 엄마, 아빠 무조건 행복해야 해. 친구야 네 행복이 제일 중요해. 너의 행복을 위해 무엇이든 도울게. 내 행복을 줄게. 


타인과 경쟁하지 않고, 타인의 행복을, 우리 모두의 행복을 빌 수 있는 행복한 마음을 이제 나는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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