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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컴쟁이 Jun 25. 2024

마추픽추에서 무료 박피를 하다

소 잃고 선크림 바르기

이렇게 얼굴이 벗겨져본 건 난생처음인데..

이마에서 나온 피부 껍질이라면 믿어지시나요?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아~ 마추픽추는 등산하는 곳이라던데~

얼굴 괜히 찝찝해지는 거 아니야?

그때 선크림을 꼭 꼭 발랐어야 했다. 그래야만 했다.

찝찝해하지 말아야만 했다.

이걸 실제로 보다니 입이 떡 벌어질 만큼

경이롭고 아주 멋진 자연이었지만

감탄은 30초 정도면 족하다. 새벽에 출발하는

투어일정이 고되고 무엇보다 더웠다.

더웠다는 것은 즉 햇빛이 쨍쨍 내리쬔다는 것

그리고 나는 선크림을 바르지 않았다는 것

장장 15시간 정도의 투어일정동안 덥고 힘들고

지치고 흥미가 점점 떨어졌다. 그럼에도

초록 풀숲, 파란 하늘, 드문드문 보이는 동물들,

옆에서 함께하는 사랑하는 남편 등

최대한 기분 좋은 것들만 생각하려 애쓰며

한걸음 한걸음 내디뎠다. 버스 타고 올라갔던 길을

내려오면서 와 나 정말 저질체력이구나도 깨달았다.


마추픽추 투어가 끝난 뒤 먹은 햄치즈 케이크와

시원한 맥주, 콜라는 꿀맛이었다. 초반에 엥?

그냥 밀키스인데?라고 천시했던 잉카콜라가

이보다 달콤하고 짜릿할 수 없었다.

햄치즈 케이크? 햄치즈 파이? 는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느끼하고 짰다. 그럼에도 앉아서

마시고 먹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러고 나서 생각이 들었다.


와 나 마추픽추를 보러 왔네? 보고 왔네?


대단하다. 비록 선크림을 바르지 않아

얼굴이 다 벗겨졌지만 이전의 나와 이후의 나는

다르다. 나는 마추픽추를 보고 온 사람이 된 것이다.

절친한 친구가 마추픽추 관광을 보는 것을

추천하냐 묻느냐면 강력 추천까지는 못할 것 같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이곳까지 온 여행자라면

무조건 마추픽추를 보러 갈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마케팅의 힘인지, 이름이 주는 유명세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마추픽추는 인기 있는 관광지가 되겠지. 나 같은 문화와 역사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도 굳이 굳이 유명한 투어사에 웃돈 주고 예약해서 보고 왔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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