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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고당 Nov 28. 2024

도쿄의 밤 재즈 : 정해진 틀과 관습을 깨는 재즈정신

도쿄 라이프 40일차

무조건 영화관에서 보세요.

일본으로 떠나기 전, 나는 몇 가지 환상적인 버킷리스트를 마음속에 그려두었다. 그중 하나는 바로 도쿄의 재즈바에 가는 것이었다. 평소에도 재즈를 좋아했지만, 그 열정은 작년에 본 애니메이션 영화 블루 자이언트로 인해 한층 깊어졌다. 영화관에서 재즈 연주 장면이 펼쳐질 때, 마치 몸이 돌이 되는 듯한 전율과 함께 소리 내 울고 싶은 감정이 북받쳤다. 그 이후로 재즈는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고, 도쿄의 재즈바를 직접 경험해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으로 자리 잡았다.





진짜로 갔습니다. 도쿄 재즈바 (JAZZ SPOT intro)


일본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재즈바를 가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 약간 두려움이 앞섰다. 게다가 아직 일본어가 능숙하지 않은 점도 나를 망설이게 만들었다. '다음에 가는 게 나을까?'라는 생각이 스치기도 했지만, 오랜 검색 끝에 신주쿠에 위치한 JAZZ SPOT intro라는 재즈바를 선택했고, 결국 용기를 내어 다녀오기로 했다.



재즈바로 내려가는 지하 계단에서 몇몇 사람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혹시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려야 하나 싶어 물어봤더니, 모두 들어가도 괜찮다고 웃으며 답해줬다. 알고 보니 그날은 다양한 재즈 밴드들이 차례로 연주를 연습하는 날이었고, 계단에 있던 사람들은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연주자들이었다.


내부는 예상보다 작았지만, 그만큼 아늑했고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자리 부족이 걱정될 정도였지만, 주인장은 어떻게든 공간을 만들어 모두가 재즈를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다. 나와 일행은 처음엔 쭈뼛거리며 음료를 주문하고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이곳만의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에 금세 적응할 수 있었고, 결국 음악에 온전히 빠져들었다.





재즈는 '즉흥적'이다.


이곳의 연주는 준비된 공연이 아니라 연주자들이 즉흥적으로 팀을 꾸려 자신의 연주를 선보이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즉흥적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그들의 압도적인 연주와 퍼포먼스는 바에 있던 모든 사람들을 완전히 몰입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연주자가 부족할 때는 음료를 만들던 바텐더들이 악기를 들고 나와 연주에 참여했다. 특히, 연륜이 느껴지는 나이 지긋한 바텐더가 '블루 자이언트'의 주인공처럼 색소폰을 꺼내 든 모습은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머쓱한 미소를 지으셨지만, 누구보다도 멋지게 팀워크를 맞추며 자신의 음악을 펼쳐 보였다. 그 모습은 내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나는 이런 즉흥성이 허용되는 재즈가 좋다. 연주자들이 즉석에서 팀을 이루고, 주변의 대화 소리나 관객의 흥얼거림조차 자연스레 녹아드는 그 모든 것이 재즈라는 장르에서는 가능하다. 그 순간, 3년 전 팀장님이 재즈를 좋아하는 나에게 추천해주셨던 책 재즈의 계절 속 한 구절이 떠올랐다.



"오케스트라 연주가 해석된 것을 연주하는 작업이라면, 재즈 연주는 해석과 연주가 동시에 일어나는 작업입니다. 재즈 연주자는 악보라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곡을 스스로 해석해 직관대로 연주하지요."



재즈 연주자들도 수많은 곡에 대해 공부하고 연습하지만, 연주가 시작되면 그 순간의 변주와 새로운 해석을 받아들인다. 나는 이런 점이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인생과 닮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재즈는 인생이다"라고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정해진 틀과 관습을 깨는 '재즈정신'


내가 재즈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연주하는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책에서 읽은 또 다른 구절이 떠오른다. 경영학의 창시자로 평가받는 피터 드러커의 사상을 '재즈 정신'에 빗대어 표현한 글이다.


"정해진 틀과 관습을 거부하고, 매번 다르게 연주하며, 모든 구성원이 영감을 주고받는 '재즈 정신'에서 경영학의 본질을 찾을 수 있다."



재즈를 듣다 보면 콘트라베이스나 드럼이 독주로 꽤 긴 시간을 채우고, 다른 악기들이 연주를 멈추거나 가볍게 반주를 맞추는 순간을 자주 본다. 이런 모습은 정해진 틀을 깨고 서로의 영감에 따라 연주를 이어가는 재즈 정신과 닮아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정신이 정말 좋다.


회사 생활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자주 한다. 나보다 연차가 낮거나 인턴인 동료들이 내가 쉽게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를 훌륭히 해결하는 모습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업무마다 필요한 역량은 다르고, 때로는 그 역량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온 지 일주일밖에 안 된 신입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늘 하게 된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연차가 낮고 부족했던 나에게도 용기를 내어 해보고 싶다고 말하면 과감히 기회를 던져줬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나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발견했고, 최선을 다해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자신감을 얻었다. 작은 성취들이 하나둘 쌓이면서 스스로의 가능성을 믿게 되었고, 내가 가진 능력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기회로 이어졌다. 이런 환경 덕분에 나는 더 나은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실감을 하고 있다.




누군가 도쿄에서 가장 좋았던 곳을 추천해달라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 재즈바와 함께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삶의 갑작스러운 순간들을 마치 재즈를 연주하듯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는 법을 배울 수 있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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