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26
아침저녁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하늘과 공기도 한층 무르익은 느낌이다. 이렇게 가을이 슬며시 왔다가 스치듯 지나갈 것 같아 곁에 바짝 붙어 서서 조금이라도 더 만끽하려 애쓰는 중이다.
정문과 뒷문을 열어놓으면 맞바람이 불어 가끔 오싹한 추위의 바람도 느껴볼 수 있다. 한 가지 문제는 요란하게 지나다니는 차들의 향연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것마저 즐기기에는 조금 벅차다. 바람은 좋지만 소음은 싫다. 특히 큰 트럭이나 특수차가 지나갈 때면 유난히 땅마저 흔들리는 게 느껴진다.
출근할 때까진 괜찮더니 갑자기 비가 쏟아진다. 집에 창문은 닫고 왔나 잠시 걱정이 됐지만 금세 가게문을 닫고 음악 볼륨을 높여본다. 평소 켜지 않던 스탠드 불도 밝혀본다. 차들이 지나가는 소리는 줄어들고 음악소리는 커지고 빗소리는 운치를 더해간다. 조금 있으면 의리 있는 다움병원 환자분이 문을 열고 들어올 것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 주세요~'하면서.....
오늘은 오후에 일찍 문을 닫고 병원을 가야 한다. 오후에 손님이 너무 없으면 20-30분쯤 일찍 마감한 적은 있지만 몇 시간씩 일찍 마감한 적은 없어서 약간 걱정은 된다. 어제는 왠지 일찍 가는 것이 죄짓는 기분 같아서 괜스레 손님도 없는데 미적거리면서 여기저기 쓸고 닦고 만지고 시간을 꽉 채우고는 클로즈 팻말을 돌려놓고 나왔다. 이런 게 의무감? 책임감? 인가.... 내 아이들과 내 것에 대한 집착과 책임감으로만 똘똘 뭉쳐있던 나에게 태그커피도 그런 의미가 되어가고 있나 보다. 부담스럽고 어리둥절하고 하나도 모르지만 모든 것이 내 책임이며 내가 하기 나름이라는 것..... 또 내가 생각하기 나름의 무언가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며 무서운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유보다는 소속감 속에서 안정감을 느끼기도 한다. 나도 그런 소속감을 좋아했다. 뭔가 뭉쳐있어서 내 존재가 드러나지 않으면서 내 할 일만 해내면 일정 금액의 월급이 지급된다. 내가 이런 자영업을 하게 되리라곤 나 스스로도 상상치 못한 일이다.
그래서 인생은 반전이 있고 장담해서는 안 되는 건가 보다. 살면서 힘들고 지치는 일이 있어도 웃고 마시고 떠들면서 흘려보내기도 하고 별거 아니었것처럼 지난날을 회상하기도 하게 된다. 좋은 일만 가득하면 좋겠지만 절대 그렇게 호락호락한 인생살이가 아님을 알아가게 된다. 쉬운 인생살이 어디 있겠는가? 누구에게나 각자의 아픔과 슬픔과 굴곡진 사연들이 존재할 것이다. 그것은 희한하게도 그 자신에게만 더 크고 아프게 느껴질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위로가 되는 느낌이다. 버텨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 같다. 다들 남모를 힘겨움과 아픔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이렇게 위로가 된다는 것이 약간 씁쓸하긴 하다. 삶은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실타래 같아 보여도 결국 멀리서 보면 그런 문제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 실뭉치의 인생일 뿐이다. 보는 사람이 가진 아량에 따라 판단되는 것이다.
그러니 그것에 너무 얽매일 필요도 없다.
나는 태그커피를 시작하면서 한층 성숙되어 가는 느낌이다. 아직 갈길은 멀고 널린 문제들이 산더미 같지만 또 그렇게 걱정되고 부담되지는 않은 느낌이다. 어떻게든 될 것이고 안되더래도 충분히 값어치 있는 경험이 될것라는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